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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전통 기업 두산그룹이 환골탈태를 거듭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특급 구원투수’ 박용만 부회장이 있다. 10년 전 ‘중환자’ 진단을 받았던 두산이 글로벌 기업을

 
지난 2월18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박용만 부회장(50) 방을 찾았을 때다. “이런 풍경 처음 보시죠?” 창가로 걸어간 그가 한마디 툭 던졌다. 30층 건물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다가구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창신동 일대였다. “이 빌딩으로 오기 전에는 을지로 입구에 사무실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국민소득 3만 달러짜리 풍경이 펼쳐졌죠.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내려다보는 저 풍경은 국민소득 만 달러도 안 됩니다. 이 창가에 서면 ‘이게 대한민국의 진짜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그는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독백이라도 하듯 작게 말했다.
“소득 수준이 높다는 서울도 몇 분 거리만 가면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재벌의 여러 행태에 대해 비난하고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죠.”

“의자 값 하는 경영자인지 늘 돌아본다”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았다. “두산에서는 재벌 가족의 경영 방식을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라 ‘비즈니스 패밀리’로 불러달라고 주장했죠? 그런데 오너가 경영을 잘못하면 평가는 누가 하죠?” 그가 답했다. “주주들이 평가하잖아요. 우리가 지분이 많은 대주주여서 회사를 경영하지만 평가는 시장이 해주잖아요. 최근 두산 주가가 오른 것도 시장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그가 말끝을 흐렸다.
다시 캐물었다. “개인적으로 뭐가 그렇다는 거죠?” 그가 갑자기 등을 돌리더니 “저기, 저 의자 보이시죠?” 하며 손가락으로 책장 위를 가리켰다. 손바닥만한 의자 조각품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이 없는 의자였다. “제가 사장이 처음 됐을 때 집사람이 선물로 사다준 겁니다. 이 의자를 주면서 집사람이 그러더군요. ‘의자는 의자이되 앉을 수 없는 의자’라고. 사장 자리에 앉고 싶으면 의자 값 하라는 이야기겠죠.”

박부회장은 그 의자를 볼 때마다 자신이 ‘의자 값’을 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곤 한다. 그는 “운이 좋아서 비즈니스 패밀리의 일원으로 태어났고,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운에 걸맞는 임무를 완수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걱정이 큽니다. 남보다 더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우린 ‘에잇, 월급받는 만큼 일하지’라고 생각할 수 없거든요. 저녁에 집에 가서는 물론, 어느 한순간도 비즈니스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래서일까. 10년 넘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박부회장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두산 전략기획본부 김용성 사장은 박부회장이 ‘편집증적인 구석이 많다’고 평가한다. “박부회장은 쉴 틈 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 기존 아이템을 개선하는 방법 등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앉으나 서나 그의 머리 속에는 일로 꽉 차 있다.” 김사장은 덧붙여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박용만이라는 사람은 매우 밝은 색 도화지 위에 그려진 현란한 그림, 그러면서도 구도가 꽉 잡힌 작품이다.”

현란하지만 구도가 잘 짜인 경영자, 박용만 부회장이 최근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10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뉴 두산’의 청사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만 부회장이 처음 ‘펜’을 잡은 10년 전과 비교할 때, 두산그룹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산은 문어발 확장으로 빚더미에 올랐던 그룹, OB맥주와 켄터키프라이드 치킨(KFC)으로 상징되던 소비재 그룹, 수출보다는 수입으로 돈벌이를 했던 그룹이었다. 그러나 최근 윤곽이 드러난 ‘뉴 두산’의 모습은 다르다. 그룹의 주력 산업은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바뀌었고, 비즈니스 무대는 국내에서 해외 시장으로 옮겨 가는 중이다. 변화는 박용만 부회장이 1995년부터 구조 조정을 진두 지휘하면서 일어났다.

형제 오너들, OB 매각 10분 만에 합의

 
10년 전, 두산그룹은 컨설팅을 의뢰받은 매킨지를 고민에 빠뜨릴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응급처치’가 아니라 ‘대수술’이 필요한 암 환자나 마찬가지였다. 덩지만 클 뿐 실속은 없고, 부채 비율은 600%가 넘었다.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수술이라도 각오하겠다는 오너들의 의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총대는 젊은 오너 박용만 부회장이 멨고,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현금 확보가 우선 과제였다. ‘돈 되는 것부터 팔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부동산은 물론이거니와 알짜배기 사업이던 3M·네슬레·코닥을 잇달아 팔아치웠다. 1차 ‘다이어트’로 숨통이 좀 트이나 싶었는데, 외환위기가 닥쳤다.

