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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부족·불충분한 검사·감염 속도 못 따라가는 역학조사
이미 전국 확산, 확진자 대폭 줄이긴 어려워
그사이에 신규 확진자는 300~400명을 넘나들었다. 정부는 8월30일 ‘강력한’ 2단계를 수도권에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이미 전국으로 퍼진 약 2주일 동안 정부는 권고→강제→강력한 수준으로 말을 바꾸면서 2단계 방역 수준을 고수했다. 공식적으로 강력한 2단계라는 방역 수준은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2.5단계라고 희화화했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8일간(9월6일까지)만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정도다. 유진홍 대한감염학회장(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지금의 방역 수준은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확산을 막는 정도여서 이번 방역 2단계가 끝난 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바이러스 잠복기가 14일이라서 격리 기간도 2주일로 잡고 있는데, 이번 2.5단계 방역 조치의 기간을 8일로 잡은 기준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대대로 방역 2.5단계는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할 수 있을까.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 조치의 효과는 몇 주 후에나 나타난다. 따라서 3단계는 늦어도 지난주 초(8월23일 이전)에 격상했어야 한다. 현재의 강화된 2단계는 국민의 경각심을 올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정도다. 앞으로의 국면은 국민이 얼마나 열심히 방역 지침을 따라주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방역 2.5단계를 시행했으니까 코로나19 유행이 점차 나아지겠지만 당장 신규 확진자를 50명 미만으로 떨어뜨리기엔 역부족이다. 폭발적인 감염자 증가를 억제하는 수준을 기대할 뿐이다. 당장 3단계를 시행해도 이미 시기를 놓친 탓에 감염자를 큰 폭으로 낮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즉 직접적인 방역 효과보다 국민의 경각심을 높이는 간접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는 있겠다”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전망과 평가가 나온 이유는 코로나19가 이미 수도권을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2단계를 고집한 약 2주일 동안 전국 대다수 지역에서 약 5000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특히 8월27일 신규 확진자는 441명으로 대구 집단감염 발생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3단계 격상을 주장한 이유는 수도권의 집단감염이 전국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선제적으로 방역을 해야 의료체계가 마비되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3단계 격상 시기를 놓치면서 이미 의료체계 마비 징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앞으로 무증상ㆍ경증 환자는 입원 힘들 듯
대표적인 의료체계 마비 징후는 병상 부족 현상이다. 8월 중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프랑스 학생 레베카(가명·21)는 입국 첫날 서울에 있는 한 보건소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았다. 다음 날 오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자취집 근처 병원에 입원했다. 이 학생의 자취집 주인은 “무증상이라는 이유로 입원 10일 만에 퇴원했다. 음성을 확인하는 추가 검사도 받지 않았다. 결국 양성이지만 격리하라는 지침도 없이 그냥 퇴원해 집에 왔다. 자취집에는다른 학생들도 있는데 불안하다”고 말했다. 본래 무증상이라도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는 7일째 검사에서 두 차례 음성이 나와야 병원에서 퇴원할 수 있다. 양성이 나오면 14일째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 격리 기준을 완화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6월24일 정례 브리핑에서 “무증상자는 앞으로 확진 후 10일이 경과한 기간 동안 임상 증상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격리 해제하도록 기준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발병 5일이 지나면 감염성이 급격히 소실되고 10일 후엔 대부분 바이러스가 배양되지 않는다는 두 가지 기준에 따른 판단이다. 당시하루 신규 확진자가 50명을 넘나들고 중국 등을 통한 해외유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감염자가 발생하는 등 2차 대유행 조짐이 꺾이지 않자 병상 부족 사태를 방지하려는 목적으로 격리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이재갑 교수는 “그나마 그것(격리 기준 완화) 때문에 현재 병원이 겨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 조치마저 없었다면 병원은 이미 마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환자가 세 자리 숫자로 증가했다. 8월31일 79명이던 위·중증 환자는 9월3일 154명으로 늘어났다. 한 번에 환자 1명만 운송하던 응급차도 2명씩 운송하는 사례가 생겼다. 격리 기준 완화만으로는 의료체계가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자 보건 당국은 최근 코로나19 무증상자·경증환자는 입원 격리 대신 자가치료·자가격리가 가능하도록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했다. 앞으로는 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가벼우면 치료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대기해야 한다. 시행 시점은 10월13일부터다. 사실상 의료체계 마비에 대한 준비 태세다. 김우주 교수는 “현재 입원 10일까지 증상이 없으면 퇴원 조치하는 것은 전파력이 약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런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나온 것이 8월 코로나19 전국 유행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앞으로 코로나19 무증상자와 경증 환자를 집에서 격리하도록 했다. 이제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증상이 있는 환자만 진료하는 단계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확산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검사·역학조사
또 다른 의료체계 마비 조짐은 진단검사 건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밝힌 하루 진단검사 역량은 7만 건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하루 검사 건수는 1만 건 선이다. 8월30일 신규 검사 건수는 1만4841건으로 집계됐다.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하루에 약 1만9000건의 검사를 진행했었다. 김우주 교수는 “각국의 진단검사 건수를 살펴보면, 8월30일 기준 인구 100만 명당 1일 검사 건수는 뉴질랜드가 약 1800건, 덴마크 약 5000건, 호주 약 2500건인 데 반해 우리는 289건이다. 인구 1000명당 검사 건수로 계산해도 이스라엘, 영국, 호주, 미국은 2~2.5건인데 우리는 0.25건으로 일본 0.18건과 유사하다.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접촉자의 80%가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다. 이 가운데 20%는 무증상이다. 또 이 가운데는 수일 후에 증상이 나오는 ‘증상 전 환자’가 80%다. 이런 무증상자와 증상 전 환자의 전파가 무섭다. 검사 건수를 늘리지 않아 무증상자와 증상 전 환자를 놓치면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감염자가 속출한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처럼 유증상자만 진료하는 현실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역학조사가 감염 확산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점도 의료체계 마비의 한 가지 징후다. 2~3월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는 교회라는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역학조사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단감염 장소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해 역학조사가 쉽지 않은 상태다. 진단검사가 충분하지 않고 역학조사도 난항을 겪는 동안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환자는 늘어나게 마련이다. 감염 경로 불명자 비율의 경우 방역 당국이 위험도 평가 지표의 하나로 삼고 방역 수위를 조절한다. 8월17일부터 30일까지 새로 확진된 4381명 가운데 21.5%에 해당하는 942명의 감염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수치는 지난 4월 집계치를 발표한 이후 최고치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가 경제 상황을 고려해 3단계 격상을 미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가 나빠진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다. 즉 코로나19를 잡아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질병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기대하는 것이다. 사실 국민은 이미 나름대로 3단계를 시행 중이지만 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대다수 국민은 우왕좌왕했다. 고민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