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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괴물’처럼 좌충우돌해온 일본 외교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이같은 도발을 서슴지 않는 속셈은 무엇이며 효과적인 대응 방법

 
'일본 외교는 하이재킹 당했다.’ ‘누가 일본 외교를 조종하는가.’ 지난 연말 일본에 군국주의 바람이 불자 일본의 외교 전문가들이 자조하면서 털어놓은 말들이다. 주변국에 대한 세심한 전략보다는 마치 ‘머리 없는 괴물’처럼 좌충우돌해온 일본 외교에 대한 위기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일본 내부에서 독도 문제를 기획하고 주도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케시마의 날’을 통과시킨 시마네 현, 독도 상공에 정찰기를 띄운 일본 군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한 주한 일본대사. 이들이 번갈아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해 왔다.

 
“지금 일본 사회는 만주사변 전야와 비슷하다.” 일본 대학에 재직하는 한국계 교수의 해석이 현재의 일본 상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주사변 역시 중앙 정부가 주도한 것은 아니다. 관동군이 일을 저지르면 정부는 끌려가는 구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보수 세력들이 곳곳에서 각개약진 식으로 일을 벌이면 그것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가는 구조이다. 방위청을 중심으로 한 군은 재무장화와 미·일 동맹 강화, 역사파들은 교과서 문제, 유족회는 납치 문제, 시마네 현은 독도 문제 식인데, 이들이 모두 일본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왜 하필 지금 저렇게 나오는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감안한 흔적이 엿보인다. 북한이 지난 2월10일 핵보유를 선언한 이후 미국은 일본 쪽으로 급선회했다. 워싱턴에 있는 한반도 소식통의 전화 목소리에서는 긴박감마저 흘러나왔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믿을 것은 일본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국·북한과 대치하려면 일본을 재무장시켜 미·일 동맹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중국과 협조를 의식해 일본의 재무장화를 주저하던 미국이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국무·국방 장관 회담(2+2회담)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독도를 분쟁지대화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자는 계산인지도 모른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미·일 간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미사일 방어(MD)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도에 레이더를 설치하면 북한이나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빨리 포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든 간에 지금 일본이 독도를 쟁점화할 시기인지는 의심스럽다. 오늘의 한반도는 과거 일제의 침략에 맥없이 무너진 조선 왕조가 아니다. 시야를 넓혀 일본이 현재 아시아에서 처한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일본은 중국과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다, 타이완 해협을 둘러싼 군사 대립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쿠릴 열도 문제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북한과는 납치와 유골문제로 시끄럽다. 여기에 독도 문제까지 추가된다면 아시아에서 일본이 설 자리는 없다. 아무리 미국이 뒤에 있다지만 미국은 태평양 너머에 있는 나라다.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 이처럼 원한을 쌓아서 득 될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더군다나 지난 3월17일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 관련 도발을 ‘영유권 수호 차원을 넘어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는 제2의 한반도 침탈’이라고 규정했다. 이 날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독도 및 과거사와 관련한 일련의 행태를 과거 식민지 침탈과 궤를 같이하는 엄중한 사안으로 보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독도를 일반인에 개방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한 데 이은 강도 높은 대응 조처였다.

정부가 마음먹기 달린 것이지만, 현재의 동북아 판도는 한국 정부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매우 낮은 단계의 카드에서 높은 단계의 고강도 카드까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남창희(인하대학) 교수는 당장에라도 쓸 수 있는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남교수는 우선 일본이 시마네 현을 앞세우듯이 한국도 경상북도와 울릉도 등 지방자치단체를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교수에 따르면, 독도에서 지자체 주최로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이다. 일본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학자를 초청해 일본의 과거 범죄 행위를 비판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여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들의 독도 방문을 허용해 독도가 한국령임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키고 일본의 범죄사를 일깨우는 진원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교수는 “일본의 아픈 부분을 파고들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남북 분단과 한·미·일 공조로 엮여 있는 현재의 동북아 구도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역사를 무시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자체가 기존 동북아 질서를 깨는 행위이다. 한국은 북한과 함께 대응책을 강구할 수도 있다. 남북한은 이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때 민간 수준이기는 하지만 공동 대응을 모색한 경험이 있다. 고구려사 왜곡은 역사상의 영토 문제지만 독도는 현재의 영토 문제다. 대응의 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남북의 공동 대응은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 선결되어야 한다. 미국이 일본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팀 내에는 한반도와 미국이 손잡고 중국·일본을 견제하는 방식의 세력 균형을 선호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또한 일본 군사 세력의 발호를 막고 일본 내 합리적 세력이 힘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6자 회담과 별도로 대북 설득에 나서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는 4월 독일 방문 때 ‘제2의 베를린 선언’으로 북한에 회담 복귀 명분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고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는 평화 공세야말로 일본 군사 세력의 준동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 내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아도 그것은 명확하다. 지난해 12월8일 일본 정부가 북측이 건넨 요코다 메구미 씨의 유골이 가짜라고 발표해 파문이 일어난 직후, 내각조사실과 법무성 산하 공안조사청 등 군 소속이 아닌 민간 정보기관 요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방위청과 군 정보기관이 개입해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영국 <네이처> 인터넷 판이 밝힌 것처럼 데쿄 대학이 주도한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1200℃의 고온에서 화장된 유골에서 DNA 샘플을 추출했다는 것이문제였다. 베이징 정보통 사이에서는 이미 방위청 소속 군 정보기관이 유골 검증 과정에 깊이 개입해 자신들 입맛대로 왜곡했다는 분석이 돌았다.

