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채납으로 세워진 강릉 ‘솔올미술관’
풍부해진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양질 콘텐츠 유지 관건
‘기부채납'이란 제도가 있다. 글자 그대로 국가나 지자체에 기부한 개인 재산을 정부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기부’란 표현이 무색하게, 주로 건설사들이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허락받는 대신 도시 기반시설을 지어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관행이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나 다름없다.
기부채납 대상이 되는 인프라로는 도로나 주차장, 공원과 같이 지역사회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시설이 일반적이다. 한편 기부채납이 지역에 수준 높은 문화시설을 유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이용하는 도서관이나 스포츠센터뿐만 아니라 지역 명물이 될 수 있는 미술관, 공연장도 기부채납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솔올, 기부채납 성공사례 LG아트센터 길 걸을까
재작년 10월에 서울식물원 내에 조성된 ‘LG아트센터 서울’가 대표적이다. 앞서 서울 마곡동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LG의 주요 연구개발 기관들이 모인 LG사이언스파크가 이곳에 들어섰다. LG는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식물원 내에 공연장을 짓고 서울시에 기부채납했다. 임팩트 있는 문화 랜드마크가 필요했던 서울시와 LG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성사된 결과였다. 그렇게 식물원 안에 공연장이 들어와 있는 독특한 그림이 완성됐다.
LG아트센터 서울은 앞으로 20년간 LG에서 운영권을 갖고 공연장을 꾸려나간다. 기부채납의 조건으로 이런 방식의 ‘빅딜’이 성사되곤 한다. LG는 개관작부터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업으로 화려하게 시작했다. 작년 봄 파리 오페라 발레단 공연을 유치하더니, 올해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안무가’라 불리는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5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다. LG아트센터 서울이 이렇게 핫한 공연 라인업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LG라는 대기업의 자본력, 그리고 20년 넘게 아트센터를 운영해본 노하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개관한 강릉의 솔올미술관도 기부채납된 사례다. 최근 다양한 핫플레이스들로 화제가 끊이지 않는 강릉에 문화예술 명소가 하나 더 추가됐다. 미국의 유명 건축사무소가 참여해 개관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솔올미술관은 그 명성답게 인상적인 외관과 구조를 자랑했다. 강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지는 건축가에게도 욕심나는 장소였다고 한다. 개관 때 선보인 이탈리아 현대미술가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들은 새하얗고 정갈한 미술관 건물과도 잘 어울렸다. 로비 천장에 설치했던 네온 구조물은 원래 미술관 조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솔올미술관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교동 7공원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이 있다. 도시공원인 교동 7공원 부지를 민간 기업에서 매입하고 공원을 만들어 기부채납 하는 대신 일부 면적에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도시공원이라고 하지만 원래 자연을 대부분 그대로 두고 솔올미술관을 비롯한 산책로, 주차장 등의 시설이 들어와 있는 모습이다. 강릉시는 이 사업을 추진하며 미술관 설계에 해외 건축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강릉 중심부인 교동에 강렬한 랜드마크를 세우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완공된 솔올미술관은 아름다웠다. 현대미술 전시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샀을지는 모르지만 강릉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한층 풍부해지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었다.
공공의 관습서 벗어나 내실 탄탄히 채워야
기부채납 제도에는 단점이 있다. 민간에서 좋은 시설을 만들어 기부해도 그것을 받은 공공에서 제대로 운영을 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란 것이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운영권이 20년 동안이나 LG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기라성 같은 건축가 작품인들 문화시설의 본질은 결국 콘텐츠다. 그 성패는 공공이 늘 하던 식의 관습적인 방법에서 얼마나 벗어날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어쨌거나 강릉시청이 미술 전문기관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려한 출발을 알린 솔올미술관이 정말 강릉의 ‘명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