1998년 매킨지가 내린 결론은 출혈 경쟁으로 인해 적자로 돌아선 OB맥주를 팔고 신성장 동력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OB를 팔라고 제안하기는 했지만 매킨지측은 두산 오너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OB는 두산의 ‘얼굴’이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핵심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산의 오너들은 모인 지 단 10분 만에 OB 매각에 합의했다.
그 중요한 일을 어떻게 10분 만에 합의할 수 있었을까. 박부회장은 두산가(家)의 형제들은 동일한 교육 과정과 사회 생활을 해온 덕에 경영 철학이 같고, 모든 사안에 빠르게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산의 형제 경영이 성공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44, 46쪽 딸린 기사 참조). “당시 형님들이나 나나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우리는 선대로부터 좋은 기업 만드는 법을 물려받았을 뿐 OB맥주라는 회사를 물려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고 박부회장은 말했다.

OB맥주를 매각해 거액을 움켜쥔 두산은 더 이상 ‘다이어트’에 매진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간판 사업을 새로 발굴해 ‘근육’을 키워야 할 시점이었다. 2000년 박부회장의 눈에 들어온 먹잇감은 민영화 대상이 된 한국중공업이었다.
하지만 거대 공기업을 합병·매수(M&A)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여론은 물론 매킨지조차 한국중공업 인수를 말렸다. 기존 핵심 사업에 중점 투자해 사업을 키워가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경험이 전혀 없는 사업에 뛰어드는 일은 누가 보아도 무모했다. 게다가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하지만 박부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두산의 핵심은 업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 조정에 있다”라면서 입찰제안서를 내는 날 밤까지 매킨지를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먹잇감을 낚아챘다.

이 때부터 두산의 경영 전략은 급변했다. 한국중공업에 이어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했고, 소비재 위주에서 중공업과 건설, 전자 등 산업재가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사업 구조를 뒤바꾼 것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대우종합기계(대우종기)를 인수해 그룹 위상을 중공업 중심으로 공고히 하고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 재계 순위에서도 10위권(9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중공업 인수가 두산의 얼굴을 중공업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면 대우종기 인수는 두산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우종기의 해외 네트워크와 우수한 인력은 두산의 큰 잠재력이 될 수 있다. 삼성증권 박종민 수석연구원은 “중동에서 담수 플랜트 분야를 석권하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중국·미국·유럽 등에 굴착기와 공작기계를 수출하는 대우종기가 협력한다면 해외 건설 분야 개척이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매출 7조2천억원, 영업이익 4천1백억원을 올렸다. 대우종기를 인수한 올해에는 매출 11조4천억원, 영업이익 7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8년까지는 매출을 21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다. 박부회장은 “두산은 인재 육성을 통해 사업을 성장시켜서 2008년까지 EBIT(매출 대비 이자·세금 공제 전 순이익) 기준으로 국내 최고 수준에 진입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용만 부회장의 구상대로라면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지난 10년 동안 15건의 합병·매수를 성공시켜 이 분야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박부회장은 앞으로도 합병·매수를 통해 두산을 성장시키고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규모가 크고, 길게 볼 때 안정적인 경쟁력이 있는 업종,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업종이라면 얼마든지 합병·매수하겠다는 전략이다.

“합병·매수도 중요한 성장 전략”

두산은 최근 국내 1위의 소주 기업인 진로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고 수익 구조가 좋은 진로를 인수하면 현재 두산의 주류 비즈니스와 연계해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박부회장은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소비재·산업재를 구분하지 않고 육성할 것이다. 그런 성장 전략의 중요한 전술로 합병·매수를 활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해외 시장에서 ‘사냥감’을 찾을 계획이다.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 지역 거점화가 필요한 경우,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해외 기업도 합병·매수하겠다는 것이다. 두산 전략기획본부에는 유명 컨설팅 회사 출신자 6명으로 구성된 합병·매수 전담 팀이 따로 있다. 이들은 박부회장을 지원한다.

