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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일진의 일탈 행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흡연과 음주, 구타는 물론이고 남학생 일진을 시켜 집단 성폭행까지 저지른다. 심지어 교사도 왕따시켜 학교에서 내쫓는다.
지난 3월 여중생이 된 서태연양(가명 13·부산 사하구)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진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태연이는 “인터넷 소설을 보니 일진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일진 언니가 ‘X하자’고 해서 친구들이 다 부러워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대개 잘생긴 일진이다. ‘X하자’는 것은 일진이 되어 친한 사이로 지내자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Y하자’ ‘친하자’ 등이 있다. 태연이는 “요즘 어른들이 떠들어대는 통에 일진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태연이처럼 ‘일진 문화’를 동경하는 여학생은 적지 않다. 남자 중학생과 고등학생 대부분이 일진 문화를 경원하는 데 반해 여중생 사이에서는 일진의 폭력 문화가 동경의 대상이다. 20년 이상 중학교에서 학생 생활 지도를 담당해온 서울 문일중 김길윤 교사는 “남녀 공학에서 폭력 사건의 3분의 2가 여중생이 일으키는 사건인데, 그 중심에 일진이 있다. 폭행·가출·음주·흡연 건수도 여중생이 월등히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생활주임들은 여중생 생활 지도가 남학생보다 세 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집단 폭행으로 또래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여학생들의 폭력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한 여중생 일진은 친구에게 오줌을 먹이는가 하면, 칫솔 뒷부분을 음부와 항문에 집어넣은 뒤 이를 핥으라는 등 엽기적인 가혹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여중생 일진은 친구를 상습 폭행하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시킨 것도 모자라 강제로 술을 먹인 후 남자 친구들을 시켜 집단 성폭행하게 했다.
지난해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폭력을 경험한 남학생은 전년에 견주어 거의 비슷한 데 반해 폭력을 경험한 여학생은 크게 늘었다. 전년에 비해 여고생은 6.4%, 여중생은 19.9%, 초등학교 여학생은 18.1% 높아졌다. 여중생과 초등학교 고학년 사이에 폭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군포초등학교 한유석 교사는 “같은 또래 남자 아이들에 비해 여학생들은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고 구타나 갈취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5·6학년 여학생들은 가출을 종종 하는데 집을 나오면 돌봐주는 일진 언니·오빠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송연숙 사무국장은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면서 여학생들도 분노와 불만을 그대로 표출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학생들이 일진을 동경하는 것은 방송에서 과거 일진이었고 한때 놀았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기성 세대의 만연된 폭력 문화의 영향이 크다”라고 말했다.
여자 일진들은 계급이 명확히 정해져 있다. 후배 관리 면에서도 더 치밀한 면을 보인다. ‘대갈’은 싸움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여학생들 사이에도 싸움은 가장 중시되는 분야다. 대갈을 쌈짱·짱·일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판’은 선배들이나 다른 학교 일진들을 많이 아는 발 너른 여학생이다. 간판들을 통해 일진들은 보통 30~40개 학교 일진들과 알고 지낸다.
‘얼짱’은 말 그대로 일진 가운데 제일 예쁜 여학생을 뜻하고, ‘스탈’은 옷을 제일 잘 입는 아이를 뜻한다. 이외에도 쌈뽕·쌔끈·뽀대·간지·꽃댕·국모·인형·푼수·발랑·발광 등 일진회에는 엄청나게 많은 계급이 있다. 일진들은 보통 학생들과 구별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은어를 많이 쓴다. 안녕을 ‘앙횽’, 언니를 ‘옹릣’이라고 부르는 등 이른바 외계어는 일진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진회 선배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후배 일진들이 돈을 훔치거나 일반 학생들의 금품을 갈취해 상납한다. 학생의 경제 사정을 감안해 액수를 정한 장부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받는 일진도 많다. 서울 강서구 ㄷ중학교 이 아무개양(15)은 “우리 대갈은 매달 2백만원 정도 받는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후배들에게 20만~30만 원을 모아 오라고 하는 날이 많다”라고 말했다.
후배 일진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고생이 많이 몰리는 서울 명동·이대앞·돈암동·화곡동·청량리 등지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최근까지 명동을 관할하는 충무지구대장을 지낸 김성구 경정은 “명동 지역 청소년 폭력과 갈취의 피해자나 가해자 90% 이상이 여학생이다. 일진 여학생들의 대담성과 폭력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라고 말했다. 가해 여학생은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자연스럽게 후미진 곳으로 데려간다. 돈을 빼앗고 옷과 신발까지 벗겨 가기도 하며,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2월에는 여중생 일진들이 두 여학생을 명동에 있는 한 학교로 유인해 옷을 다 벗기고 폭행한 후, 변기에 속옷을 버리고 물을 내린 경우도 있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일진들은 돈을 모으기 위해 ‘일콜’(일일 콜라텍) ‘일락’(일일 락카페) 등을 열었다. 후배 일진에게 3천~7천 원짜리 티켓 수백 장을 강매하는 방식이어서 ‘일콜’을 열면 한 번에 수백만원을 벌 수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일콜 섹스머신’은 일종의 댄스 경연대회인데, 누가 화끈하게 옷을 많이 벗느냐를 놓고 승부를 판가름한다고 한다. 옷을 다 벗거나 자위하는 사람이 주로 우승을 차지하는데, 우승 상품은 보통 담배 한 보루다.
