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102.2%로 1위
기업부채 비율 세계 4위…1년새 3.1%p↑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통화 긴축 정책에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여전히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부채 규모 역시 줄지 않고 1년새 더 증가한 데다, 증가 속도도 타 국가 대비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코로나 금융 지원 등이 종료되는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 부실 대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34개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가장 높은 102.2%를 기록했다. 홍콩(95.1%),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유로 지역(55.8%), 싱가포르(48.2%) 등이 뒤를 이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이 조사 대상 국가 중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경제 규모(GDP)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다만 1년 전인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선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이 105.5%에서 102.2%로 3.3%포인트(p) 하락했다. 국가별 하락 폭을 보면, 폴란드(5.8%p·31.0→25.2%), 말레이시아(5.5%p·71.6→66.1%), 싱가포르(4.6%p·52.8→48.2%), 태국(4.3%p·90.0→85.7%), 영국(3.7%p·85.3→81.6%)에 이어 여섯 번째로 컸다.
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긴축 정책이 가계부채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열된 자산 투자와 코로나로 인해 경영난·생활고가 맞물리며 유례없이 늘어난 가계 부채 규모는 약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 규모 역시 긴축 기조에도 오히려 더 확대됐다. GDP 대비 한국 비(非)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현재 118.4%로 홍콩(269.0%), 중국(163.7%), 싱가포르(126.0%)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 비율은 1년새 3.1%p(115.3→118.4%) 뛰었다. 지난 1년간 기업 부채 비율이 되려 상승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10개국이었다. 특히 한국은 부채 증가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가팔랐다. 한국 기업의 부채 비율 상승 폭(3.1%p)은 베트남(8.5%p·103.4→111.9%), 중국(7.8%p·155.9→163.7%), 칠레(5.6%p·96.7→102.3%)에 이어 34개국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GDP 대비 정부 부문의 부채 비율(44.1%)은 22위, 1년간 정부 부채 비율 등락 폭(-3.2%p·47.3→44.1%)은 18위로 모두 중위권을 기록했다. 경제 규모와 비교해 정부 부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239.1%)이었다. 부채 증가 속도는 싱가포르(17.4%p·147.7→165.1%), 가나(8.7%p·84.0→92.7%)가 1, 2위로 가장 빨랐다.
앞으로도 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부채가 충분히 줄지 않고 심지어 다시 증가할 경우, 앞으로 경제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한국은행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한은이 최근 1960∼2020년 39개 국가 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증가가 GDP 성장률과 경기 침체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가계 신용 비율(3년 누적)이 1%p 오르면 4∼5년 시차를 두고 GDP 성장률(3년 누적)은 0.25∼0.28%p 내려갔다. 가계 빚이 늘어나면 3∼5년 시차를 두고 '경기 침체'(연간 GDP 성장률 마이너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가계신용 비율이 GDP의 80%를 넘는 경우에는 경기 침체 발생 확률이 더 높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회의 직후 가계대출 문제 관련 질문에 "80% 수준까지 낮추는 것은 중장기 과제"라며 "가계대출은 부동산 정책과도 관련이 있어 범정부적으로 가계대출(비율)을 어떻게 낮추고 구조개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