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 무인기, 우크라 전쟁서 ‘탱크 파괴’ 위력 발휘하며 주목받아
김정은의 현지지도, 러시아에 대한 ‘품질보증서’ 발행 의미 가져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명목 GNI)은 158만9000원이었다. 한국의 30분의 1(3.4%) 수준이다. 지난해 북한 전체 국민총소득은 40조9000억원으로 추정됐다. 한국의 60분의 1(1.7%) 수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의 30분의 1이니, 60분의 1이니 하는 비교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비교 자체가 별의미가 없다는 것을. 20세기 체제 경쟁 시기도 아닌데 북한을 크게 앞지른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우쭐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개선하고, 남북한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해 안정적인 통일로 나아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 상대방인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생각이 아주 다른 것 같다.
김정은이 한국을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것은 익히 알려졌다. 그에 따르면 남북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다. 여기서 문제는 상관없는 국가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라고 한 점이다. 상관없는 국가라고 하면 통일 안 하고 그냥 따로 살면 된다. 하지만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한 이상 김정은은 한국을 이기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더군다나 8월19일부터 29일까지 북한이 매년 민감하게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lchi Freedom Shield)’가 실시됐다. 강 건너 불 보듯 가만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올해 김정은은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해 힘을 덜 들이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실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8월24일 국방과학원 무인기연구소의 무인기 성능시험을 현지지도했다. 이어 8월27일에는 240mm 방사포 무기체계의 검수 시험사격을 참관했다. 24일 자폭형 무인기 성능시험은 한국의 K2 전차 모의 표적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7일 시험사격한 240mm 방사포는 서울 등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재래식 무기다. 한미 연합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땅을 정조준하는 무기체계를 선보이면서 대남 공격과 위협이 목적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미사일 부족한 北, ‘가성비’ 자폭 무인기 내세워
이는 미사일 시험발사나 전군을 동원해 하계훈련을 확대 실시하는 대응에 비하면 ‘비용’과 ‘노력’이 훨씬 절감되는 방식이다. 또한 국정원이 8월26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대로 북한이 러시아에 미사일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을 충분히 수급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번 여름 미사일 시험발사는 북한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이 부담을 피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대응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무기 개발에서 마이 웨이(my way)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실익도 거두고 있다.
김정은이 이번에 현지지도한 자폭형 무인기는 K2 전차 모형에 수직으로 낙하해 이를 완전히 파괴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폭형 무인기는 사실 새로운 개념의 무기는 아니다. 한국군은 레이더 전파를 역추적해 적의 레이더를 파괴하는 이스라엘 ‘하피’ 무인기를 1990년대 도입한 적이 있다. 북한도 그동안 자폭형 무인기를 소량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다만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탱크를 파괴하는 무기로 무인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자폭형 무인기는 제작 비용은 저렴한 데 비해 다양한 표적에 은밀히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순항미사일 역할을 일부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도 평가한다. 북한이 자주 시험발사하던 탄도미사일은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이 가능하지만 자폭형 무인기는 저소음, 저공비행이 가능해 레이더에도 잘 잡히지 않아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적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자폭형 무인기를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당시 러시아 측이 북한에 선물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만약 북한이 선물받은 자폭형 무인기를 본떠 자체 제작에 성공한 것이라면 북한은 재래식 전력 강화에서 큰 성취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12월 당 중앙위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무인항공 공업부문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나아가 러시아에 미사일뿐만 아니라 무인기도 공급하는 후방 군수공업기지 역할을 톡톡히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정은의 이번 현지지도는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이 러시아에 대해 직접 ‘품질보증서’를 발행해 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은의 대러 무기 ‘품질보증서’ 발행은 작년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을 앞두고도 이루어진 적이 있다. 작년 8월3일부터 5일까지 김정은은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을 비롯한 중요 군수공장들을 현지지도한 바 있다. 북한 매체는 소총을 쏘는 김정은의 모습도 보도하면서 그가 “국방경제사업의 중요 방향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국방경제사업’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국방사업이 곧 경제사업이라는 뜻인데 무기 수출로 외화 획득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김정은, 무기 수출로 외화 획득 노려
실제로 김정은은 작년 8월 군수공장을 연속 현지지도하기 직전인 7월2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무장 장비 전시회-2023’에 초청했고, 그 이튿날 7·27 전승절 열병식에 쇼이구 장관과 주석단에 함께 올라 북한 무기체계를 종합적으로 선보인 바 있다. 그리고 작년 9월경부터 무기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컨테이너가 북한에서 러시아로 다량 넘어가면서 북한의 대러 무기 수출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북한의 ‘국방경제사업’이 국민총소득에 ‘0’ 하나를 더 붙일 수 있을 정도의 경제성장 견인차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외화 획득에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가뭄의 단비가 작년 3.1% 성장한 북한 GDP를 올해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면 북한은 제재 장기화, 코로나 팬데믹, 자연재해의 긴 터널을 지난 후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잠시나마 만끽할 것이다.
그러나 한숨 돌리는 정도라는 게 문제다. 한때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방문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김정은이 한숨 돌리는 정도에 만족할 수 있을까? 언젠가 북한이 ‘국방경제사업’ 대신 경제 개방과 해외투자 유치에 나서기를 기대한다면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한국 경제의 60분의 1에 불과한 데 만족하는 김정은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