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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 만든 사람, 여성 아닌 40대 남성으로 밝혀져
‘집게손 모양은 남성 조롱하는 것’이란 비합리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이른바 ‘집게손’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들끓고 있다. 열흘쯤 전에 발생한 이 사건에 관해 그동안 수많은 기사가 나왔고, 트위터 등 SNS도 시끌시끌하다. 이미 한국여성민우회와 민주노총 등 9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했고, 국회에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 및 여러 기관의 공동 주최로 긴급토론회도 예정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만드는 집게 모양인 ‘집게손’이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것을 조롱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집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게임회사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영상에서 한 캐릭터가 집게손 모양을 한 것을 지적하며 이를 남성혐오라고 규탄하며 온·오프라인 공격을 이어가고 있는 사건이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8년 전 ‘김치남’ ‘김치녀’로 시작된 젠더 갈등

11월25일 한 네티즌이 0.1초 단위로 스쳐가는 홍보영상을 캡처해, 집게손을 하고 있으니 이는 분명 ‘페미’가 남성혐오 상징을 게임에 심어놓은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고, 그 여파는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날 밤 10시경, 남초 커뮤니티의 ‘그들’은 해당 장면을 제작했다는 외주업체 ‘스튜디오 뿌리’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한 명을 지목했고, 그 여성이 과거에 페미니즘적인 발언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그들’은 피해자인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과 사진, SNS 계정, 카톡 아이디 등을 모두 온라인에 유포했고, 각종 혐오와 협박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11월26일 새벽 0시에서 2시경 넥슨은 해당 장면을 삭제했고, ‘그들’이 문제를 제기한 다른 유사한 집게손 장면도 삭제했으며, 온라인에 사과문을 올렸다. 해당 영상을 만든 외주업체인 ‘스튜디오 뿌리’는 넥슨의 요청을 받고 2차례나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또한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뿐 아니라 자사의 다른 모든 게임에서 집게손 모양이 나오는지 직원들을 동원해 전수조사를 했으며, 다른 게임회사들도 같은 일을 하느라 일요일인 11월 26일 새벽 IT 회사들이 몰려 있는 판교에는 갑자기 출근하는 직원들의 택시 행렬이 줄을 이었다는 후문도 있다.

이 모든 일이 일련의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인 11월30일, 해당 영상을 만든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들’이 사이버 테러를 하던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라는 것이 밝혀졌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30년 넘게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으며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그는 자신은 트위터 계정도 없고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른다며 이 사태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이버 테러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온전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황당한 집게손 논란의 뿌리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성호흡기감염병인 메르스가 국내에 확산되었고,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 사용자들이 메르스 의심 환자인 여성 2명에 대해 ‘김치녀’라는 여성혐오 표현을 쓰며 집단 조롱을 했다. 이에 반발한 여성 사용자들은 해당 갤러리에서 여성이 받은 차별과 혐오의 표현을 마치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미러링’ 전략을 사용했다. 남성 사용자들이 ‘김치녀’라며 여성에 대한 조롱과 욕설을 한 것과 똑같이,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남성들을 조롱한 것이다.

그러자 ‘메르스 갤러리’ 운영자는 ‘김치남’ ‘김치녀’를 금지어로 정했고, 여성 사용자들은 그동안 ‘김치녀’는 표현의 자유라는 구실로 금지하지 않았으면서 남성이 욕을 먹기 시작하니 ‘김치남’을 ‘김치녀’와 같이 묶어 금지어로 정했다며 반발하고, 따로 나가서 ‘메갈리아’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메갈리아’는 ‘메르스’와 여성학 분야의 고전으로 일컫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합친 이름이다. 해당 소설은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바꾸기만 한 것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유명한 작품이다.

‘메갈리아’의 여성들은 그동안 여성으로 참고 살았던 온갖 차별과 혐오를 미러링했다. 그중 한 가지인 집게손 모양은 한국 남성의 평균 성기 크기가 6.9cm라는 미국의 남성 건강전문 회사의 조사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 남성들이 여성의 가슴 사이즈에 대한 각종 조롱과 혐오 표현을 해온 것에 대한 미러링으로 엄지와 검지로 작은 집게손 모양을 만들었고, 이 이미지를 로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집게손 논란의 시초다.

 

집게손 의미 기억하는 여성 있을지도 의문

또한 이번 넥슨 집게손 사건은 사실 2021년 GS25의 포스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캠핑 행사 상품 이벤트의 포스터에 포함된, 소시지를 집게손으로 집는 일러스트에 대해 역시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메갈리아의 남성혐오라며 문제 삼자 GS25가 하루 만에 해당 포스터를 수정하고 사과한 사건이다. 근거 없는 허구임에도 해당 업체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이자 신이 난 ‘그들’은 GS25뿐 아니라 다른 업체나 기관 이미지에서 억지로 집게손을 찾아내기도 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주장하는바, 즉 모든 집게손 모양은 곧 남성을 조롱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비합리적 신념임을 알 수 있다. 메갈리아는 폐쇄된 지 6년이 지났다. 메갈리아가 활동하던 당시도 미러링 방식에 대해 여성들,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했으며, 메갈리아가 폐쇄된 지 오래된 지금, 집게손의 의미를 기억하는 여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집게손은 사실상 메갈리아에서 잠시 사용되다 사라진 과거의 유물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 당시 메갈리아에서 미러링으로 사용되던 표현이 한두 개가 아닐 것임에도 유독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왜 집게손에 집착하는지도 의문이다. 다른 내용의 조롱은 참을 수 있지만, 성기 크기에 대한 조롱은 너무도 자존심이 상해 참을 수 없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들의 인간으로서, 남성으로서의 자존감이란 성기 크기에만 달려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자존감이란 내가 어떤 성품의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삶의 목표나 방향성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등 여러 요인으로부터 스스로 갖추는 것일 텐데, 그 자존감이 성기 크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니 매우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이번 집게손 논란은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의 급격한 확산, 이에 따른 성별 갈등, 잘못 학습된 남성성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우선 피해자 보호 대책을 포함해 온라인 혐오 발언과 사이버 괴롭힘에 대한 엄격한 지침과 처벌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 특히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성평등 의식을 증진시키고 뿌리 깊은 성차별적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다양하고 건설적인 방식의 토론장 및 교육 기회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그동안 잘못 학습된 남성성에 대한 관념을 버리고 올바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남성성을 정립해 건강한 자존감을 갖도록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2021년의 GS25 사태, 2023년의 넥슨 사태가 향후 반복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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