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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도발 직후 일본 정계 인사·언론인 면담 ‘현장 리포트’

필자는 3월14~15일 이틀 동안 한·일 의원연맹 방일 대표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방문해 일본 정·관계 지도자들을 만났다. 시마네 현의 독도의 날 조례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설득 작업의 현장을 함께하면서 느낀 점을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이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는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 글은 방일 대표단 또는 한·일 의원연맹과 관계없는 필자 개인의 생각과 경험에 기초한 것임을 밝혀둔다.(필자 권기식씨는 현재 한·일 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의 수석보좌관으로서 한겨레신문 기자, 청와대 국정상황국장, 민주당 노무현 후보 비서실 부실장,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2002년 일본 시즈오카 현립 대학에서 한·일 관계를 연구한 바 있다.) -편집자 주

 
일본 시마네 현 의회의 독도의 날 조례안 통과를 저지해야 한다는 문희상 연맹회장의 긴급지시로 편성된 한·일 의원연맹 방일 대표단(단장 홍재형) 일행 7명이 도쿄에 도착한 3월14일 밤은 한·일 관계의 현 기류를 반영하듯 을씨년스러웠다. 예년보다 낮은 기온에 시민들은 귀가길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숙소인 뉴오타니호텔에서 만난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가훈쇼’(일종의 꽃가루병) 때문에 1주일 넘게 고생하고 있다며 해마다 봄이 되면 홍역처럼 겪게 되는 일본의 가훈쇼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스기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봄철에 저항력이 약한 사람들이 주로 걸린다는 가훈쇼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한·일 간의 열병을 그대로 닮았다.

독도 문제로 시위가 격화하고 일부 시민들이 손가락까지 잘랐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을 떠났던 필자에게 도쿄와 일본인들의 차분함은 낯설기만 했다. 언론들은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극우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시민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분위기였다.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불과한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분위기는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먼’ 두 나라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했다.

일본에서 만난 정치인·관료·언론인 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시마네 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나 영유권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데 뭘 그리 흥분하느냐”라는 투로 말했다. 얼마 전 자민당의 고위 인사를 만난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필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일본 정계를 움직이는 실력자 중 한 사람인 이 정치인은 “지난 3월10일은 도쿄 대공습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45년 미군의 대공습으로 무려 10만명이 넘게 죽었지만 우리는 미국에 아무런 말도 안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만한 이야기지만, 오늘날 일본 정치인의 다수는 이런 인식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학자나 정치인 들은 독도 문제나 교과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흔히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다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은데 소수 극우세력들이 설치는 바람에 한·일 우호 관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참 잘못된 인식이다. 한국이 매번 일본에 당하는 데는 이같은 잘못된 상황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시장 분석이 잘못되었는데 대응 전략이 제대로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 일본은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경화가 완성된 상태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군의 일본 공습과 일본의 한국 침략을 같은 시각으로 보는 정치인들이 이제 일본 정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팽창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진보한 정치 세력인 사회당과 공산당은 이미 몰락했으며, 민주당은 자민당과 우파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기 총리감으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다음 총리도 계속해서 야스쿠니 참배가 필요하다”(2004년 11월27일)라고 발언한 바 있다.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인 그가 총리가 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다수가 우경화했는데, 이미 우익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데, ‘우경화’가 진행 중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는다면 이번과 같은 ‘독도 사태’는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월15일 조찬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인도를 방문하게 된 모리 요시로 일본연맹 회장을 대신해 조찬을 주최한 누카가 후쿠시로 간사장은 홍재형 단장이 강경한 톤의 말을 쏟아 놓는 동안 시종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자민당 내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 중 한 사람인 그는 하필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된 올해 이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말을 하면서 호소다 관방장관 등 정부측 인사들에게 대표단의 뜻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조찬 중 들어선 모리 회장도 “한국측의 입장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모쪼록 미래를 위해 양국 의원연맹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정중했지만 의전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어 공허했다.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은 대표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결국 시마네 현 의회는 다음날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조찬장 밖에서 만난 보좌관들의 얘기는 더 솔직했다. 그들은 “일본 정치인 누구도 영토 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무장관과의 면담 일정이 늦어지면서 대표단 일행은 낮시간 동안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일본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만나서 개별 설득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필자는 마이니치 신분 기자 등 일본 언론인들을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중견 기자인 이들은 시마네 현 의회의 조례안 통과를 막기 힘들 것이라면서 한국 국민의 격렬한 항의에 놀랐다고 말했다. 일개 지방 의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조례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한국의 영유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았다. 100년 전 일본의 한국 침략 과정에서 시마네 현의 독도 편입이 단초 역할을 했다고 설명하자 일부 기자들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자들은 아사히 신분마저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으로 돌아섰다며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거론했다. 그들은 참여정부의 과거사 진상 조사 작업과 대통령의 3·1절 발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엘리트 지식인인 언론인들의 이같은 인식 수준은 한·일 관계의 미래가 쉽지않은 과제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나는 그들에게 독일의 예들 들면서 “일본은 한국 등 주변국과의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다. 과거 청산이 깨끗하게 이뤄지지 않았으니 사과와 배상 요구가 계속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대화 도중 한 기자가 북한 문제를 거론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북한이 일본내 진보 세력을 죽였다는 것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은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에 피해자 의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말대로 전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인은 가해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심했고, 양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제 일본인에게서 가해자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전후 세대가 사회의 주도층이 되었고, 그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받지 못했다. 신악이 구악을 뺨친다는 말이 있듯이 구세대 우익보다 신세대 우익이 더 무섭게 설치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현실이다.

