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전문가들이 꼽은 ‘현산 사고’ 5대 중대 원인
“이대로라면 제2, 3의 붕괴 사고도 발생 가능”
지난 1월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201동(이하 사고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붕괴는 39층과 38층 사이의 배관 등 설비가 들어가는 1.5m 높이의 PIT층에서 시작됐다. 이곳 발코니 데크 플레이트 슬하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그 잔해가 38층 천장으로 쏟아졌다. 당시 38층 아래로는 지지대(동바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중을 견디지 못하면서 23층까지 연쇄 붕괴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HDC현대산업개발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아이파크 보이콧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학동 철거 붕괴참사에 이어 반복적으로 대형 사고를 냈다는 점에서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페널티를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영업정지나 건설업 등록말소 등 중징계를 예상한다.
재무 상황에도 적색등이 들어왔다. 은행들은 현재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자체 신용등급 재조정에 돌입해 강등을 검토 중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은행은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시 금리 인상과 추가 담보 요구, 대출 한도 축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은행들이 대출금 회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현대산업개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견해가 많다. 다른 건설사의 공사 현장들도 공통적으로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 기자가 만난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제2, 3의 붕괴 사고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 무리한 공기 단축
이번 사고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무리한 공기 단축이 거론된다. 사고 건물 감리업체가 작성한 ‘주택건설공사 감리업무 2021년 4분기 보고서’의 예정 공정표에는 39층 골조공사를 지난해 11월초까지 마무리한다고 돼있다. 지난 1월11월 붕괴 사고 당시 39층 바닥 타설이 진행 중이었음을 감안하면 공사가 3개월 정도 늦어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요소수 사태로 레미콘과 철근 등 자재 수급에 차질이 생긴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이 속도전에 나서면서 붕괴 사고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산업개발은 충분한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고 건물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는 35층에서 39층 위층인 PIT층 바닥까지 층마다 6~10일에 걸쳐 타설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동계 시공에는 충분한 양생 기간이 필요하다. 동계 이외의 계절에는 콘트리트가 완전히 양생하는 데 통상 28일이 소요된다. 다만 7일이면 전체 강도의 70~80% 정도가 나와 일주일에 한 층씩 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겨울철에는 층당 최소 10일에서 2주 이상의 양생 기간이 필요하다. 현대산업개발은 공기를 앞당기기 위해 이 기간을 대폭 축소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무리한 공기 단축의 배경을 ‘최저가 낙찰제’와 연관 짓는 시선이 적지 않다. 공공 공사 입찰의 경우는 최저제한가격을 둔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된다. 건설 품질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민간 공사는 얘기가 다르다. 발주자는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와 계약한다.
건설사들은 사업 수주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낮은 공사비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저가에 수주한 사업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공기 단축이 필수다. 줄어드는 공기에 비례해 수익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무리한 공기 단축은 부실시공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9월17일 시행된 건설기술진흥법상 ‘공공 공사 적정공사 기간’ 조항을 민간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현재 민간 공사에도 건설기술진흥법을 준용해 적정 공사 기간을 산정토록 한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돼 있다”며 “이 법이 제정돼야 노동자 안전과 아파트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2 구실 못 한 감리
당국의 조사 결과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지지대 미설치가 지목됐다. 한 대형 건설사가 작성한 ‘광주 화정현대아이파크 사고 상황 보고서’의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PIT층이 견딜 수 있는 하중은 1㎡당 약 710kg이다. 그러나 실제 시공 하중은 1090kg이었다. 39층이 주민 공용시설로 하중이 커 바닥 두께가 다른 층보다 10cm 두꺼운 35cm로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공사 하중을 감안하면 PIT층과 38·37층 등 최소 3개 층에 걸쳐 지지대를 설치한 상태에서 타설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사고 건물에서는 붕괴 직전 36~38층 구간에 설치된 지지대를 제거했다. 대신 지지대 설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데크 플레이트’를 활용한 방식으로 공법을 변경했다. 창호 등 후순위 공정 편의를 위한 결정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시공이 설계에 따라 적합하게 이뤄지는지 점검해야 하는 감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사고 건물 감리업체는 공법 변경이 설계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구조 검토를 요청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이 묵살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감리업체가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바로잡지 못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현재 지정감리제도에 따라 감리업체 지정은 관할관청이 담당한다. 감리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명목에서다. 그러나 시공사·시행사 등 발주자와 감리업체 간 갑을관계는 여전하다. 정작 계약은 발주자와 맺고 감리 비용도 발주자가 지불하기 때문이다. 감리업체가 시공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감리업체와의 계약까지 관할관청과 직접 맺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감리제도 불용론마저 제기된다. 한 건설사업관리(CM) 업계 관계자는 “현재 감리제도는 실효성이 없어진 데다 오히려 건설사의 책임을 분담하는 구조”라며 “감리제도를 폐지하고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시공자가 지도록 하는 편이 더욱 큰 사고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불법 재하도급
이번 사고 과정에서는 편법 재하도급 정황도 드러났다. 사고 건물 콘크리트 타설은 현대산업개발과 계약을 맺은 A사가 맡았다. 그러나 정작 타설 작업에 투입된 건 A사에 펌프카(레미콘을 고층으로 올려주는 장비)를 임대한 B사 소속 작업자들이었다. 도급받은 전문공사를 다시 하도급할 수 없도록 규정한 건설산업기본법을 사실상 위반한 것이다.