그러나 두산과 박부회장이 넘어야 할 고개도 적지 않다. 우선 대우종기 인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유권 해석’이라는 고개를 무사히 넘어야 대우종기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두산그룹은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적용되는 기업 집단이다. 두산은 ‘동종업종 적용 제외 조항’에 따라 대우종기를 인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명백한 출자총액제한제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답게 경영 성적표를 끌어올리고, 소유 지배 구조를 선진화하는 것 또한 호락호락한 과제가 아니다. 재무제표를 놓고 보면 두산그룹은 수익이 들쭉날쭉하고, 부채비율도 아직 높은 편이다. 굿모닝신한증권 김동준 연구원은 “그룹의 지주 회사 격인 (주)두산은 구조 조정 과정에서 9개 회사를 모아놓다 보니 ‘간판’ 사업도 없고 실적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애널리스트의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도 많지 않다. 현재 두산그룹 전체 제품 가운데 세계 1등 상품이라고는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 기술 하나뿐이다.

1등 상품 개발·소유 구조 개선이 남은 과제

다른 재벌 못지않게 복잡한 소유 지배 구조 역시 시장에서 두산이 저평가 받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두산그룹은 오너인 박씨 일가 지분이 4.95%밖에 안 되지만 계열사 지분(52.67%)에 의한 순환출자 방식으로 박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경영 실적을 올리고 소유 지배 구조를 선진화해야만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노사 정책이나 페놀 사건을 떠올리며 두산을 삐딱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고, 합병·매수 중심의 경영 전략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이 가장 오래된 회사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경영 능력으로 보여준 성과는 별로 없다. 과거에는 잘 나가는 수입품이나 들여오는 데 급급했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알짜 기업들을 합병·매수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운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두산 가의 경영 능력은 이제부터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성과를 통해 이런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박용만 부회장을 비롯한 두산 가 오너들의 난제이다.  

박부회장이 만들고 싶은 두산의 모습은 ‘글로벌 두산, 100년 전통의 두산, 인화로 뭉쳐진 두산’이다. 그는 직원들이 ‘이만큼 해왔으면 되지 않느냐’ ‘한국 시장이 뻔한데 더 이상 어떻게 성장하겠느냐’는 소리를 할 때 불같이 화를 낸다. 인사 평가에서도 그는 집요한 근성과 문제 해결 노력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하면서 두산은 경영진과 직원들이 도전 정신으로 뭉치고 있다.

특히 성미가 급해 화를 잘 내지만 돌아서면 다시 보듬어주는 박부회장의 성격은 직원들로 하여금 그를 믿고 따르게 한다. 매킨지의 잘 나가는 컨설턴트였던 김용성 사장이 두산에 합류하기로 결심했던 것도 그의 따뜻하고 소박한 인간미 때문이었다.
올해로 창립 109주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은 다시 한번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박용만 부회장이 서 있다. 세계 속의 두산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두산타워 꼭대기 층 박용만 부회장의 방에서 보는 풍경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준으로 바뀌는 시기도 달라질 것이다.  

 
박용만 부회장은 한 달에 두 번, 토요일이면 아주 특별한 도보 여행에 나선다. 1885년 21세에 보부상 길에 올랐던 할아버지 박승직씨(1964~1950)의 옛 길을 따라가 보는 여행이다. 코스는 두산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첫 깃발을 꽂았던 배오개(종로 4가)부터 땅끝(해남)까지. 그래서 이름도 ‘배땅이 프로젝트’다. 50세가 된 손주 박용만 부회장은 할아버지의 상인 정신을 새겨보는 마음으로 한번 나설 때마다 30~40km씩 걷는다. 전에 걸었던 곳까지 차를 타고 이동해서 새로 30~40km씩 걷는다.

박부회장이 이끄는 두산 전략본부 신입 사원들과 광고회사 오리콤 직원 11명이 그와 함께 걷는다. 박부회장은 이 도보 여행을 계획하면서 자기가 이끄는 팀의 신입 사원 모두에게 편지를 보내 신청을 받았다. 지난해 11월6일 시작한 도보 여행은 2월 현재 충남 아산까지 도착했다. 올 추석까지 끝낼 예정이다.

박부회장은 하루 종일 직원들과 보내는 이 도보 여행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자랑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단다. 박부회장이 느끼는 이 도보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대한민국을 새로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아름다운 것도 많고 사람들 인심이 참 좋다. 길을 물어보면 몇백 미터씩 함께 걸어가며 안내해 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는 분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인심이 너무 고마워서 ‘배오개에서 땅끝까지’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티셔츠를 따로 만들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손수 쓴 편지 한 장과 함께 선물한다. 

 

 
두산은 재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형제 경영, 가족 경영을 성공적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 그룹이다. 두산은 그룹 안에 ‘두산파’밖에 없다며, 파벌이나 잡음이 전혀 없는 것을 자랑한다.

