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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씨는 1963년 7월부터 1969년 10월까지 6년 3개월간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후 1971년부터 2년간 공화당 의원을 지내다가 1973년 4월15일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후 그는 중앙정보부 부장 재직 때 알게 된 정권의 온갖 비리를 폭로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눈엣가시로 등장했다.

특히 1977년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박대통령을 맹렬히 공개 비난하면서 유신정권 최대의 골칫거리 중 하나로 등장했다. 김형욱씨가 맹렬하게 반 박정희 운동을 펴자 박대통령은 직접 회유 공작을 지시했다. 또 수많은 회유 사절을 보내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허사였다.

급기야 그가 박대통령의 사생활과 사상성까지 시비를 거는 회고록을 출판하려 하자 박대통령은 직접 달러를 싸들고 그와 거래를 시도했다. 그러나 1979년 들어 이 공작은 김형욱씨의 약속 위반으로 무산되었다. 김씨는 박대통령이 뉴욕으로 보낸 윤일균 중앙정보부 차장으로부터 50만 달러를 받고 회고록 복사본을 넘겨줬지만, 원본을 일본 창출판사에 빼돌려 일부 내용을 출판해버린 것이다.

1979년 10월1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김형욱씨는 10월7일 세상 사람들의 눈에서 영원히 사라짐으로써 그동안 한국 현대사 최대 의혹 사건의 한 장본인으로 꼽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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