건설법에서 재하도급을 엄격하게 금지한 이유는 부실시공을 우려해서다. 하도급이 거듭될수록 최종 수급자에게 전달되는 공사비는 줄어든다. 빠듯한 비용 내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건비와 장비, 자재 등을 감축한다. 자연스레 공사 품질과 안전은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 재하도급 과정에서 자격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업체가 시공에 투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건설업계에 불법 재하도급이 관행화돼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국토교통부가 학동 참사 이후 지난해 11월15일부터 12월20일까지 공공 공사 현장 136곳에 대한 특별실태점검을 벌인 결과 46곳(34%)에서 불법 재하도급 사례가 적발됐다. 공공 공사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당국에서 불법 재하도급 실태를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이다.
민간 공사의 경우엔 불법 재하도급이 없는 현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이처럼 관행화된 불법 재하도급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현재 국회에서는 불법 재하도급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입법 예고된 상태다. 현행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까지 높인다는 것이 골자다.
4 건설 현장 인력난
전문인력 부재가 이번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사고 건물에 기술과 안전 등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력이 있었다면 사전에 잠재 위험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붕괴 당일 39층 타설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8명은 모두 조선족이나 중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됐다. 책임자인 반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은 모두 불법 체류자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의 업무 숙련도나 경력 등이 보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불안전한 신분 때문에 안전이나 공법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기술을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곳에 장기간 머무르지 않아 국내 기술공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 건설업계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상황이다. 건설근로자 수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용노동부 산하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최근 발표한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근로자 내국 인력이 21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내국 인력 중에서도 기능공 등 숙련 인력 부족이 심각한 실정이다. 공제회가 건설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60%가 숙련 내국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업주 300명 중 58%도 숙련 내국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 건설노동자 대부분은 50·60대로 구성돼 있고 젊은 인력 유입도 크게 부족해 외국인 의존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특히 기능공 등 숙련 인력 부족이 심각해 직종별로 체계적인 인재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5 낮은 설계 품질
전문가들은 사고 건물의 설계 부실 가능성도 제기한다. 설계도면상 아파트 거실 바닥을 지탱해 주는 내력벽 등 수직부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서다. 이 때문에 하중을 충분히 견디지 못하고 붕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콘트리트 양생이 완료된 23층까지 벽체가 떨어진 점도 설계상 오류의 근거로 거론된다.
건설 프로젝트에서 설계도면 작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못된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건물이나 시설물이 지어질 경우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시공사 위주로 시장이 형성된 국내 건설업계에서는 설계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 설계업계의 중론이다.
설계업계에 따르면 현재 설계사의 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개발 제안 사업이나 설계 시공 일괄 입찰 등에서 설계사가 시공사의 하청업체 수준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설계도면 생산이 대부분 손익에 맞춰 이뤄진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입찰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거나 철강 등 원자재 사용량이 적은 도면을 제시한 업체와 계약을 맺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 수가는 다른 건설 선진국 대비 낮게 형성돼 있다. 여기에 저가 및 덤핑 수주 등 경쟁마저 치열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설계업체들은 품질보다 수주 위주의 운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업체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계획 설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단계에서 공정별로 설계 하청을 주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설계업체들의 설계 품질은 보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고 발생 시 설계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도 설계 품질 향상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건설사는 이런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도면이 불완전하거나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편한 방식을 적용해 시공하는 식이다.
설계업체 관계자는 “국내 건설업계의 생태를 고려하면 양질의 설계도면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며 “부실 설계도면으로 건물을 지을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설계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