여학생 일진들은 상납받은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거나 명품 옷을 사는 데 쓴다고 한다. 일진들은 친구나 후배가 옷·가방·신발·모자 등 명품 제품을 쓰면 바로 빼앗곤 한다. 서울 동대문구 성 아무개양(16)은 “일진회 애들은 명품을 밝힌다. 보통 학생들보다 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 교감은 “중학교에 다니는 딸 애가 신발을 사주기만 하면 1주일 만에 헌 운동화로 바꿔 신고 오고 점퍼도 자주 잃어버렸다. 나중에 알아보니 일진한테 빼앗긴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여학생 일진들은 남학생들과 연결되어 있다. 남학생 일진의 파워에 따라 여학생 일진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묘한 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남학생 일진 가운데 한 명이 여학생 일진과 사귀기 시작하면 두 그룹은 전체가 끼리끼리 사귀게 된다. 서울 동대문구 양 아무개군(16)은 “여자가 사귀지 않을 경우 집단 성폭행당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는 하나가 깨지면 전체가 깨지는데, 대개 쉽게 깨진다.
남학생 일진회를 여학생 일진들이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 여자 일진이 남자 일진을 배경으로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일삼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의 싸움은 반드시 남자들 싸움으로 번진다. 지난해 9월13일 오후 7시께 서울시 노원구 중계2동 당현3교 아래서 노원구 11개 중학교 일진들이 모여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여자 일진들이 부닥친 후 남자 일진들이 나선 것이다. 나중에는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100여명이 모여 짱을 가리는 큰 싸움으로 번졌는데 112 순찰차가 출동해 해산되었다.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 등 일탈행위에서도 여학생 일진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더욱 악랄하다. 후배 일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물갈이도 가혹하게 한다. 일진들은 후배들을 때리는 것을 ‘물갈이한다’ ‘터치한다’고 표현한다. 기합을 심하게 주고 뺨과 배를 때리는 등 주로 흉이 생기지 않을 곳을 골라 때린다. 간혹 ‘엎드려뻗쳐’를 거꾸로 해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한 후 배를 각목으로 때리는 등 잔혹한 수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폭력을 가하는 방법도 남학생 빰칠 만큼 흉포화하고 있다. 일진들은 맞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 구타 사건은 좀처럼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한 여중 생활지도 주임은 “여학생들이 또래 남학생들에 비해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 성인들의 폭력을 더욱 정교하게 모방한다. 일진 여중생들이 남자 고교생과 어울려 정도가 더 심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야산·주차장·공터 등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폭행은 주로 노래방에서 이루어진다. 방음이 잘 되는 데다 누가 신고할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쪽에서는 후배를 구타하고, 한쪽에서는 섹스를 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인 서 아무개양은 “노래방에서 일진 언니들에게 물갈이를 당하고 막판에는 술을 먹고 언니들 남자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일진들의 일상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노래방이다. 시간을 때울 데가 없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노래방에 간다고 한다. 중학생 일진들은 생일 파티도 거의 노래방에서 한다. 케이크 사들고 노래방에서 생일빵(생일을 맞은 친구를 무작정 때리는 행위)하고 술 먹고 노래를 부른다. 어린 학생들이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주요 고객으로 영업하는 노래방은 학생들의 음주를 용인하는 곳이 많다.
교사들은 여자 일진을 다루기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복종해야 할 선생님과 반항해도 될 선생님을 명확히 구분해, 만만하다 싶으면 곧바로 기어오르기 때문이다. 꾸중하는 선생님께 욕설을 퍼붓고 ‘학교 안 다니면 되는 거 아니냐’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하고 폭행한 사례는 학교마다 수십 건에 달한다. 간혹 일진들의 왕따 때문에 학생은 물론 교사가 학교를 떠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중학생 일진은 “일진뿐만 아니라 보통 아이들도 선생님이 감정적으로 때리면 대들고 신고한다”라고 말했다.
여학생 일진들은 행동이 대담해져 교실이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담배 꽁초를 교실 쓰레기통에 던져 불이 난 경우도 있다. 만 14세 미만은 형사 처벌이 안 된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시 금천구 ㄷ중학교의 한 여자 일진은 남자 일진들을 뒤에 세우고 돈을 뺐고 폭행하다가 걸려 다섯 차례나 경찰서에 드나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 훈방되었다. 이 학생은 만 15세가 되자 조용해지는 영악함을 보였다고 한다.
중학교가 의무 교육 과정이어서 학교는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는 데다, 일진들은 징계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출석 일수의 3분의 1 이상인 70여 일을 결석하지 않으면 학교가 제재할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선생님에게 결석할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남았느냐고 묻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2000년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는 영화를 만들어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환기했던 서울 영파여중 교사 김종현씨는 “일진 문제가 일부 학생의 이야기지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더 대담해지고 학교 폭력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가는데 어른들은 형식적으로 일회용 처방만 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서울 동일중 생활주임 교사 한윤필씨는 “일진회와 학교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자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다면 청소년들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ㅇ고 김 아무개군(16)은 “중학교 때 일진을 했는데, 섹스는 노래하는 거랑 비슷했다. 그냥 놀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래방에서 친구들 앞에서 하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밀양 성폭행 사건에서 보듯이 중소 도시나 시골로 갈수록 일진들의 성관계는 더욱 굴절되기도 한다. 전북 군산의 한 여중생은 “그저 섹스만 원하는 남자 애들이 있고 또 이것을 즐기는 일진들도 분명히 있다. 잘 나가는 오빠와 섹스를 해서 주변에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애들 중에서도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한 애가 여럿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교장은 “아이들이 섹스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은 한결같이 그 사실을 외면하려고만 한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부모의 방관적 태도로 인해 아이들이 더 큰 상처를 받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