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참사 원인 '임시제방' 시공사 금호건설-감리사-행복청의 품의서 등 결재 문건 입수
“침수 위험” 알고도 3100만원 들여 ‘흙깎기’로 지은 제방…높이는 자체 안전 기준치에도 미달
곳곳에 보이는 원가 절감 흔적…임시제방 승인한 조완석 사장은 참사 후 대표이사로 영전
“결재권자 책임 따져 중대시민재해로 처벌해야”…금호건설 “문제 있었으면 이미 구속됐을 것”
지난 여름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오송 참사’와 관련해 부실 공사와 책임 면피의 정황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 참사 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의 공사를 맡은 금호건설과 감리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작성한 문건을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했다. 해당 문건에는 임시제방의 축조 방식과 비용, 결재 라인 등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금호건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저렴한 축조 방식을 선택했고, 참사 후 승진한 신임 사장이 임시제방 설치안을 최종 결재했으며, 감리사는 침수 위험을 알고도 수정 없이 설치안을 통과시킨 사실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오송 참사의 배경이 된 공사의 정식 명칭은 ‘오송∼청주(2구간) 도로 확장공사’다.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이 공사의 발주처는 행복청, 수주처·시공사는 금호건설, 감리사는 (주)이산이다. 행복청에 따르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교각을 설치하기 위해 미호천교 아래의 기존 제방 일부가 철거됐다. 금호건설은 올 6월29일부터 7월7까지 임시제방을 쌓았다. 이후 7월18일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미호강이 범람했고, 인근 궁평2지하차도로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1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 당국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임시제방으로 사실상 결론 내렸다. 국무조정실은 감찰 결과 "부실한 임시제방 설치"를 사고의 선행 요인이라고 밝혔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 결과도 임시제방으로 모아졌다.
견고함 낮은 '흙깎기' 방식 적용...이유는 “공사비 최소화”
시사저널은 도로 확장공사가 시작된 2018년부터 참사 이후인 올 7월 말까지의 공사 관련 품의서와 실정보고서, 감리사의 검토의견서, 행복청과 감리사 간 주고받은 공문 등을 수십 장 입수했다. 이 중 2022년 8월 금호건설 현장사무소에서 작성한 실정보고서에는 임시제방의 설치 배경과 축조 방식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현장사무소는 축조 방식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외부 순성토 운반’과 ‘신설부 추가깎기 및 영내 운반’ 방식이다. 전자는 4100만원, 후자는 3100만원 가량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 전자는 공사 현장 바깥에서 토사를 가져오는 것이고, 후자는 공사 현장의 흙을 긁어모아 활용하는 일명 ‘흙깎기’ 방식이다. 이 중 현장사무소는 신설부 추가깎기 및 영내 운반 방식을 적용안으로 제시했다. 실정보고서에 따르면 “흙깍기(‘흙깎기’의 잘못) 토사 물량을 이용하여 금회 반영되는 제방 축조 예정”이라며 “순성토 대비 약 1000만원 절감”이라고 기재돼 있다. 임시제방을 공사 현장 주변의 흙으로만 쌓아 1000만원을 아끼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장사무소는 흙깎기의 장점에 대해 ‘공사비 최소화’ ‘공사기간 단축’ 등을 언급했다.
금호건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실정보고서를 도로 확장공사의 현장 감리사(책임건설사업관리기술자)인 (주)이산에 2022년 8월23일 제출했다. 다음 날 이산은 실정보고서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 문건에 “임시제방 축조는 타당하다고 판단됨”이란 검토 의견을 덧붙여 행복청에 ‘임시제방 축조 보고’란 제목으로 올렸다. 2022년 9월5일 행복청은 보고안을 원안대로 승인해 다시 이산에 넘겼고, 다음 날 이산은 금호건설에 이를 전달했다. 문제의 임시제방이 이런 식으로 건설된 것이다.
전문가는 미호강 인근의 흙깎기 방식이 외부 순성토를 이용하는 방식보다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백경오 한경국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하천의 흙을 이용해 제방을 쌓으면 사이즈가 비슷한 균일토가 유입되는데 이렇게 되면 물의 침투성 측면에서 불리하다”며 “크고 작은 흙이 섞여야 간격이 메워져 물 샐 틈이 줄어드는데, 흙의 크기가 모두 같다면 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정보고서에 따르면 금호건설은 임시제방 재료로 ‘다짐도(토양의 밀도를 나타내는 비율) 95% 이상’의 흙이 아닌 재료비와 공임비가 싼 ‘다짐도 90% 이상’의 흙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적은 양의 흙으로도 제방을 높게 쌓을 수 있지만 견고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와 관련해 백경오 교수는 “다짐도가 낮을수록 흙 사이 공간이 커진다”고 했다.
