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항우울제 처방 60일 제한 때문”

한국이 우울증 발병률과 자살률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는 20년 전 마련된 규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감기처럼 우울증을 아무 병·의원에서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에서 우울증 치료를 가장 받기 어려운 나라다. 2002년 마련된 비(非)정신과(정신건강의학과 이외의 진료과) 의사가 SSRI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는 기간을 60일로 제한한 규정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SSRI 항우울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원활해야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세로토닌은 분비되고 흡수되기를 반복하는데, 흡수를 억제하는 약이 SSRI 항우울제다.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이 우울증 치료를 받기 어려운 나라인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우울증 환자의 약 90%가 SSRI 항우울제를 처방받는다. 국내에서는 그 비율이 1~2%밖에 안 된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최소로 잡아도 약 500만 명이다. 이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한 난치성 우울증 환자는 약 30%로 150만 명이다. 나머지 350만 명은 SSRI 항우울제로 치료되는데도 이 약을 처방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1위다.”

대다수 우울증 환자가 SSRI 항우울제를 처방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년 전에 만든 규정 때문이다. 비정신과 의사가 SSRI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는 기간을 60일로 제한한 것이다. 우울증은 6개월에서 1년 이상 치료해야 하는데 2개월 후에는 치료를 중단하든지 환자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라는 것이다.”

‘처방 60일 제한’에 의학적 근거가 있나.

“의학적 근거는 없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도 근거를 묻는 말에 대답을 못 한다. 개인적으로 알아봤더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두 차례 회의 끝에 그 규정을 마련했다. 겉으로는 보험 재정 부담 때문이라고 하는데, SSRI 항우울제보다 비싼 약도 그렇게 처리한 전례가 없다. 또 세계적으로 우리보다 경제력이 낮아도 그런 규정을 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으면 환자 입장에선 좋은 것 아닌가. 

“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비정신과 의사가 2가지 항우울제를 썼는데도 효과가 없거나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낸다. 그런데 규정 때문에 SSRI 항우울제를 써서 효과를 보는 약 70%의 환자까지 60일 이후에는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야 한다.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전체 의사의 약 4%이고, 이들이 한 해 보는 환자 수가 약 250만 명이다. 여기에는 조울증·조현병·알코올 중독·공황장애 등 수많은 정신질환 환자가 있고, 그중 약 50만 명이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 환자를 최소로 잡아 500만 명이라고 할 때 450만 명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만일 96%의 비정신과 의사에게 SSRI 항우울제 처방을 자유롭게 해주면 우울증 환자 대부분을 치료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수보다 내과 의사는 15배, 가정의학과 의사는 2배 많다.”

SSRI 항우울제를 60일만 사용하고 중단하면 안 되나.

“SSRI 항우울제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면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자살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60일 처방 후 SSRI 항우울제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침은 어느 의학 교과서나 학술지에도 없다. 또 우울증은 재발하므로 SSRI 항우울제를 2개월 복용하고 증상이 호전된 것 같아도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 약을 1년 미만으로 사용할 때 우울증 재발률은 약 50%지만 1년 이상 복용하면 재발률이 10%로 떨어진다. 우울증은 재발할수록 치료가 어려워 약을 끊지 못한다. 우울증이 3차례 이상 재발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SSRI 항우울제 부작용 때문에 ‘60일 처방 제한’ 규정을 둔 것은 아닐까.

“조현병이나 조울증에 쓰는 약은 더 위험하고 사용하기 어려운데도 비정신과 의사가 처방하는 데 제약이 없다. 그보다 더 안전하고 사용하기도 쉬운 SSRI 항우울제만 비정신과 의사는 60일까지만 처방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SSRI 항우울제는 소아에서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지 않나.

“물론 그런 부작용이 있다. 그렇지만 그 부작용은 항경련제 등 다른 약물에도 있는 것이며 SSRI 항우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은 위약군보다 자살 충동 부작용이 많지 않다. 물론 소아는 그 부작용이 위약군보다 많으므로 소아에게 그 약을 처방할 때는 의사가 신경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약을 처방할 때 환자에게 자살 생각이 들면 바로 연락하라는 등의 경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극소수에서 자살 충동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해서 대다수 환자에게 이 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SSRI 항우울제는 얼마나 안전한가.

“치료 용량과 치사 용량 차이가 얼마나 많이 나는가를 따져야 한다. 그 차이가 작으면 위험하다. SSRI 항우울제는 그 차이가 크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누군가가 자살할 목적으로 이 약을 많이 먹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외국은 SSRI 항우울제 사용이 자유로운가.

“세계 36개국을 조사한 결과, SSRI 처방에 기간 제한을 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경제력이 세계 10위인 우리나라는 보험 재정 때문이라며 SSRI 항우울제 처방을 60일로 제한했지만, 경제력이 141위인 르완다에도 그런 규정은 없다. 외국에서는 감기처럼 우울증을 아무 병·의원에서 조기에 치료받는다. 미국에서 SSRI 항우울제를 많이 처방하는 진료과는 가정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정신과 순이다. 비정신과에서 SSRI 항우울제 처방을 더 많이 한다. 또 많은 주(州)에서는 훈련받은 간호사도 SSRI 항우울제를 처방할 수 있다.”

비정신과 의사도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나.

“의대생은 5대 진료과(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정신건강의학과) 교육을 받는다. 의사라면 이런 진료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 가운데 가장 흔하고 치료가 쉬운 질환이 우울증인데 의사가 처방 제한 규정 때문에 치료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하면 국내 자살률도 떨어뜨릴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하루에 38명이 자살로 아까운 생명을 잃고 있다. 자살 원인의 90%는 우울증이다. 자살률은 우울증이 발생한 지 12주 이내가 가장 높다. 그래서 우울증은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SSRI 항우울제 처방이 증가할수록 자살률이 떨어졌다는 외국 논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미 검증된 자살 대책인 SSRI 항우울제 처방이 60일 제한으로 막혀 있다. 국내 우울증과 자살률을 낮추는 데 이 제한을 푸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