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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가여운 것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성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즐거움과 건강한 소통의 통로

요즘 아주 핫한 영화가 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유수의 영화제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등 무려 89개 트로피를 거머쥔 《가여운 것들(poor things)》이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흥행한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 여주인공 벨라를 연기했으며,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가 바람둥이 매력남 변호사 덩컨 역을, 학식은 대단하지만 괴팍한 과학자이며 의사 역할을 유명한 연기파 배우 윌럼 데포가 맡아 열연했다.

《가여운 것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에 만삭의 귀족 여인이 투신하고, 그 여인은 숨만 붙은 채 갓윈 박사에게 인계된다. 갓윈 박사는 배 속 아기의 뇌를 만삭 여인에게 이식해 그녀를 되살리고 벨라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다. 아기의 뇌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벨라는 성인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숙하기만 하다. 갓윈 박사는 성실한 조수와 결혼시켜 그녀의 삶을 안정시켜 주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은 그녀를 유혹해 낸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유를 원하는 벨라는 덩컨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한편 덩컨과 ‘신나는 운동’처럼 본능적인 섹스를 한다.

영화 《가여운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성을 억압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가 배경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가면서 벨라는 점점 정교한 언어와 자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일말의 사건으로 둘은 빈털터리가 되어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며 벨라는 더욱 주도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가지만 갓윈 박사의 병세 악화 소식을 듣고 벨라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영국의 가장 금욕적인 시기였고 성의 암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시대인데, 이 시기 영국은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였다. 64년을 재위한 빅토리아 여왕은 고집스럽고, 신앙심이 독실한 데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 시대사조 때문인지 당시 영국은 금욕을 미덕으로 삼아 성을 심하게 억압했다. 그 시절 여성들은 성에 대한 어떤 교육도 정보도 받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성을 쾌락으로 느끼지도 못하도록 강요받았다. 결혼 첫날밤 딸이 엄마에게 ‘오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너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만 해라. 그리고 영국만 생각하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도서관에 남성과 여성 작가가 쓴 책을 섞어 꽂지도 않았고, 남성들이 여성 앞에서 닭가슴살 요리나 닭다리 요리라고 하는 것도 실례였으며, 부부간 성생활도 아이를 낳는 목적이 아니면 신고하고 처벌당할 정도였다. 물론 실제로 ‘순결’과 ‘정조’라는 개념은 여성에게 더욱 중요했고, 여성에 비해 남성은 불륜도 매춘도 자유로웠다. 이처럼 성을 억압했던 빅토리아 시대였지만, 그 시절에 가장 많은 매춘과 성병이 창궐했다고 한다.

영화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를 성인 여성의 몸에 아기 뇌를 가진 미숙하고 성뿐 아니라 모든 것에 무지한 존재로 표현한 것도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 대한 작가의 통절한 비유였을 것이다. 다행히 벨라는 자신이 입은 기묘한 의상처럼 시원하게 다리를 드러낸 채 기존의 성윤리를 깨부순다.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은 비록 행동과 사고가 아기 같은 벨라지만, 여성의 성을 탐닉하는 존재로서 성욕과 소유의 대상으로서만 벨라를 바라본다. 그러나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그래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려 하는 벨라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덩컨은 잘생기고 섹스도 잘하고 신사인 척 나오지만, 본모습은 스스로도 자신이나 상대의 성에 대해 무지하며, 가문의 경제적인 지원이나 지위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다.

또 벨라가 자살 시도를 할 만큼 혹독한 삶을 살게 했던 남편 블래싱턴 경 역시 피스톨 없이는 하인에게 사소한 지시조차 못하는 유약하고 난폭한 사람이다. 피스톨, 즉 총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듯이 그는 아내의 성과 인격을 억압할 뿐 아니라, 그녀의 성욕을 다스리기 위해 음핵 절제를 지시하는 무도한 남편이다. 실제로 예전부터 여성의 성욕은 남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성적 쾌락의 보고이며, 오르가슴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음핵 또한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것으로 보았기에 이 시대에는 음핵 절제가 여성을 통제하는 주요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 수위가 높은 성행위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야하다는 생각이 거의 안 드는 이유는 사랑, 아니 호감,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건조한, 그야말로 격렬한 운동을 하듯 성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벨라 역시 먹고살기 위해 성을 팔지만, 어떠한 정서적 교류도 없이 섹스를 하고 있는 자신이 고갈되고 건조해짐을 느낀다. 성이란, 섹스란 그런 것이다. 호감이나 사랑 같은 정서적 교감 없이 육체만이 부딪치는 성적 행위는 자괴감만 남는다.

결국 《가여운 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대가 사람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 본능인 성욕을 억압하면서 성에 대해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고, 심지어 죄악시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사람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모두 가여웠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 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그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강요받고 있으니 나아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영화 《가여운 것들》 스틸컷 ⓒ네이버 캡처

성교육·성담론 경직된 국내 현실 떠올라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이중적인 성의식과 함께 점점 더 성교육과 성담론에 경직돼 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답답했다. 지난해 충남도의 도서관에서 ‘성’ ‘여성’ ‘성평등’ 관련 도서 117종이 서가에서 뽑히고, 경기도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아이들은 온갖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회의 성 이슈에 노출되는데, 오히려 학교 성교육은 축소되고 있다. 성에 대해 ‘쉬쉬’하면서, ‘섹스’란 말도 공공연하게 못 하는 엄중한 사회에서, 아이와 함께 보는 저녁 뉴스 시간에 공영방송이 ‘한 연예인과 불륜녀가 나누는 녹취록’을 틀어대는 기묘하고 이중적인 성의식이 지금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본능을 금기로 억압하면, 당연히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인데 금기를 어겨야 하기에 죄책감이 생기고 그것은 강박이 되며, 결국 사회는 변태스러워진다. 이는 꼭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은 인간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성교육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게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주도권과 결정권을 갖게 한다. 독일이 성교육을 ‘민주시민교육’이라 칭하며 성실히 추진하는 이유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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