며칠 후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다는 한 기자는 동북아에서 한·일 간의 안보 협력이 중요한 만큼 대승적 관점에서 참아 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미국과 가장 관계가 좋은 시점을 택해 주변국에 도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한다. 일본이 중국은 물론 북한과도 불편한 상황인데 한국마저 불편한 관계로 만들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한국은 피해자다.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것이 우호인가?”라고 반문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오후에 재일동포 2세 사업가를 만났다. 그는 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안이한 대응을 질타하면서 일본 지도층의 이중성을 한국인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회원 수가 30% 정도 줄어들었지만 자민당 유력 의원들의 지원으로 영향력은 훨씬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자민당 유력 의원들은 후소샤 역사 교과서의 채택률을 2001년의 0.039%에서 최대 1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 아래 지방 의회와의 네트워크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한국측 인사를 만나서 우호를 말하면서 밤에는 우익 세력을 후원하는 셈이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은 왜곡 역사 교과서 지원 단체인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출신이며, “역사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강제 연행 등의 단어가 줄어든 것은 잘된 일”(나카야마 문부상) 따위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은 인사이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지난 행적은 우익 편향적이었다.

이날 오후 5시50분 외무성에서 마치무라 외무장관과의 대담이 이루어졌다. 의전적인 대화를 나눌 겨를도 없이 우리측 대표단장을 맡은 홍재형 의원의 항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일본측의 도발 행위로 인해 빚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해야만 문제가 풀릴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민심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조례안 통과를 막아 달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마치무라 외상은 “시마네 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을 통해 설득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외무성이나 중앙 정부가 지방 의회의 일을 명령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여러분이 이렇게 오셨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정중했지만 틀에 박힌 대답이었다는 것이 우리측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다케시마의 날’ 날 조례안을 발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시마네 현 자민당 의원협의회장 호소다 시게오는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의 당숙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직도 유교 전통이 남아 있고 파벌 정치가 존재하는 일본에서 호소다 시게오 의원이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다케시마의 날’ 발의를 추진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험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지방 의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일본 정치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의 지방 정치는 철저히 중앙 정계 의존적이다. 중앙에 선을 잘 대야 공천을 받을 수 있고, 굵직한 개발 사업은 모두 중앙에 의해 결정된다. 필요할 때는 지방 정부와 의회에 영향력을 잘도 행사하면서 이번과 같은 경우에서는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일본 유력 정치인들의 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는 적어도 일본 정부의 방조 내지는 지원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혼네’(본심)와 ‘다테마엷(예의상 하는 말)라는 말이 있다. 일본인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이 말은 독도의 날 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당숙이 하는 일을 모르쇠하는 관방장관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대화해야 할 것인가.

이번 방일 기간에 만난 일본 언론인은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과정에서 일어난 한·일 양국간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자칫 무르익은 한류붐이 꺼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나는 그의 우려가 양국 관계를 걱정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이 혹시 ‘한류붐’을 볼모로 한국민의 정당한 항의마저 봉쇄하려는 술수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신뢰를 잃은 ‘우정’이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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