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캐피탈, 새로운 승계 재원 창구로 주목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유력한 후계자인 김준영씨가 이르면 올해 말 그룹 지주사인 하림지주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하림그룹을 떠난 지 3년여 만이다. 당시는 편법승계와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막바지이던 시기였다. 경영수업 복귀를 앞둔 준영씨의 최대 과제는 편법승계 논란으로 불거진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고 시장으로부터 경영능력을 입증받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의 시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편법승계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유에서다.
1992년생인 준영씨는 2018년 하림지주 경영지원실 과장으로 입사하며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불과 3년 후인 2021년 JKL파트너스로 자리를 옮겼다. JKL파트너스는 하림그룹이 2015년 팬오션을 인수할 당시 인연을 맺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재계에서는 준영씨의 퇴사에 대해 당시 진행 중이던 편법승계 관련 공정위 조사와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준영씨의 이직 시점이 공정위 과징금 부과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공정위 과징금 부과 시점에 하림 떠나
공정위는 2017년 하림가(家) 편법승계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하림그룹이 2010년부터 준영씨를 중심으로 한 승계작업에 착수했다고 판단했다. 하림그룹은 당시 계열사이던 한국썸벧을 한국썸벧과 한국썸벧판매(현 올품)로 물적분할했다. 이로써 ‘김홍국 회장→한국썸벧판매→한국썸벧→제일홀딩스(현 하림지주)→주요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김 회장은 2012년 준영씨에게 한국썸벧판매 지분 100%를 증여했다. 당시 준영씨는 한국썸벧판매 주식 6만2500주를 유상감자해 마련한 자금 100억원으로 증여세를 납부했다. 그 직후 올품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일감 몰아주기 등이 이뤄졌다. 그동안 재벌가 편법승계 과정에서 애용돼온 방식이었다.
그 결과 준영씨는 올품(5.78%)과 올품의 100% 자회사인 한국바이오텍(16.69%)을 통해 하림지주 지분 22.47%를 보유하게 됐다. 김 회장(21.10%)의 하림지주 지분율을 상회하는 규모다. 자기 자본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올품→한국바이오텍(옛 한국인베스트먼트)→하림지주→하림·팬오션·제일사료·선진·팜스코→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조사 결과,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동물용 약품 고가 매입과 통행세 거래, 주식 저가 매각 등의 방식을 동원해 올품을 부당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를 준영씨에 대한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판단했다. 조사 과정에서 확보한 ‘회장님 보고자료, 한국썸벧 및 지분이동’ 보고서가 주된 근거였다. 2010년 8월19일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준영씨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올품을 증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정위는 2021년 말 올품과 하림그룹 계열사들에 54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림그룹은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및 시정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2월 패소했다. 하림그룹은 이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한 상태다.
그동안 준영씨는 JKL파트너스에서 투자 및 포트폴리오 관리 업무를 담당해 왔다. 재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그의 복귀를 예상해 왔다. 그해 3월 준영씨가 NS쇼핑과 글라이드 등 그룹 계열사들의 사내이사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준영씨는 조만간 JKL파트너스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이르면 올해 말 하림지주로 복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자금 활용해 금융업 영위
재계에서는 준영씨에 대한 경영권 지분 승계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점에서 하림지주 복귀 이후에는 경영능력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편법승계에서 비롯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쉽지 않으리란 시각이 적지 않다. 지금도 편법승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과거 승계자금 창구였던 올품은 2017년 공정위 조사 시작을 기점으로 내부거래를 축소했다. 새 현금 창구 역할은 올품의 100% 자회사인 에코캐피탈에 넘어갔다. 에코캐피탈은 하림그룹의 금융업 진출을 위해 2010년 제일사료(30%)와 제일곡산(30%), 농수산홈쇼핑(20%), 선진(20%) 등 계열사들이 자본금 2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할부금융사다. 그러나 2015년 올품에 매각되면서 사실상 준영씨의 개인회사가 됐다.
에코캐피탈은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확보한 자금으로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다. 에코캐피탈이 발행한 기업어음(CP)을 그룹 계열사들이 매수하는 방식이었다. 계열사 간 CP 거래가 활발해진 건 2020년 무렵이다. 확인 결과, 한강식품과 하림펫푸드, 글라이드, NS쇼핑 등 하림그룹 계열사들은 그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36차례에 걸쳐 20억원 이상의 에코캐피탈 CP를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거래된 CP 규모는 총 2800억원이었다. 여기에 매수 금액이 20억원 미만인 에버미라클과 경우, 하림유통, 엑셀로이콰인알앤디센터, 맥시칸, 익산 등 계열사들의 사례까지 더하면 에코캐피탈 CP 거래 횟수와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2800억원 중에는 이미 발행된 CP를 연장 발행하는 건이 중복돼 있다”며 “연장 건을 제외한 CP 발행 규모는 142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하림 “에코캐피탈 특혜 전혀 없다”
문제는 CP 매수에 동원된 계열사 중 경영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한강푸드는 지난해 14억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2022년에는 22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글라이드는 수년째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58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 하림펫푸드는 200억원대 결손금이 쌓여있는 상태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축산 계열사들이 축산농가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축사 현대화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에코캐피탈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올해 5월 말 기준 계열사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전체 차입금 1774억원 중 27.2%에 해당하는 483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계열사들은 여유 자금이 있을 경우 타 금융기관 금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에코캐피탈 CP를 매수한다”며 덧붙였다.
에코캐피탈은 하림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에 힘입어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에코캐피탈의 당기순이익은 2020년 59억원, 2021년 74억원, 2022년 54억원, 지난해 20억원 등이었다. 이런 수익은 배당을 통해 고스란히 준영씨에게 흘러갔다. 실제 에코캐피탈은 매년 당기순이익의 50~60%대 배당을 결정했다. 그 결과 2020년 35억원, 2021년 40억원, 2022년 45억원 등 3년 동안 총 120억원이 올품에 배당금으로 지급됐다.
올품은 지난해 3월 설립 이래 처음으로 42억4500만원의 배당을 결정했고, 올해도 같은 액수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기간 올품이 배당한 84억9000만원 전액은 100% 주주인 준영씨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에코캐피탈이 거둔 수익이 올품을 거쳐 준영씨에게 전달되는 구조인 셈이다.
재계에서는 준영씨가 에코캐피탈과 올품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을 승계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준영씨에 대한 승계작업은 현재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부친 김 회장(21.10%)과 모친 오수정씨(2.52%)의 하림지주 지분을 넘겨받으면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된다. 6월11일 종가 기준으로 김 회장과 오씨가 보유한 하림지주 지분 가치는 각각 1448억원과 173억원이다.
준영씨가 김 회장 부부로부터 하림지주 지분을 넘겨받게 되면 증여세 최고세율(50%)이 적용된다. 이 경우 준영씨는 800억원 이상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재계는 준영씨가 세금 납부를 위한 재원을 올품과 에코캐피탈 등을 통해 충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에코캐피탈은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가 아닌 올품의 100% 자회사이기 때문에 편법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준영씨는 에코캐피탈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