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열린 주요 7개국(G7) 대면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유례없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국은 올해 G7 의장국인 영국 정부의 '초청국'으로 참석했지만, 사실상 'G8' 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력·방역 등에서 한국이 G7 회원국을 뛰어넘는 성적을 낸 데다, '중국 견제'를 외친 G7이 한국에 거는 전략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일본은 예외였다. G7 개최 전부터 참여국 확대에 노골적 불쾌감을 드러낸 일본은 행사 직후에도 '한국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도쿄올림픽 강행과 G7에서 확인된 위상 추락으로 악화일로를 걷는 자국 여론을 의식한 의도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美·英 사이에 선 韓…발돋움 한 위상
올해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회의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로 전 세계 정상이 참석하는 주요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던 중 열린 회의였기에 무게감은 더 컸다. 한국은 2년 연속 G7 회의 초청을 받은 데 이어 회의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탑승한 공군1호기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영국 콘월 뉴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한 문 대통령 부부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 부부를 기다리던 환영 인사들 역시 '노마스크'였다. 문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등이 마스크를 벗고 입국했다.
반면 스가 일본 총리 부부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은 마스크를 쓴 채 입국했다. 이같은 차이는 각 회원국과 사전 조율된 의전 세부사항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가 총리 부부의 마스크 착용 입국을 두고선 자국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나왔다. 일본에 대한 주요국의 '방역 경계'가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G7에서도 드러났기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스가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두 겹의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거리를 두고 테이블에 앉았다. 이 때문에 '스가의 굴욕'이란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한 달 뒤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마스크를 벗고 등장했고, 회담 내내 스가 총리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후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G7에서도 한·일 양국에 대한 온도차를 보이며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도 엇갈렸다.
문 대통령은 보건을 주제로 한 G7 첫번째 확대회의 세션에서 의장국인 존슨 영국 총리 오른쪽에 앉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 맞은편에 착석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는 한국을 '방역 모범국'으로 지칭하며 문 대통령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확대회의 이후 진행된 기념사진 촬영에서도 문 대통령은 맨 앞줄에 서 바이든 대통령과 존슨 총리 사이 중앙에 섰다. 국가 수반과 내각 총리, 취임 순서 등 국제행사 의전 서열을 감안한 것이라 하더라도, 초청국이 세션과 기념사진 촬영에서 연속 '상징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의장국인 영국이 한국을 배려했으며, 주요 회원국들도 이에 동의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들과 연달아 회담을 가지며 동맹과 파트너십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G7 성명에서 확인됐듯 중국 견제 움직임이 뚜렷해진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갖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귀환'을 알린 바이든 대통령을 기점으로 한국 정부의 협조와 중재자적 역할에 무게를 실어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상황도 한국의 위상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은 G7을 통해 '백신 생산기지' 이미지를 한층 더 강하게 새겼다. 감염 통제와 백신 접종, 발달된 바이오 산업 환경 등이 국제 사회에서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14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G7에서 한국이 전 세계 75개국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해 제공하고 있고, 향후에도 개도국백신 공급 활성화를 약속했기 때문에 한국의 백신 생산기지로서의 위상은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G7이 합의한 중국 견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의 입지가 과거와는 다를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이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의 외교에서 '다자적 방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과 중국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프레임은 우리(한국) 스스로 손을 묶는 것"이라며 한국이 취할 선택지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진단했다.
못마땅한 일본, G7 전후로 전방위 '한국 견제'
G7에서 한국의 격상된 입지를 확인한 일본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G7 회의가 개최되기 전부터 일본의 견제는 노골적이었다.
당초 G7을 G10이나 G11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회원국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G7에 포함된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등장이 자국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이 살얼음을 걷고 있는 상태여서 일본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G7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G7) 게스트 국가로 한국·호주·인도를 부르는 것은 괜찮지만, G7 틀 확대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가 개막 직전 한국 등 4개국과 G7을 아울러 '민주주의(Democracy)11'이라는 의미로 D11이라고 규정하는 등 확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지만, 일본 정부가 적극 반대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반대가 이번 회의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한때 부상했던 'G7 확대론'이 정상회의 기간 중 언급되지 않은 점을 볼 때 당분간 D11 정상회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회담 직후에도 일본의 '견제구'는 한국을 향했다.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G7 정상회의 폐막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불발된 것에 대해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런 환경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을 직접 명시하진 않았지만, 한국 측이 징용 및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점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가 총리는 "한국 측 움직임으로 한·일 문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국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약식 정상회담이 잠정 합의된 상태였지만, 일본의 일방적 취소로 불발된 사실도 알려졌다.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이유로 회담을 취소한 것이라고 통보했지만, 전방위적인 한국 견제와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가 총리가 자국 내에서도 반발 여론이 높은 도쿄올림픽 강행 의지를 재차 피력하면서 '한국 때리기'는 더 노골화 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 접종률까지 더딘 일본에서는 현재 올림픽은 무리라는 여론이 높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14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G7에 참가한 스가의 가장 큰 목적은 도쿄올림픽 지지를 끌어내는 것이었고, 공동성명 맨 마지막에 일본이 요구하는 표현이 들어갔다"면서 "(도쿄올림픽 관련 내용이) 겨우 들어가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은 개별 회담에서 오히려 방역 대책을 조언했고, 실제 (도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고 이야기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일본 내에 올림픽 대한 반대 여론이 많기 때문에 이번에 (주요국이) 강력하게 지지를 했으면 국내 여론을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일본 내 여론도 그것을(공동성명 내용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SNS 등에 '국내에서도 지지를 못 받는데 해외에서 올림픽을 지지해 달라고 하고 있는 일본이 너무 창피하다, 빨리 돌아와라' 비꼬는 표현까지 있는 걸 보면 개별적으로 만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