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3월 들어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 외교 행보가 국내외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더니 3월23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서는 차제에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를 뿌리 뽑겠다며 사실상의 외교 전쟁을 선언했다. 또 3월22일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강조했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한·미·일 남방 3각동맹의 틀에서 벗어나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 한국의 선택이 동북아 세력 판도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당연히 국내 보수 세력의 반발과 우려를 초래했다. 한나라당은 한국 외교의 근간인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며 비난했고, 보수 신문은 주무 부서인 외교통상부와는 상의도 없이 연일 쏟아지는 대통령의 ‘즉흥성 발언’을 우려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와 판이해진 대통령의 표변에 당혹감과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도 불안한 시선으로
사태 전개를 지켜보고 있다. 예컨대 뉴욕 타임스는 3월23일 기사에서 독도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남한과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한편이 되어 일본이
이 지역에서 고립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봉쇄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본에 대한 강경 자세와 한·미·일 3각동맹 탈피 시사는
분명 작은 변화가 아니다. 기존 대외관계 틀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보수 세력의 반발과 우려는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최대 당면
과제인 북한 핵 문제를 푸는 데 미국의 역할이 가히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일방적 굴복을 요구하는 현재 미국의 협상 전략을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현명한 대책인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거짓 정보로 이라크를 무력 점령하고, 군사력을 외교의 제1 수단으로 삼으며, 중국과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에 마냥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것이 옳다고도 볼 수 없다.
한·미 공조냐 민족 공조냐, 친미냐 친중이냐 따위의 문제 제기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한쪽이 이기든 민족 전체는 질
수밖에 없는 문제 제출 방식이다. 남북한을 비롯해 주변 강국들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도의 균형 잡힌 외교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한 내부의 합의가 선결되어야 한다. 내부의 의견이 갈렸는데 어떻게 외부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수
있겠는가.
전체를 아우르는 대국적 시야, 먼 장래를 내다보는 역사적 안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통합. 전환 시대를 맞이하는 참여정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며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