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스라엘 향해 보복 공격한 이란 한 달 체류기
히잡 벗은 젊은 여성과 K팝 심취한 청년들 거리 활보
4월13일, 이란이 세계 뉴스의 중심에 등장했다. 이날 이란이 이스라엘의 자국 영사관 공격에 보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로 타격하는 ‘진실의 약속’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 이틀 전까지 이란에 한 달여 동안 체류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필자에게 이란의 현지 분위기, 특히 주변 청년층이 지금의 이란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필자는 “정부를 지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의 청년층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가장 극적으로 나뉘는 집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속적 청년들 “혁명? 알고 싶지도 않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등장한 ‘이슬람 공화국’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란의 팔레비 왕정은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만, 무엇보다 서구화에 대한 문화적 반발이 겹치며 무너졌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에서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들이 정국을 장악했다. 이들은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 제도를 설계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정치 체제는 성직자 중에서 국가를 이끄는 최고지도자가 종신 집권하고, 유권자들은 제한된 권한을 지닌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호메이니와 그 뒤를 이은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의 막강한 권력을 통해 이란을 이끌었다. 혁명 정부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국가를 방어하고, 교육·보건·인프라 투자를 통해 중산층을 확대하며 대중적 지지를 계속 얻어냈다.
하지만 21세기로 향하며 이란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팔레비 왕정, 이슬람 혁명과 전쟁의 기억이 아예 없는 1980년대생들은 이란 정부가 외치는 이슬람 도덕과 혁명 정신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위성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신세대는 서구식 소비문화, 성평등 같은 의제를 더욱 중시했다. 이슬람 혁명이 역설적으로 세속적인 신세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2006년 이란이 핵 개발 문제로 유엔의 제재를 받기 시작하며 경제가 악화되자 문화에 이어 경제적 문제까지 더해졌다. 정치·문화적 억압을 향한 저항과 경제 제재 완화를 위한 유화적 외교정책을 외치는 청년층은 개혁파로 집결했다. 이 움직임이 폭발한 것이 부정선거 논란이 대규모 시위로 격화된 2009년의 이란 녹색운동이다. 정부는 녹색운동을 억압했지만, 청년층이 주도하는 개혁파 지지세는 이후에도 이어져 2013년에는 중도파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과 핵 합의를 통해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의 대외 개방을 이끌겠다는 공약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어 이란 핵 합의가 파기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대해 더욱 강한 경제 제재를 가했고, 이란에서는 미국에 배신당했다는 보수파의 목소리가 크게 불거졌다. 보수파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시 조이고, 중동 전역에서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과 대립했다. 대내외적인 개방 욕구가 좌절되고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교육받은 청년층은 정부 자체를 불신하며 자신들만의 문화 공간을 만들어나갔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을 계기로 벌어진 히잡 강제 반대 시위는 2009년 녹색운동을 뛰어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어 보수파를 경악시켰다. 필자가 올해 이란을 방문했을 때는 여전히 이 시위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길거리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K팝과 일본 만화, 미국 팝송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는 청년들은 이슬람 공화국의 선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보수적 청년들도 상당수 존재…서로 대치
물론 이들이 이란 청년 세대의 전부는 아니다. 필자는 테헤란의 한 카페에서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며 정부에 충성하는 보수적인 청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신실한 이슬람교 신자였고, 히잡의 의무 착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란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대사관 공격에 이란이 보복을 가해야만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반적인 선입견처럼 ‘교육을 받지 못해 정부의 선전을 그대로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어를 수준 높게 구사했고, 필자에게 페르시아 문학과 예술, 전통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교육받은 이들이었다.
이 역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체제 성격과 연관이 없지 않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의 이념에는 ‘억압받는 자의 해방’이라는 평등주의가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혁명 정부는 빈곤 계층에 광범위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지지를 확보하고 있고, 이슬람 공화국에 충성을 표시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보상을 제공하며 그들을 체제의 기둥으로 삼았다. 이런 이들에게 이슬람 공화국은 자국의 역사와 전통을 수호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며, 그들의 삶 자체를 책임져주는 등대처럼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란에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청년층의 저항이 자주 관찰되더라도, 여전히 보수적·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층도 상당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들 간에 가치관 차이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보수적 청년층은 세속적 청년층의 저항이 너무 거세졌다고 혀를 찼으나, 러시아와 중국이 성장하며 ‘전 세계 전통주의 동맹’이 승리할 것이란 기대를 표출했다. 반면 세속적 청년들은 어차피 종교 지도자와 혁명수비대 고위층 자녀들도 인스타그램에서 명품 가방을 자랑하는 시대이니만큼, 이란의 세대교체에 따른 문화 자유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혁명과 전쟁을 통해 성장한 현재의 주류 엘리트가 다스리는 동안엔 여러 도전에도 이란 체제는 안정을 유지할 것이다. 체제의 안정성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세대교체 국면을 어떻게 넘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히잡 시위, 이스라엘과의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란의 새로운 세대가 둘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한 카페에서 대화한, 딸 둘의 아버지인 30대 보수파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저는 지금의 정부를 여전히 지지해요. 하지만 정부를 싫어하는 친구들은 지금의 방식으로는 설득되진 않을 거예요. 우리가 화해할 수 있는 새로운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제 딸이 살아갈 미래에도 필요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