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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서울시장 선거 앞두고 여론조사 ‘부동의 1위’…중학교 컴퓨터 교과서 첫 채택

박찬종 22.4%, 이회창 13.5%, 홍사덕 13.1%, 이명박 6.6%, 황산성 6.5%’. 10년 전 한 중앙 일간지가 서울시민들에게 서울시장감을 물어본 여론조사 결과다. 지금 고 건 전 총리가 ‘대통령 후보감’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것처럼 당시 박찬종 의원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거대 정당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행보가 비슷했다면 비슷했다고 할까.

 
그때만 해도 박씨를 ‘산소 같은 정치인’이라고 여긴 사람이 꽤 있었다. 국민들은 사법고시·행정고시·공인회계사(CPA) 3과에 합격한 이 ‘천재’ 정치인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1995년 6월27일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나와 조 순 후보(2백5만표)에게 42만표 차로 패하면서부터 그의 정치 인생도 기울기 시작했다.
한 언론사의 인물 정보에 따르면, 그가 거쳐간 정당은 민주공화당·신민당·통일민주당·민주당·신정치개혁당·신정당·신민당·신한국당·국민신당·민주국민당·한나라당으로 11개나 된다. 탈당과 입당, 무소속을 오가며 종횡무진했던 발 빠른 정치 행보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오랫동안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진 박씨는 지난 3월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올리면서 ‘단신 기사’로 복귀했다. 하부 조직에서 저질러진 모든 일이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책임으로 전가되었고,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실무 책임자에 불과하니 둘다 형 집행을 정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올해 66세인 박씨는 사단법인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5년 3월은 중학교에서 ‘컴퓨터’ 교과를 처음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 때이기도 하다. 온라인 시대에 발맞추겠다는 교육부의 시도는 좋았으나 1993~1994년 집필된 국정 교과서는 당시에도 ‘철 지난 옛노래’였다. 교과서에는 ‘인터넷’ ‘멀티 미디어’라는 낱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각급 학교에 보급된 컴퓨터는 286 컴퓨터라고 한다. 윈도를 열라고 했더니 창문을 열더라는 말이 꼭 농담만은 아니었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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