다짐도가 낮은 공사 현장의 흙을 퍼와 임시제방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자체 경고를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호건설 현장사무소는 실정보고서를 통해 “홍수 시 하천 수위 상승으로 공사구간 침수 가능”이라며 임시제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사구간 내 침수를 방지하기 위한 ‘홍수위(홍수 때의 수위)+1m’까지 임시제방의 축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장의 작년 최고수위 현황을 나열하며 ‘기존 제방 31.30m’ ‘홍수위 29.05m’라고 적시했다. 즉, 임시제방을 홍수위보다 1m 높은 최대 30.05m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금호건설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법적 기준은 더 높다. 지난해 미호강의 계획홍수량은 6640㎥/초로 기록됐다. 하천법상 계획홍수량이 5000 이상 1만 미만 ㎥/초라면 홍수위보다 1.5m 높게 지어야 한다.
하지만 행복청이 밝힌 실제 임시제방의 높이는 29.74m에 불과했다. 외부 순성토 없이 현장의 흙으로만 쌓아 기존 제방은커녕 안전 기준치에도 못 미치게 축조한 것이다. 사고 당일 홍수위는 29.87m로 임시제방 높이를 웃돌았다. 미호강 제방붕괴 원인규명 공동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맹승진 충북대 지역건설공학과 교수는 기자와 만나 “결국 최고수위보다 낮게 지어진 임시제방이 인명 피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법적 기준도, 자체 기준도 충족 못 한 임시제방
더욱이 금호건설은 낮은 제방이 초래할 위험까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실정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0년 사례를 보아 우기 시 현재 원지반보다 수위가 높아져 공사구간 내로 하천수가 유입돼 공사구간 침수가 불가피”하다며 “침수 시 궁평1교차로까지 하천수가 유입돼 도로 침수 및 이용자들의 통행 제한이 예상됨”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실정보고서를 만든 금호건설 현장사무소장 전아무개씨는 12월12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됐다. 실정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한 (주)이산의 최아무개 감리단장도 12월8일 구속됐다. 검찰은 12월19일 이례적으로 최 단장의 구속 기한을 10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최 단장은 행복청 사무관 출신인 ‘전관’으로 확인됐다.
행복청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는 건설기술진흥법상 발주청 대신 감리사가 현장을 감독하게 돼있다”며 “임시제방 축조 방식이나 필요 예산은 감리사와 시공사가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지 발주처가 개입할 수도, 알 수도 없다”고 해명했다. 발주처는 행복청이지만, 애초 흙깎기 방식을 제안한 금호건설(시공사)과 이를 그대로 통과시킨 (주)이산(감리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취지다.
‘더 싸게 더 싸게’…직영공사 전환까지
임시제방 축조를 포함해 ‘원가 절감’에 대한 금호건설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금호건설에서 통과시킨 오송∼청주 도로 확장공사 관련 품의서를 살펴보면, 2018년 7월 금호건설은 ‘토공 및 구조물 공사(지반을 다지고 구조물을 건설하는 작업)’에 대해 경쟁입찰 방식으로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 총 8개사가 참여했고 3차 입찰까지 진행한 끝에 최저가를 써낸 충청 지역 건설업체 K사가 선정됐다. K사가 투찰한 액수는 67억여원이다. 이는 금호건설이 원했던 낙찰가와 100% 일치했다.
K사와의 하도급 계약을 반영해 당시 금호건설이 목표로 한 원가율은 99.70%였다. 원가율이란 매출액 대비 원가의 비율이다. 그 수치가 낮을수록 매출이익이 커진다. 금호건설은 행복청과 229억여원에 공사계약을 맺었으니, 원가율 99.70%를 적용하면 매출이익이 6800만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저가로 하도급 계약을 맺었음에도 가져가는 이익이 터무니없이 낮았던 것이다.
