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질이 부족하고 미숙하다는 인식 더 깊어져
세대교체와 청년정치 논의의 실종은 ‘수요’가 아닌 ‘공급’의 문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20일도 남지 않았다. 얼마 있으면 여야는 모두 윤석열 정부의 중간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21세기 들어 총선이 으레 그랬듯이 이번 총선의 관심사도 결국 ‘공천’에 모아지고 있다. 어떤 인물이 주요 정치인으로 선택될지, 그 인물이 속한 계파는 어디인지, 그 인물의 성장 배경과 철학은 무엇인지가 공천으로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총선 이후의 정국은 바로 그 인물들을 통해 수행될 것이기 때문에, 공천은 당연하게도 지지율 변동 추이, 총선의 실제 결과로까지 연결된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공천과는 과정이 다르지만, 익숙하거나 새로운 인물들이 모여 만든 제3지대 정당 역시 인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비슷하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과 제3지대 양상에서 ‘청년정치’나 ‘세대교체’ 담론이 아예 사라졌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역동적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정치는 언제나 세대교체를 주요한 의제로 삼았다. 민주적 선거가 아니라 군사 쿠데타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5·16도 박정희가 주도한 세대교체였고, 전두환의 제5공화국도 박정희 세대를 교체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위 ‘3김’의 보스 정치를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대학 운동권 출신의 ‘386’을 대거 기용했다. 이후 386세대의 패권이 공고화되면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포스트 386’으로의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세대교체 아닌 기성정치 보충제 정도 그쳐
그런 와중에 세대교체와 함께 등장한 담론이 바로 청년정치였다. 이전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기득권이 공고해진 한국 사회에서,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은 청년들이 직접 정치 당사자로 기용되어 청년층을 대표하고,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논의였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전격 발탁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였다. 이준석 대표는 그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치적 기반을 쌓았고, 2021년 보궐선거와 2022년 대통령선거에는 청년층의 표심을 뒤흔들어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여러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청년 정치인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는 2020년 총선에서 비례의원으로 당선된 장혜영 정의당(현 녹생정의당) 의원과, 정의당을 탈당해 개혁신당에 들어간 류호정 후보가 있었다. 본래 노동조합에 기반한 전통적 좌파 의제를 반영하는 정당이었던 정의당은 청년 여성 당사자를 중심으로 여러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포용할 것을 표방하며 장혜영과 류호정을 전면 배치했다. 두 의원의 활동에서는 소수 정당의 한계가 뚜렷했지만 적어도 여러 퍼포먼스를 통해 그 이름만큼은 전국적으로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뉴미디어를 활용한 청년 정치인들의 퍼포먼스는 부분적으로 세대교체론과 386 용퇴론 등을 자극하며 정치적 변화를 이끌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확인되자마자, 이번 총선에서 청년정치론 및 세대교체론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국민의힘도 ‘386 퇴진’이라는 세대적 비판 대신에 ‘운동권 청산’을 내걸었다. 민주당에서도 유명 386 정치인들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후속 세대가 더 많이 진출하고는 있지만 이를 청년정치나 세대교체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이다. 전형적인 ‘팬덤정치’ 문법을 따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지지율 ‘0%’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청년정치의 존재감은 왜 이리 갑작스럽게 희미해진 것일까? 윤석열 정부의 국정 혼선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민주당 이재명 체제에 대한 불만, 대통령 부인을 둘러싼 스캔들에 집중하는 정치를 고려하면 세대교체에 대한 아우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중요한 원인으로 2010년대 들어 부상한 청년 정치인들이 다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준석 대표, 장혜영 의원, 류호정 후보 등은 여러 파격을 보여주며 인상적인 활동을 했지만, 대중이 현재 한국 체제에 대해 갖는 불만을 적확하게 짚어 동원해 내지 못했다. 세대교체가 아니라 기성정치에 더해지는 보충제 정도의 인상만을 남긴 것이다. 게다가 새로 부상한 청년 정치인들이 기존 당과 화합하지 못하고 계속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은 청년 정치인들은 신의가 없고, 국정을 맡기기에는 너무 미숙하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류호정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좌우 정당에서 탈당해 제3지대를 만들자고 손을 잡았지만, 명확한 의제 없이 이루어진 연합은 세대교체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인상을 주기 어려웠다. SNS 막말 논란으로 국민의힘 공천이 취소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정한 장예찬 후보도 마찬가지로 청년 정치인은 ‘자질이 부족하고 미숙하다’는 종래의 인식에 부합하는 사례가 되었다.
능력 있는 청년들, 정치 택할 유인 사라져
이들 대부분은 2010년대에 청년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다음 문제도 등장한다. 2010년대에 등장한 이들은 ‘자질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2020년대에는 그런 인지도를 지닌 청년 정치인이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이 추세라면 2010년대 청년 정치인들이 모두 40대가 되어 더는 ‘청년’이라는 말을 쓰기 힘들 때조차도 후속 세대의 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다. 종합했을 때, 세대교체와 청년정치 논의의 실종은 ‘수요’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공급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충분히 잠재된 수요마저 나타나기 어렵게 되었다.
청년 정치인 공급의 문제는 결국에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정치는 리스크는 커졌지만, 그 보상은 팽창한 민간 영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공적 야망보다는 사적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게 된 세대 문화의 변화도 주효했다. 그러니 능력 있는 청년들이 정치인이라는 길을 택할 유인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신세대 정치인의 가뭄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사회의 방향을 결정할 정치 영역에 새로운 피가 공급되지 않는 것은 구성원 전체 차원에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가 시대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고여 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모든 난점에 대한 해답은 ‘세대교체는 무의미하다’ 혹은 ‘청년정치는 필요 없다’가 아닐 것이다. 정치 영역에 어떻게 유능한 청년을 끌어모으고 책임 있는 지도자로 훈련시킬 것인가, 바로 그 공급 측면을 다시 살피는 것이 한국 사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