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학생인권조례가 지나치게 학생 권리만 강조했다면, 학생의 책무 명시하는 조항 신설해 수정·보완할 수도
4월26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틀 전 충남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가결한 이후 두 번째다.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조례가 두 지역에서 잇따라 폐지되면서 교육 현장의 인권 상황이 악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 인권의 실현을 위해 제정된 대한민국 각 교육청의 조례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광주(2011), 서울(2012), 전북(2013), 충남(2020), 제주(2021) 교육청에서 연이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 공포했다. 이 조례들의 전반적 공통점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교육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양심·종교 및 표현의 자유, 자치 및 참여의 권리, 복지에 관한 권리, 징계 등 절차에서의 권리, 권리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소수자 학생의 권리 등을 보장했다는 점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오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예컨대 복장·두발 등 용모의 자유를 보장한 규정은 머리카락 길이뿐 아니라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속옷 색깔까지 규제하던 관행을 사라지게 했다. 이름만 자율일 뿐 사실상 강제였던 야간 자율학습도 선택으로 바뀌어, 학생들은 각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교생의 성적을 공개함으로써 학생의 존재 가치가 오직 성적에 좌우되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던 학교의 관행도 사라졌다. 또한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체벌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는 조례 제정 당시부터 있어왔는데, 비판하는 측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 둘째는 체벌금지 조항 등으로 인해 교권이 추락했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오해는 종종 부정확한 정보와 개인적인 편견 등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모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섹스’(sex·‘성’ 혹은 ‘섹스’로 번역 사용됨)와 ‘젠더’(gender·‘성별’ 혹은 ‘젠더’로 번역 사용됨)의 기본 개념을 살펴보면 된다.
‘섹스’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젠더’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남성의 몸을 타고난 개인에게 사회적으로 여성적·남성적인 역할이 기대된다는 의미다.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자신에게 기대되었던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 내용이 무엇이든, 여성·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대되는 모든 것이 바로 젠더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고 10만 부 이상 판매된 책 《젠더 퀴어》(마이아 코베이브, 2023, 학이시습)의 저자 마이아 코베이브는 여자아이로 살면서 10대와 20대 초반 내내 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경험담을 꺼내놓는다. 스스로를 젠더퀴어(genderqueer·자신의 젠더를 여성 혹은 남성과 같이 이분법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것)로 정체화하는 저자는 여자아이에게 기대되는 옷차림, 머리 길이, 제모 등 몸의 규범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또래들이 별다른 질문 없이 그러한 규범에 순응한 것과 달리, 마이아 코베이브는 그런 일상의 규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성장했다. 이러한 젠더 정체성은 누군가가 옆에서 조장 혹은 장려한다고 해서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누군가가 억압한다고 해서 영원히 억압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러한 개인이 성장, 발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의 수많은 조항 중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조항이 있다고 해서, 이성애자인 학생이 갑자기 동성애자로 변하는 것도 아니며, 그 조항 하나 때문에 학생들이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의 해당 조항에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뿐 아니라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단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우려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조례 통합도 대안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한 또 다른 쟁점인 교권 침해와 관련해서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 침해가 늘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거들이 이미 충분하다. 학계에서는 교권 침해 사건의 증가와 교권의 추락이 19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에서 발표한 ‘5·31 교육 개혁’을 계기로 가속화되었으며, 교육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5·31 교육 개혁’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 수요자로, 교사는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급자로 자리매김하면서, 전인교육이 아니라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교육을 하게 되었고, 학교 운영 등에 대한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불러와 결국 교권 약화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렇듯 교권 침해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맥락과 관련지어 이해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이지, 단지 학생인권조례만 폐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학교에서 인권 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교육을 많이 경험한 학생일수록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교사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할 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의 발달과 성장을 돕는다는 숭고한 사명을 지니기에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백년지대계’다. 현재의 학생인권조례가 지나치게 학생의 권리만을 강조했다면, 학생의 책무를 명시하는 조항을 신설해 조례를 수정·보완할 수 있다. 또한 교사 및 학부모·양육자의 권리와 책무 또한 규정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기존의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조례(2020년 제정)를 통합하는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안’을 추진 중이다. 모든 학교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방향이라면 이러한 움직임도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안 없이 학생인권조례부터 폐지할 것이 아니라, 교육이 본래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일이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내용을 함께 고민하며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