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의 고민 “백신 접종 권고 외에 다른 방도 없어”
강제책 없는 데다, 반복되는 접종에 따른 피로감…접종률 극히 낮아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추위에 겨울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하게 되는 시기다. 일찍 찾아온 겨울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는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인 계절독감(인플루엔자)과 별개로 호흡기 감염병 2개가 함께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재유행 위험까지 커지면서 트윈데믹을 넘어 ‘멀티데믹’(여러 감염병 동시 유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내 마스크 벗나 했더니…“7차 대유행 온다”
코로나19 유행이 반등세로 전환했음을 시사하는 지표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10월26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4만842명이었다. 이틀째 4만 명대를 기록했다. 이날 위중증 환자 수는 242명으로 전날보다 17명 증가했다. 한동안 이어지던 감소세를 멈춘 것이다. 6차 유행이 8월말 정점을 찍은 후 8주 연속 1 이하로 유지되던 감염재생산지수가 최근 9주 만에 1을 넘어선 것도 이상 징후로 거론된다. 방대본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16~20일) 감염재생산지수는 1.09로 집계됐다. 감염재생산지수는 확진자 1명이 주변 사람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데, 이 수치가 1 이상이면 유행이 확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7차 대유행이 임박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기석 코로나19 특별대응단장 겸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은 10월24일 “주간 일평균 2만 명 선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증가 추세를 보이면 그때 비로소 재유행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10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재유행이 시작될 것”이란 게시글을 올리며 7차 대유행을 예상한 바 있다. 이번 확산세는 새로운 변이 확산이 두드러졌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어서 더욱 이례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질병관리청 자료를 토대로 최근 한 달 새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출률을 살펴보면 앞서 6차 유행을 주도했던 기존 우세종 BA.5 변이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BF.7, BA.2.75 등 새로운 변이가 채우는 모양새다. 미국에서 확산 중인 BQ.1과 BQ.1.1 변이도 최근 국내에서 검출됐다. 다만 변동 폭이 1~3%포인트 수준으로 크지 않은 데다 모두 오미크론 하위 변이다. 이와 관련해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유행 감소세의 정체기를 지나면서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번 증가세는 특정한 변이 우세화와 일치되지는 않고 겨울철 실내 생활과 인구 이동 증가 등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방역 당국은 7차 유행의 규모를 줄이기 위해 개량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방대본은 10월26일 감염취약 계층으로 제한했던 개량백신 접종 대상을 18세 이상 모든 성인으로 확대했다. 또한 BA.1 기반 모더나 백신 외에 BA.1와 BA.4/BA.5를 기반으로 개발된 화이자 백신 2종을 추가했다. 종전까지 사용하던 모더나의 1차 개량백신에 더해 화이자의 1, 2차 개량백신까지 선택 가능한 개량백신이 총 3종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실내 마스크 착용이나 확진자 7일 격리 같은 일부 사항만 남겨놓고 대부분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된 만큼 백신이 유행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나 다름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방역 당국은 개량백신(2가 백신)이 오미크론 변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만큼 기존 백신보다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추가된 BA.4/BA.5 기반 화이자 백신은 전임상시험에서 BA.4, BA.5에 대한 중화능(감염 예방 능력)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초기주를 기반으로 개발된 기존 백신보다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오미크론 하위 변이의 영향권이 넓다는 점도 개량백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특히 최근 확진자 중 고위험군인 60세 이상 연령층 비율이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고령층이 3차 접종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중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다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예전의 백신패스 같은 강제책이 없는 데다 반복되는 접종에 따른 피로감이 쌓인 상황이어서 접종률을 쉽게 끌어올리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실제 동절기 접종 시작 이후 보름이 지났지만 60세 이상에서 추가 접종을 마친 비율은 전체 인구 대비 4.6%에 그쳤다. 전체 연령대 기준으로는 인구 대비 동절기 추가 접종자가 1.5%에 불과해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3년 만에 돌아온 독감 유행주의보
코로나19 백신과 별개로 건강한 겨울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이다. 일반인들이 갖는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독감이 ‘독한 감기’라는 생각이다. 기침, 인후통, 객담 등 호흡기 증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간혹 독감과 감기를 동일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독감과 감기는 엄연히 다른 질환이다. 리노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등 100여 가지 바이러스가 감기의 원인이라면,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고열과 전신 근육통, 쇠약감 등 전신 증상이 감기보다 심하게 나타날 뿐 아니라 백신으로 어느 정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감기와의 주된 차이점이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백신에 포함된 바이러스 종류의 개수에 따라 3가와 4가로 구분한다.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은 주소지와 관계없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지정 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쉽게 할 수 있다. 올해 인플루엔자 백신 무료접종 대상은 고위험군인 만 65세 이상 어르신(1957년 12월31일 이전 출생자), 생후 6개월~만 13세 어린이(2009년 1월1일~2022년 8월31일 출생아), 임신부 등이다. 어르신의 경우 올해 12월31일까지, 어린이와 임신부는 내년 4월30일까지 지원된다. 무료접종 대상자의 경우 고위험군임을 고려해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주가 모두 포함된 4가 백신을 활용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은 실제로는 드물게 나타난다. 접종 후 발적, 통증, 소양감, 발열 등이 발생할 수 있고, 달걀 단백질에 의한 알레르기 반응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매우 드물지만 양쪽 하지부터 마비가 진행되는 길랑-바레 증후군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전에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받는 것이다. 김시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시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은 대상자(고위험군)는 반드시 백신 접종을 받도록 하고, 이외에 고위험군에게 인플루엔자를 전파시킬 위험이 있는 대상자, 집단생활로 인한 인플루엔자 유행 방지를 위해 접종이 권장되는 대상자 역시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