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상장기업 평균 ROE는 8%…해외보다 낮아
“주가 오르려면 기업 본연의 가치부터 높아져야”
금융 당국이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업의 참여부터 시작해 모두 ‘자율’에 맡긴다는 점이다. 참여하는 상장사들은 경영 현황을 진단한 후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지표를 선정해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이를 이행하는 과정까지 공개한다는 것이다. 공시 참여 여부는 물론 어떤 내용을 담을지도 모두 스스로 정한다.
핵심 지표에는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배당성향, 배당수익률 같은 재무제표뿐 아니라 비재무 지표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비재무 지표가 ‘지배구조’다. 이사회는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적절히 수립하고 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필요한 경우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도록 한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은 한국거래소(KRX)의 상장공시시스템(KIND)을 통해 자율공시로 제출하면 된다. 허위공시에 대해서는 부정거래행위 금지 등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조항이 적용되지만, 단순히 목표 달성이나 예측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불성실공시 또는 불공정거래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정 공시가 가능하다. 당국은 이달 중에 지침을 확정하고, 준비되는 기업부터 공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사실상 IR 강화 수준의 ‘밸류업’ 방안
기업가치 제고 지원방안은 저평가된 우리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증시를 부양하고 자산시장을 통한 국민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 기업들의 주식값이 그 실력에 비해 제대로 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주가가 뛰려면 주주가치 환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금융 당국이 발표한 지침에 대해 아쉽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 당국의 방안에 적극적인 유인책이 부족해 자율적인 참여만으로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더 큰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주가 제고를 위한 근본적인 방향이다. 밸류업은 말 그대로 기업 몸값을 높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가진 실력보다 주식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주가가 낮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금 주가는 우리 기업들의 실력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주가는 수익성의 결과다. ROE는 기업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1년간 얼마를 벌어들였는가를 나타내는 대표적 수익성 지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평균 ROE는 8% 수준이었다. 미국의 15%와는 차이가 크고 아시아에서도 대만의 14%, 인도의 13%는 물론 중국의 12%보다 못하다. 기업의 수익성이 낮은데 주가가 높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704개 개별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에 불과했다.
우리 기업들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보다 주식시장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거래소가 2023년 결산 재무제표를 반영해 코스피200 기업의 투자지표를 산출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의 PBR은 1배 수준이다. 미국의 4.7배는 물론이고 1.6배의 일본이나 2.7배의 대만보다 낮았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PBR 수준이 낮은 것은 돈을 벌지 못하는 쓸데없는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표적으로 PBR이 낮은 주식은 금융주다. 국내 금융주의 PBR은 0.4~0.6배 수준이다. 가진 자산과 비교해 수익성이 너무 낮아 주가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우리나라 은행들의 평균 ROE는 5.2%로 미국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수익성이 낮은데 자산이 많다고 높은 주가를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우리 기업의 배당률이 약간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주환원율이 곧 주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주는 배당을 많이 줘서 이익을 보나, 배당을 주지 않고 회사에 이익이 많이 쌓여 주가가 올라 이익을 보나 큰 차이가 없다. 올 1분기 코스피200의 주주환원수익률을 미국 S&P 500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0.8%포인트에 그쳤다. 2015년 3.5%포인트에서 많이 줄어들기도 했다.
주가가 오르려면 먼저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야 한다. 일본의 밸류업 성공 사례를 많이 얘기하지만, 일본의 주가 상승은 주주환원 정책 이전에 먼저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기업 이익 덕분일 것이다. 수익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주가는 그다지 나쁜 수준이 아니다. 우리나라 코스피200 기업의 PER은 이미 21.2배 수준이다. 24.6배의 미국보다 조금 못한 정도일 뿐이다.
기업 수익 늘어나야 주가도 오른다
우리 기업의 수익성이 낮은 데 정책 당국의 책임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은행의 수익률이 낮은 것이나 전력요금에 경영 성과가 좌우되는 한전 같은 상장 공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문제의 배경에는 정책 당국이 있다. 수익성을 묶어놓고 주가가 뛰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우리 기업들의 가치 하락 원인으로 꼽혀온 지배구조 문제는 다시 지적할 필요도 없겠다. 합법적으로 지배주주가 개인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묵인하는 상황 속에선 어떤 밸류업 정책도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다.
주가가 오르려면 먼저 기업 본연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국내 기업은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가치가 낮아 주가가 싼 것일 뿐이다. 한국의 주식값은 싸지만, 지금보다 비싸야 하는데 싼 건 아니다. 개방된 시장에서 실적과 무관한 저평가란 있을 수도 없다. 정말 실적과 비교해 현저하게 주가가 낮은 기업이 있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물론 금융 당국의 밸류업 방안에 의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증시 전반의 투자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선도 기업이 실질적인 목표와 이행 계획을 제시하고 경쟁 기업끼리 공시 이행 상황이 비교되면 보이지 않는 시장의 압력으로 작용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기업 IR을 강화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는 정부 대신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활동이 동력을 받아 더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당국은 구체적인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세제 지원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여당의 총선 참패로 인해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하다. 시행한다면 자사주 소각에 대한 법인세 감면, 배당소득세 조정 등이 그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