방위청과 군 정보기관 등이 왜 일본인 유골 문제에 개입했는지는 올 초 서울을 방문한 일본 정보기관 소속의 한 인사가 솔직히 고백한 바 있다. “지금 일본의 주적은 중국이다. 중국과는 영토 문제가 걸려 있어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다만 중국 때문에 군사 예산을 늘려야 한다면 재계 등 반발 세력이 많고 외교적으로 부담이 된다. 그래서 북한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일본 군부가 북한을 어떤 용도로 활용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 군부의 준동은 지난해 3월 천수이볜 타이완 총통이 재선되어 타이완 해협 사태가 불안정해지면서 불이 붙었다. 중국 국제 문제 전문지인 <츄스바오(環球時報)> 7월12일자는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일본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분석한 이 글에서 타이완 해협이야말로 일본 경제의 생명선이므로 일본이 깊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본의 진정한 안보 현안은 북한 문제가 아니라 타이완 문제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민간이나 군 할 것 없이 일본 지배 세력의 공통의 인식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중국 잠수함의 일본 영해 침범 사건 이후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일본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면 세울수록 한반도를 일본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중립화해야 한다는 것이 고이즈미 총리나 외무성 등 일본 주류 세력의 입장이라면, 당장 군비를 증액할 명분을 끌어내야 하는 군부는 북한이라는 악역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을 북이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 공세만으로는 일단 불이 붙은 일본의 우경화와 독도 영유권 주장의 싹을 자를 수는 없다. 남북이 영토 수호 차원에서 공동 대응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실질적으로도 독도 문제가 첨예해지면 일본은 한국뿐 아니라 북한과도 맞서야 한다. 독도에 대한 북한 군부의 입장은 매우 단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독도에 접근하면 그냥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보기관이나 군은 그래서 북한 군부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북측이 언제든 남측에 공동 대응을 제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6월의 장성급 회담이 좋은 예이다. 북한 군부가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남측에 ‘독도를 남북 공동이 사수하자고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갗가 사실 미묘한 관심거리였다.

지난해였다면 남측이 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제2의 한반도 침탈’로 간주한 지금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지난해 4월 북한이 발행한 독도 우표에 대해 그동안 시판을 불허하던 정부가 최근 허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독도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독도를 둘러싼 분쟁의 성격이 급격하게 군사화할 수도 있다. 한·일 간에는 현재 외교 관계가 존재하지만 북·일은 외교 관계가 없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은 일본 전역을 겨냥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적대국 관계다.

지정학 측면에서도 남한에 비해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카드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하면서 북·러 관계가 다시 표면에 떠올랐다. 북한이 이처럼 북·러 관계를 강화하는 이면에는 일본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이 미국을 등에 업고 끝내 독도 영유권을 고집하면 북한은 원산항을 러시아에 개방할 수도 있다. 원산항은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전략적 요충인 것이다.

 
사실 일본에게 러시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영원한 숙적이다. 옛 소련이 붕괴한 뒤 한동안 잊고 살았으나 푸틴 2기의 러시아는 강력한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 러시아가 동해연선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할 경우 일본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러시아의 남하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과 연해주 공동 개발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남북 정상회담 중재를 제안하기도 했다. 오는 5월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에는 남북한 대표를 초청해 한반도 문제를 주제로 한 국제 회의를 개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행을 단행한 시점을 분석해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만나는 시점과 묘하게도 겹쳐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적어도 북·러 정상이 만나기 전에 일본이 북한과 먼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본 외교는 그런 방향 감각마저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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