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방위력 증강 열 올리며 군사 행동 ‘으름장’
‘고활한 일본’. 지난 2월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연례 안보회의에서 일본이 ‘타이완
해협의 안전 확보를 양국의 공동 전략 목표로 한다’고 공개 천명한 직후, 중국측의 한 군사 평론가가 내뱉은 한마디이다. 일본이 미·일 안보
동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제는 양안 문제에까지 직접 개입하려 들고 있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보인 것이다.
중국 광둥성 사회과학원 마딩성 객원연구원은 지난 3월 초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 주간지
<야조조간(亞洲週刊)>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위와 같이 일본을 비난한 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엄격히 말해 통일된 한반도(원문
‘대고려국’)가 반드시 중국에 우호적인 이웃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과는 일대 생사를 다투는 원수지간이므로 통일 한반도로 하여금 일본을
제압하게 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한제일(以韓制日)’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긴 그의 제안이 전근대 시기 중국의 전통적인 안보관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시대착오적 복사판이 될지,
아니면 전통을 재창조하는 것이 될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과 일본이 지금 서로를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면서 노골적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그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치사를
통해 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장차 벌어질지 모를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아시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중·일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의 양국 관계, 특히 타이완과 그 주변 해역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각축은 동북아를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지난해 11월 터졌다. 지난 11월19일부터 한 달 넘게
일본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 11월10일 중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한급) 한 척이 일본 오키나와 섬과 타이완 사이 일본 영해를 통과해
동중국해(또는 서해)로 빠져나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며칠 뒤 중국 외교부는 일본측에 ‘기술상의 실수’였다며, 영해 침범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사태는 유감 표명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다투어
후속 보도를 내거나 긴급 좌담회 등을 열면서 사건을 끌고 갔다. 일본 방위 당국은 당시 잠수함 16척 가운데 4척을 퇴역시킬 계획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16척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요컨대 일본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자국의 안보·방위 정책을 재검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근해 방어’ 수정해 ‘원양 해군’ 지향
사실 ‘군사 현대화’로 불리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일본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해군력의 신장세이다. 중국의 해군 전략은 기본적으로는 ‘방어’ 개념에 입각해 있다. 내륙
중시 국방 정책이 해양 중시 국방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덩샤오핑 시대였다. 국가 목표를 ‘발전’과 ‘경제 성장’에 두면서 연안 지역이 중시되고,
연안을 방어할 수 있는 국방 전략이 수립된 것이다. 이 때 채택된 국방 전략이 바로 ‘근해 방어(offshore defense)
전략’이다.
근해 방어 전략 개념은 1982~1988년 중국 해군을 이끈 류화칭(劉華淸)
제독(전 중국 공산당 군사위 부주석)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는 덩샤오핑의 국가 발전 전략에 따라 해군 전략을 수정하면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320~640 km로 확장한 것이다.
미국의 중국 군사 전문가 필립 고드윈에 따르면,
중국군은 전략을 수정하면서, 중국 해군이 명실 상부한 근해 해군 능력을 갖는 시기를 2000년으로 상정했다. 중국은 이같은 목표를 설정하면서,
2050년까지 중국 해군을 근본적으로는 ‘원양 해군’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야심찬 계획도 내놓았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이 해군력과 공군력 강화에 특히 역점을 두고 군비 증강에 나선 것은 이같은 전략
수정과 무관하지 않다. 고드윈에 따르면, 중국이 근해 해군, 나아가 원양 해군이 되기 위해서는 대략 세 가지 과제를 극복해야 했다. 첫째는 중국
함대가 보유하고 있는 노후 함정, 특히 잠수함 교체가 시급했다. 대부분 구식인 중국의 잠수함은 해상이나 공중에서 쉽게 추적되어 작전 능력이
떨어졌다. 중국이 러시아제 최신예 재래식 잠수함을 사들이고, 잠수함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부지런히 유럽 쪽을 기웃거려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합동 작전을 벌일 때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하는 기능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근해
해군이 제구실을 하려면 공중 급유와 공중 지원은 필수다. 최근 나온 회고록을 통해 밝혀졌듯이, 류화칭 제독이 특히 항공모함 획득에 관심을 가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셋째, 중국 해군은 일단 먼 거리로 나가 싸울 때 작전 지속 능력이 떨어지는 결점이 있었다. 보급 및 병참 지원 장비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4월 중국군은 합동군사 훈련을 통해 1980년대에 제기된
취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음을 보여주었다. 중국 남부 푸젠성의 동산지역에서 대규모 육·해·공 합동 훈련을 벌여 성공리에 마친 것이다. 이 훈련은
당시 타이완에서 진행되고 있던 군사 훈련에 맞불을 놓는 성격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군의 약점 가운데 하나였던 지휘·통제 능력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확인하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이 훈련이 끝난 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마침내 타이완을 공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해군력 신장은
방위력 증강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1·2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방위력 신장에 긴장하는 이유는, 중국의 방위력이 곧바로
공격력 또는 ‘군사 투사력’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1980년대 말 해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영역으로
‘다오롄’이라는 개념을 개발해 놓았다. 장래 중국에 대한 군사 위협 또는 직접적인 기습 공격이 시작되는 선으로 류큐 제도와
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를 잇는 ‘제1 다오롄’과, 이보다 넓은 범위로서 마리아나와 괌·캐럴라인 섬을 잇는 ‘제2 다오롄’을 그어놓은
것이다.
다오롄에서 위험이 발생했을 때 중국군의 방어 개념이 중요하다. 중국군은 마오쩌둥이
남긴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략적인 측면이 아닌 실제 작전 수준 면에서는 적에게 필살의 타격을 가해 전황의 주도권을 잡는
‘적극 방어’라는 개념이다.
위험 인식에 대한 다오롄 개념과,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적극
방어 개념이 결합할 때 중국군의 ‘공격적 성격’은 분명해진다. 더욱이 제2 다오롄의 경우는, 미국의 태평양 지역 작전 권역과 겹친다. 미국과
일본이 미·일 안보 동맹을 한층 강화한 ‘신방위대강’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방어 개념을 잠재적 공격성이 담긴
행위로 인식하기는 중국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은 ‘방위력 정비’라는 명분으로 군비 증강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은 중기 방위력 증강 계획 기간(2001~2005년)에 총 25조엔(2백60조원)을 쏟아 부었다.
일본은 ‘신방위대강’으로 중국 봉쇄 움직임
특히 해군력 증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본이 궁극적으로는 ‘대양 해군을 지향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의욕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일본의 해군력 증강 계획에 경항공모함을 겨냥한 기준 배수량(배를 진수할 당시의
무게) 1만3천5백t급 헬기 탑재 호위함 2척, 7천7백t급 대공 미사일 탑재 호위함을 건조하는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방위청은
이밖에도 오는 2007년까지 스탠더드 미사일을 갖춘 신형 이지스 구축함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최근 들어 일본 우익 논객들이 북한 핵 또는 이른바 ‘보통국가론’을 내세워 일본도 핵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추세 또한 중국의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중국이 보기에 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함께 중국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하고 봉쇄하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타이완 문제로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양측이 서로를 탓하며 군비 경쟁에 나설 요인은 또 있다. 일본 방위청은 지난해 ‘신방위대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국이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타이완 문제 외에 두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도쿄신분의 보도로 알려진 이 가상 시나리오에 따르면, 일본 방위 당국은 현재 양국간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다이위타이-센카쿠 문제나, 동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빌미가 되어 중국이 일본에 대해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으로 상정했다.
이같은 가상 시나리오는 실제 상황이 어찌되었든 양국이 군비 경쟁을 계속할 훌륭한 구실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