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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99년 계약, 입찰가 높은 업체에 최대 물량 배정
지난해 6월29일 최초 계약 단가 2백47.8원(ℓ당)으로 가장 비싸게 입찰가를 써낸 쌍용정유가 계약 수량 59만 드럼(200만ℓ)으로 가장 많은 물량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최초 계약 단가 2백72.9원으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현대정유는 가장 적은 물량(36만 드럼 가량)을 계약했다. 지난해 9월2일 계약 단가를 1차 수정한 후에도 전체적으로 단가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쌍용정유 계약가(3백3.1원)가 제일 높고 현대정유(3백1원)가 제일 낮았다.
조달본부가 군용 항공유를 구매할 때 이용하는 입찰 방식은 희망수량단가제이다. 경쟁 입찰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자기가 납품하고자 하는 항공유 물량과 공급가를 적어내면 그 가운데 입찰가가 낮은 순서대로 물량을 배정한다. 따라서 입찰가를 낮게 적어낸 업체가 공급 물량을 많이 배당받아야 정상이다.
조달본부가 희망수량단가제 방식을 원용해 국내 정유회사들로부터 1억ℓ를 구매한다고 가정하자. LG정유가 5천만ℓ를 ℓ당 2백70원, 쌍용정유는 3천만ℓ를 2백71원, 현대정유는 5천만ℓ를 2백72원, SK주식회사가 2천만ℓ를 2백73원에 공급하겠다고 입찰했다면, 조달본부는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LG정유에 5천만ℓ, 그 다음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쌍용정유에 3천만ℓ를 배정한다. 현대정유는 5천만ℓ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2천만ℓ밖에 배정받을 수 없다.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SK주식회사는 물량을 배정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계약 현황을 보면, 조달본부가 정유업체와 손잡고 국방 예산을 빼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하다. 뒷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 억측이라면, 조달본부가 큰 실수를 했음에 틀림없다. 지난해 항공유 계약 내역은 희망수량단가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수량단가제는 군이 필요한 기름 물량을 가능한 한 낮은 가격으로 확보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이다. 지난해 계약 내역에서 나타났듯이 가장 높은 입찰가를 써낸 업체가 가장 많은 물량을 배정받았기 때문에 경쟁 입찰 방식이라는 용어가 무색하다.
희망수량단가제 ‘예산 절감’ 취지 무색
올해 조달본부가 국내 정유회사로부터 구매하고자 하는 기름은 8억7천만ℓ. 유류 도입에 책정된 예산만 2천7백25억원. 조달본부가 원가산정팀을 구성하고 외부 회계기관에 의뢰해 적정 원가를 산정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가장 많은 물량을 공급한다면 적정 원가를 산정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감사원 4국5과는 항공유 고가 도입을 비롯해 조달 체계 전반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 결과는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주로 군용 항공유의 원가가 적정한지에 감사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이에 못지 않게 희망수량단가제가 도입된 시점 이후로 진행된 계약 내역을 면밀히 검토해 부정이나 정유회사 사이에 담합 행위가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