두산그룹은 현재 창업주 박승직의 손자이자 박두병(1910~1973년) 초대 회장의 6남1녀 가운데 아들 셋이 경영하고 있다. 고 박두병 회장의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73)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차남 박용오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을 맡고 있고, 3남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65)이 두산중공업 회장을 맡고 있다. 구조 조정과 합병·매수 등 그룹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박용만 부회장은 5남이다. 가장 오래된 기업인 만큼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사장(두산 상사BG)을 비롯한 4세대까지 경영 전면에 나서 있다(표 참조).

두산그룹이 형제·가족 경영을 하면서도 잡음이 흘러나오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두산 가(家)만의 독특한 가정 교육에서 비롯했다. 20년 넘게 두산그룹에서 근무하며 박씨 일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그룹 홍보실 김 진 부사장은 “두산 오너의 후손들은 유교 전통에 따른 장유유서, ‘인화’를 중시한 가훈을 강조하는 풍토에서 자랐다. 그래서 형은 동생을 사랑으로 감싸고, 동생은 형을 깍듯이 모시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박용만 부회장이 업무 지침을 내린 뒤라도 형인 박용오 회장이나 박용성 회장이 정반대 지침을 내리면 동생이 자기의 주장을 바로 접고 형들의 의견을 따른다.

미국 유학·다른 회사 경험은 ‘기본’


또 인화를 강조한 가풍 때문에 조직 내에서 어떤 종류의 파벌도 생기지 않도록 형제들이 서로 조심한다고 한다. 초대 회장은 ‘인화’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설날 세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 미풍양속 차원에서는 권장할 사항이지만, 개인 간에 친소관계가 형성되면 조직이 공평해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경영가의 집안이어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두산가 자녀들은 아버지가 강조해온 자녀교육법에 따라 비슷한 교육과 사회 생활 과정을 밟는다. 박두병 초대 회장은 자식들에게 ‘도둑이 와서 재물을 훔쳐갈 수는 있지만,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절대 훔쳐갈 수 없다’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두산가 자식들은 미국 유학을 다녀와야 하고, 반드시 다른 회사에서 일해 보아야 한다. 두산으로 돌아와서는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의 영향력이 세질 무렵부터는 두산가 교육법에 일본어 공부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현재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세 형제는 명예회장의 허락을 얻어 일본에 가서 일곱 달 가량 살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돌아왔다. 최근에는 중국을 아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자녀들을 중국에 보낸다.

박용만 부회장은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뜻에 따라 모두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금융기관에 근무하며 남의 밥을 먹어 보았다. 각사에서 철저한 경영 수업도 받았다. 그 결과 경영 철학과 경영 스타일이 같다”라고 말했다. OB맥주를 매각할 때뿐만 아니라 두산중공업과 대우종기 등을 인수할 때도 갑론을박 없이 만장일치로 10분 내에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것이 비즈니스 패밀리의 장점이라고 박부회장은 강조한다. 하지만 ‘형님’들에게 보고한다고 해서 준비를 대강 하는 것은 아니다. 김용성 사장은 “박부회장은 두 회장님께 보고할 자료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라고 말했다.

남다른 상인 정신도 한몫


두산가 오너들의 남다른 상인 정신도 가풍에서 배운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부회장의 합병·매수 기법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값을 치른다’고 비판하지만, 박부회장은 “경쟁사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일 뿐, 우리는 제값 주고 샀다”라고 일축한다. 합병·매수를 하면서 제값을 치르는 것도 상인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중공업을 인수할 때 시가의 두 배를 주고 인수했지만, 지금 이 회사(두산중공업)는 창사 이래 최대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며 주가가 세 배 이상 올랐다. 박부회장은 “합병·매수를 처음 시도할 때는 책상을 치며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싸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공적인 합병·매수란 상대방을 초토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내가 모두 만족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비즈니스 패밀리의 일원이기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일들도 있게 마련이다. 박용만 부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좋아해 사진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아버지께 혼나고 나서’ 꿈을 접었다. 아버지 때문에 진로를 바꾸었는데,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박부회장은 “이 길로 들어서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 만큼이라고 생각하므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박용만 부회장이 부각되면서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박용만 부회장 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박부회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그는 “회장이 그룹의 리더이고 나는 실무 총책이다. 회장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보좌하는 것이 내 일이다. 나는 회장과 각사 CEO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업무 추진력을 높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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