하도급 공사는 2021년 8월 중단됐다. 문건에 나온 중단 이유는 ‘설계 변경에 따른 하도급사의 양호한 원가율 공종 삭제 및 투입인원 부족 등으로 공사 포기 요청’이다. 즉, 마진이 높은 공사 종류가 빠지고 공사량도 늘어나면서 K사가 손을 떼게 됐다는 말이다. 반면 금호건설 입장에서는 상황이 유리해졌다. 잔여 공사에 대해 견적을 검토해본 결과, 금호건설이 직접 수행하는 게 비용이 덜 들어가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계 변경으로 행복청으로부터 받는 도급액은 기존 229억여원에서 406억여원으로 늘어났다. 행복청이 공사 발주 시 추정했던 가격인 378억원(부가세 별도)을 넘는 수준이다.
금호건설은 후속 공사를 직영으로 돌리면서 목표 원가율을 94.38%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예상 매출이익은 약 22억원으로 증가했다. 기존 매출이익(6800만원)의 32배가 넘는 액수다. 이후 현장사무소의 보고에 따라 2022년 10월 임시제방 공사 등을 반영해 예산안을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3억930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지만 최종 목표 원가율은 93.47%로, 오히려 더 많이 남는 장사가 됐다.
더욱이 눈에 띄는 부분은 조완석 금호건설 신임 사장이 오송∼청주 도로 확장공사 관련 품의서 결재 과정에 모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2018년 1월 금호건설이 행복청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했을 때 입찰 대표자가 조 사장이었다. 이어 조 사장은 2018년 7월 K사와의 하도급 계약안을 경영관리본부 전무 자격으로 승인했다. 또한 2021년 8월 하도급 공사 중단 및 직영공사 전환안도 승인했다. 같은 달 올라온 후속공사 수행안에는 참조자로 이름을 올렸다.
안전보다 성장 앞세운 경영으로 비판 받아
결정적으로 조완석 사장은 부사장일 때인 2022년 10월 임시제방 공사를 반영한 예산안을 승인했다. 참사 발생 약 2주 후인 올 7월28일 수해복구비 집행예산안을 승인한 사람도 조 사장이다.
조완석 사장이 대표이사로 영전한 시기는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여 후인 11월30일이다. 같은 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금호가(家) 3세인 박세창 사장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사고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서재환 사장은 조용히 물러났다. 조 사장과 서 전 사장은 한국외대 동문으로 각각 박삼구 전 회장, 박세창 부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져 있다.
조완석 사장이 부사장을 맡았던 서재환 전 사장 체제에서는 안전보다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경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회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매년 꾸준히 늘더니 2021년에는 매출액이 사상 처음 2조원을 넘겼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23년 6월 세종시 주상복합 공사현장 근로자 1명 사망 △2023년 4월 분당 정자교 붕괴로 시민 2명 사상 △2022년 8월 수원시 오피스텔 공사현장 근로자 1명 사망 등이 모두 서재환 사장-조완석 부사장 경영하에서 일어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20위권 건설사 중 금호건설의 2021년 평균 합산벌점은 0.72점으로 3번째로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건설은 또다시 오송 참사란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더욱이 수사는 물론 피해자 보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송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임시제방의 축조안에 결재한 조 사장을 대표이사로 승진시킨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직책 무관하게 ‘의사결정권자’가 책임져야”
맹승진 조사단장은 “제반 공사는 행복청과 금호건설 간 계약이므로 모든 공문의 결재권자에게 책임의 경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오송 참사는 중대시민재해로 처벌돼야 하며, 발주처와 원청(행복청)뿐만 아니라 도급처·하청(금호건설)도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직책과 무관하게 금호건설에서 ‘의사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었냐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오송 참사가 금호건설의 ‘오너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지난해 1월 삼표산업 양주사무소에서 토사가 무너져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산업재해) 위반 혐의 ‘1호’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을 기소했다”면서 “정 회장은 삼표산업 대표가 아니지만, 검찰은 ‘정 회장이 삼표산업에서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오송 참사에서도 금호건설의 실질적 지배자가 기소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을 확인한 금호건설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12월18일 기자와 만나 “문건에 따르면 조완석 사장이 결재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조 사장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검찰이 일찌감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절차상 경영관리본부장이었던 조 사장이 공사 예산안에 결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사고가 날 때마다 결재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어떤 건설사 사장도 구속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이 오송 참사 이후 승진한 것과 관련해서는 “조 사장의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와 사고의 관계를 따질 수 없다”고 밝혔다. 감리를 맡은 (주)이산 측은 “담당자가 출장 중”이라며 12월21일까지 답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