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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더위, 미래 미리 맛보는 수준에 불과”
5월에 30도 뚫은 한국도 이미 이상기후 현상에 직면
유럽은 대형 산불, 인도 등은 폭우로 물난리
지금 유럽 곳곳은 전례 없는 폭염과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낮 최고 기온이 40~43도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프랑스는 70여 년 만에 찾아온 가장 이른 폭염으로 야외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북아프리카에서 이동하는 고온의 기단으로 인해 남서부 대부분 지역의 6월 기온이 연일 40도를 넘어서고, 인기 휴양지인 비아리츠는 무려 42.9도를 기록했다. 스페인과 독일에서는 폭염 속에 산불까지 크게 번졌다. 스페인 서부 사모라와 북부 나바라 지역에 큰 산불이 나 3만㏊가 불에 탔다. 남부 지방의 온도가 43도까지 올라가는 등 20년 만에 6월 더위가 덮쳤다. 독일에서도 베를린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로 200ha 넘게 불에 탔다. 때 이른 불볕더위가 건조한 날씨 속에 산과 들을 태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미국도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40도 이상의 폭염 영향권에 들어섰다. 중부 캔자스주에서는 폭염으로 수천 마리의 소가 죽어나가고 있다. 미국의 찜통더위는 거대한 ‘열돔(heat dome)’ 탓이다. 고기압이 정체되어 뜨거운 공기를 대기층 아래에 솥뚜껑처럼 가두는 현상이다. 열돔이 발생하면 기온이 예년보다 5~10도 이상 치솟는 날이 한동안 이어지고, 폭염과 열대야는 물론 가뭄과 산불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아시아는 폭우로 난리다. 인도는 폭염과 폭우가 연이어 들이닥쳤다. 수도 뉴델리의 5월 기온이 49도를 넘은 반면 아삼주와 메갈라야주 등 북동부에서는 예년보다 빠른 장마로 수백mm의 폭우가 며칠 동안 계속돼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수천 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몬순 우기는 대개 6월초부터 시작되지만 올해는 5월부터 호우가 계속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폭풍과 벼락 피해가 컸다. 수십 명이 벼락에 맞아 숨졌고, 특히 122년 만에 찾아온 동북부 실헤트 지역은 ‘최악’의 홍수로 250만 명이 피해를 보았다. 방글라데시는 23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이 밀집한 저지대 국가다. 유엔은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된다면 10년 내에 방글라데시 인구의 약 17%가 이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국도 폭우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광시자치구와 광둥, 푸젠성의 남부 지방에 연일 수백mm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누적강수량이 61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광시자치구에서만 24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반대로 중부지방은 물이 없어 아우성이다. 허난성의 기상관측소 120곳 중 59곳의 낮 기온이 40도를 웃돌고 지표 온도는 최고 74.1도에 달해 도로가 갈라지고 변압기들이 폭발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도 폭염·가뭄·폭우에서 안심할 수 없다. 폭염의 기준은 나라별로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 최고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 35도 이상이 이틀 이어질 때는 폭염 경보를 발령한다. 올해는 5월 중순부터 30도를 넘는 때 이른 더위가 지속되더니 지난해보다 3주 앞당겨진 6월19일 대구·경북과 광주 지역, 경남과 전남 일부 지역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지구촌의 역대급 폭염은 어느 날 단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배출된 탄소가 토양·바다·식생·대기 중에 쌓여 영향을 받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평균기온이 꾸준히 오르다가 1994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에서 94명이 사망했다. 이후 14년 만인 2018년 여름, 35도를 웃도는 역대급 폭염이 8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대기록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평균기온이 계속 오를 확률이 높아 2018년의 기록은 이전보다 더 빠른 기간에 깨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전국이 장마권에 들어섰다. 올 장마는 지난해 겨울부터 이어지고 있는 역대 최악의 가뭄이 해소된다는 반가움이 있지만, 올여름(6~8월) 기온도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높고, 폭우와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어 역대급으로 힘든 기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장기간의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가 갈수록 대형화돼 우리의 일상이 잠식되고 있는 셈이다.“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증거”
도대체 지구촌은 왜 이렇게 일찍부터 펄펄 끓는 걸까. 세계기상기구(WMO)의 클레어 눌리스 대변인은 유럽과 북미 지역의 이른 폭염, 아시아에서의 폭우·벼락·돌풍을 두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증거”라며 “20세기 초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지구온난화가 여름철마다 이상기온 현상을 증폭하는 효과까지 발생시키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회 전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2월 발표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8년 전의 평가보고서와 비교해 지구의 상황은 인간과 자연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가뭄·홍수 등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늘어났고, 이는 인간의 활동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엄청난 피해와 손실을 끼쳤다. 농작물이 고사하고, 가축이나 양식장 물고기가 폐사하며 물가가 올랐다. 상황이 악화된 대표적인 사례는 물과 식량 부족이다. 지구촌은 현재 약 40억 명의 인류가 물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도 폭염이 계속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대기과학연구소는 현재와 같은 추세로 전 세계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2060년대쯤에는 전 세계가 매년 여름철마다 35도 이상의 무더위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북미와 남미, 중부 유럽 그리고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등 인구 밀집 지역의 폭염이 극심해지고 폭염 기간도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눌리스 대변인은 “지구온난화가 미치는 영향이 극명하게 심각해지고 있고, 지금의 더위는 미래를 미리 맛보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이제는 중국이나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만 폭염이나 대홍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올해 당장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WMO의 암울한 경고를 예사롭게 듣고 넘겨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