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아일랜드에서는 지난해부터 술집과 레스토랑 등 다중 이용 공간 실내에서 전면 금연이 시행되었다.
애연가들의 반대가 대단했다. 그들이 반대한 이유는 사뭇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흡연을 금지하면 더블린의 자랑인 펍(pub) 문화가 사라지고,
그렇게 되면 그 명물을 보러 오는 외국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술집 전면 금연 이후에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술집 주인들은 지붕을 걷어내고 야외 카페로 만들어 흡연자 단골들을 배려하고 있다는데, 그게 오히려 더블린의 명물이 되어
간단다.
어쨌든 금연 법안은 관철되었는데, 아일랜드의 접근법은 조금 특이하다. 아일랜드는
흡연권과 혐연권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내세웠다고 한다. 즉 식당이나 술집 종업원이 손님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마시지 않고 일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손님이야 술집에 안 오면 그만이지만 노동을 팔아 살아가는 노동자는 그럴 수가
없으니 정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노동자가 있고 지붕이 있는 곳이면 사실상 금연
구역이 되는 셈이다.
‘흡연 관광’ 떠나고 ‘니코틴 정제’ 먹는 사람
생길지도
우리 나라에서도 담배 제조 및 판매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의원 1백40여 명의 서명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담배의 소유와 사용은 금지하지 않지만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이 법안이 추진하는 측의
계획대로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나라가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을 제외하면 세계 최초가 될 이 초강력
법안의 성패는 아일랜드 사례 못지 않게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 법안은 10년 유예 기간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애연가들을 긍휼히 여겨서
설정된 기한이라기보다는 담배 농가와 담뱃가게 등 담배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무시무시한 법안이 만약 통과된다면 10년 후 우리 나라의 풍경은 사뭇 바뀔 것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후쿠오카로 떠나는 ‘흡연 관광’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대마초와 달리 피우는 것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므로 외국에서 실컷 원 없이 피우고 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개인이 담배를 주문해 피우는
일도 증가할 것이다. 거대한 한국 담배 시장을 노리고 외국에 서버를 둔 담배 판매 쇼핑몰도 개설될 것이다. 니코틴 정제를 먹거나 주사를 맞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문화적으로 보자면 일단 대부분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 소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거의 사라질 것이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아마도 업종별 흡연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계와 그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애연 집단으로 소문난 작가들도 어쩔 수 없이 금연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과 영화는 어떻게
달라질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작가와 영화 감독들이 만드는 소설과 영화는 그렇지 않던 시절과 얼마나 달라질까. 이런 의문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저자들도 물론 있다. <창조성과 고통>(필립 샌드블룸 지음, 아트북스 펴냄)은 질병과 중독, 장애가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다.
<프로이트와 담배>(필립 그랭베르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얼마나 처절하게 흡연 욕구와 싸웠는가를 그의 편지를 통해 추적했다. 프로이트는 시가를 피우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한 손실이 어디 있겠냐며 자신의 정신분석의에게 항의하고 있다. 만약 프로이트가 살아서 우리 나라에서 추진되는
이 법안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