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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음악 거장 산타나, 그래미상 8개 부문 휩쓸며 '화려한 부활'
그래미상 이후 산타나에게 쏠린 대중의 관심을 외신은 '산타나 마니아'라고 전했다. 상을 받고 난 뒤 앨범은 순식간에 3백만장이 더 팔려나갔다. 미국에서만 벌써 8백만장. 앨범은 다시 차트 1위로 올라섰고 후속곡 <마리아 마리아>도 싱글 차트 5위로 치솟아 지난해 1위 곡 <스무스>에 이어 또 정상을 넘보고 있다.
산타나 현상은 이미 지난해 라틴 팝 열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리키 마틴과 제니퍼 로페스 같은 젊은 섹시 스타에 의해 몰아친 라틴 열풍을 타고 오랜만에 낸 앨범이 일반의 예상을 깨고 크게 성공한 것이다. 열기는 비록 젊은 가수들에 밀렸으나 음악성에서는 그가 한참 우위였음이 그래미상으로 입증되었다.
대중도 젊은층 독무대인 팝계에 탁월한 음악을 갖고 돌아온 쉰두 살 노장에게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성공은 특히 가수나 소비층이나 10대 일색이고 나이 든 가수는 맥을 못추는 국내 음악계에 경종을 울린다. 물론 미국도 현재 판세는 젊은 가수들에 기울어져 있다.
그럼 산타나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음악성을 기초로 한 치밀한 전략이 가져온 결실이다. 그는 소속사인 아리스타 레코드의 클라이브 데이비스 사장과 손잡고 3년 전부터 <슈퍼내추럴>의 밑그림을 그렸다. 데이비스 사장은 로장 산타나를 축으로 신세대 스타들을 묶는 '신구조화'를 목표로 롭 토머스 ·데이브 매튜스 ·와이 클레프 진 등 지금 팝 무대를 호령하는 인기 가수들을 대거 초빙했다.
'신 ·구 세대 조화' '장르통합'이 성공 요인
산타나는 자식과도 같은 이들을 단순한 게스트가 아니라 '자발적인 협력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노장의 앨범이지만 젊은 가수 앨범에 못지 않은 활기가 돌았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본다. 실제로 산타나 앨범을 산 사람들은 대부분이 20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수를 혼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데이비스 사장과 산타나는 음악으로도 장르 통합을 꾀했다. 힙합 ·모던 록 ·블루스 ·라틴 음악이 산타나의 기타와 한데 어우러졌다. 이른바 '퓨전 음악'의 진수를 선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특출한 기타 음색을 빠뜨릴 수는 없다. 가히 특허라 할 그의 기타는 멜로디가 살아 숨쉬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타나 하면 떠오르는 곡 <삼바 파티>의 매력도 선율 그 자체인 기타 사운드에 있었다. 멜로디 감각은 자니 마티스 ·아레사 프랭클린 등 당대 최고 가수를 듣고 그 보컬에서 터득했다고 한다. 그의 연주가 다른 기타 대가들처럼 어렵지 않고 편안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도 그의 기타에는 선율이 넘쳐 흐른다.
산타나는 혼합, 타협 그리고 절충을 음악 철학으로 삼아 왔다. 데뷔 무대였던 1969년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부터 아프리카 리듬과 라틴 비트를 섞은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어서 라틴 리듬과 록의 퓨전 음악을 선보였다. 1970년에 발표된 앨범 <아브라삭스>는 이른바 '라틴 록'의 형식 미학을 확립한 역사의 명작으로 기록된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 묘사된 아브락사스 신에서 빌린 제목부터 이중적 ·변증법적 합일(合一)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장르를 접목하는 퓨전 작업으로 일관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재즈 록과 명상 음악 앨범을 발표하면서 꾸준히 평생 과업인 장르 합병을 실험했지만 달라진 시대 감성과 발을 맞추지 못해 대중에게서는 멀어졌다.
아마도 최근의 라틴 팝 열풍이 없었다면 산타나는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거품의 소지가 다분한 라틴 유행에 '음악적 완성'을 제시하며 기적처럼 돌아왔다. 팬들은 그것을 30년 넘게 축적한 내공이 폭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가뭄의 단비 같은 관록의 승리요 음악성의 개가이다.([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