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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모성 결핍’ 남성상 뚜렷…주체적 여성도 강세

 
고현정의 컴백과 송승헌의 도중 하차, 가수 이효리의 연기자 변신. 숱한 화제와 기대 속에 방송되었던 일련의 화제 드라마들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고현정 효과’를 불러일으키며 선두를 치고 나갔던 SBS의 <봄날>은 고현정 효과에 대한 의심스러운 시선 속에 끝났고, 이미 군인이 된 송승헌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든 팔아먹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했던 MBC의 <슬픈 연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으로 양호한 편이다. 한때 ‘섹시 문화 아이콘’으로까지 불렸던 이효리를 전면에 내세웠던 SBS <세잎 클로버>는 끝까지 항해를 끝내지도 못한 채 중도에 좌초하고 말았다. 아주 처참한 성적이었다.

 
이와 달리 그 어떤 화젯거리도, 그 누구의 기대도 없이 출발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수많은 화제 속에 끝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후속작이라는 부담감을 안고 출발했던 KBS의 <쾌걸 춘향>은 한채영과 재희, 엄태웅이라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며 화려하게 결말을 맺었다. 기존 드라마의 정형화한 틀에서 벗어난 캐릭터 설정과 만화 같은 장면 구성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끌었던 <쾌걸 춘향>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인 <춘향전>의 주요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드라마였다. <쾌걸 춘향>을 일부에서는 유치하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드라마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편견일 뿐이다. 오히려 <쾌걸 춘향>의 만화 같은 장면 구성은 틀에 박힌 트렌디 드라마의 지평을 넓힌 새로운 실험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청자의 관심 영역 안에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못했던 드라마의 성적표에는 우리 사회의 미묘한 변화가 담겨 있다. 그 변화는 바로 여성들의 사회적 약진이다. 전형적인 남성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판검사의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임용되었다는 뉴스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최민수 분)가 존재하기 어려운 현실을 뜻한다. 여성계의 오랜 숙원이던 호주제에 대해 2005년 2월 헌법재판소가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家)를 편제한 호주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 역시 드라마의 변신을 나았다.

최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는 결핍된 모성을 갈구하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가녀린 여성을 구원하는 백마 탄 왕자님이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며, 오히려 여성의 몫이었던 눈물 연기도 남성에게 맡겨지면서 역할 전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곧 현실 세계의 남성들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회귀하여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과 변화한 현실에서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이는 동시에 변화한 위상만큼 여성들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남성을 보듬어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누구도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던 <쾌걸 춘향>이 진짜 성공한 비결은 여기에 있다. 지고지순한 정절을 상징하는 인물 성춘향은 철부지 이몽룡의 연인이자 어머니로 변신해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의 불쌍한 남성을 지켜준다. <쾌걸 춘향>은 심지어 전형적인 악인으로 평가되었던 변학도까지 여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순정파로 변화시킨다. 연인이자 어머니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춘향은 ‘순결’ 이데올로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꾸려가는 여성으로 묘사되면서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를 상징한다.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받아들이되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봄날>이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고, <슬픈 연가>가 예상 밖의 부진한 성적으로 자포자기해야 했으며, <세잎 클로버>가 차라리 악몽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좌초한 이유 역시 여성 캐릭터의 모성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최근의 미묘한 사회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구태 의연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 드라마는 여지없이 외면당했다.

<봄날>의 초반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10년 만에 돌아온 고현정 효과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고은호(지진희 분)와 고은섭(조인성 분)에게 결핍된 모성이 서정은(고현정 분)을 통해 충족되리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는 드라마 초반부에 연인이자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서정은이 이복형제인 고은호와 고은섭 사이에서 ‘어머니’가 아닌 오로지 ‘여자’로 자리매김하면서부터 시청률이 하락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슬픈 연가>가 예상 밖의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은 백마 탄 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자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없는 박혜인(김희선 분)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인물 때문이다. <세잎 클로버>의 강진아(이효리 분)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 놓인 인물이다. 그래서 <슬픈 연가>와 <세잎 클로버>의 패인은 배우들의 연기력 부진 혹은 잘못된 캐스팅이 아니라 <쾌걸 춘향>이 포착한 사회 변화의 징후를 놓친 작가와 연출자의 능력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 차인표·조재현·송윤아를 앞세워 의욕적으로 시작한 SBS의 <홍콩 익스프레스>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묘한 사회 변화와 동시대 대중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면, 설령 황당무계한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시청자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확보된다. 이것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스타만 있다면 극본쯤이야 ‘그 까이 꺼’ 하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류는 이제 그 바람을 멈출 것이다. 문화산업의 관점에서 드라마 제작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소개>

고재열 기자 윤석진 교수님은 TV드라마를 많이 보십니다. 아마 ‘드라마홀릭’을 자처하시는 그 어떤 아주머니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실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드라마 보기를 즐기신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즐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즐겨 보는 윤교수님은 드라마 평론가로서 최고의 자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학자들의 드라마 비평은 정형화 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들의 평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시킵니다. 분석의 틀을 정해 놓고 그 안에 드라마를 집어넣은 다음 사정없이 난도질 합니다. 그들의 냉정한 드라마 평론은 정확한 듯 보이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미세한 결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는 대표적인 대중문화 상품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을 논할 때나 쓰일 잣대를 드라마에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신선로를 논할 때와 라면을 논할 때는 다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라는 대중문화 라면을 라면의 기준에 맞춰 평해주시되 신선로를 논할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삼각관계와 사각관계, 이복형제와 이복자매, 불치병과 기억상실증이 동어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 속에서도 색다른 재미를 주는 드라마를 꼬집어내고 그 드라마가 왜 재미있는 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시는 분인데, <시사저널>에서 어렵게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윤 교수님은 앞으로 <시사저널> 독자들에게 TV드라마에 대한 혜안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지면화 하지 못한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서비스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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