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21회 - ‘경찰청’에서의 난동, 폭행·협박 없으면 공무집행방해죄 처벌 어려워
“변호사님, 경찰이 상대편에게 매수당한 것 같아요.”
실무에서 의뢰인들을 상담하며 종종 듣는 말이다. 예전에는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며 그럴 리 없다는 뉘앙스로 답했지만 최근 돌아가는 지경을 보면 변호사조차 놀라게 된다. 자기사건 변호사와 골프를 친 판사, 수사정보를 유출한 검사, 음주운전자를 지인이라며 봐준 경찰 소식 등을 접하면 흔들린다.
경찰서를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을 건다. 누군가의 재산이, 누군가의 명예가, 누군가의 꿈이 걸려 있다. 특히 경찰서를 처음 간 사람들 중 일부는 경찰들에게 아쉬움이 많다. ‘내 말을 수사관이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다’는 사람부터 ‘이미 경찰이 반대 세력으로부터 매수당해 사건을 몰고 가고 있다’고 결론을 낸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은 대부분 나에겐 인생이 걸린 일인데 왜 경찰은 심드렁하게 처리하느냐는 거다. 난 나를 믿었던 것만큼 경찰도 믿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일을 다 털어놨고, 수사에 협조를 다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아무래도 상부에 ‘진정’을 해야겠다며 역시 검경수사권 조정은 되어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물론 검찰조사를 받고 나면 또 다른 견해로 바뀐다).
반대로, 노상에서 취객들을 대하는 경찰들을 보면 힘들어도 그렇게 힘든 직업이 없다. 취객에 의한 폭력은 일상적이고, 얼마 전 ‘대림동 여경 사건’의 당사자들은 중국동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경찰에게 폭력을 쓰다가 제압당할 때 이들이 꺼내는 카드도 ‘진정’이다.
범죄피해자모임의 일원인 A는 경찰의 일처리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경찰청에 진정서 및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담당 경찰관은 이를 제대로 조사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A는 경찰청에 가서 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당연히 들어주지 않자 그는 “후레아들놈, 눈을 후벼파겠다”, “너 쥐약 먹었냐” 등의 욕설을 하며 큰소리를 질렀고, 민원실 밖 복도에 주저앉아 1시간동안 항의했다. 그리고 곧 체포됐다. 무슨 죄가 될까.
일단 경찰의 일을 방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검찰은 공무집행방해로 기소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할만한 행위 즉, 조문에 나온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은 업무방해 혐의로 A를 기소하였다.
그렇다면 업무방해에는 해당하는 것일까. A의 욕설 및 고성, 복도 앞 시위는 ‘위력’에 해당한다. (‘위력’의 의미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일관되게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이라 보고 있으나 이러한 설명이 더 혼란스럽게 하므로 그냥 폭행·협박보다 가벼운 수준의 압박이라 생각하자.)
그런데 경찰관의 직무를 업무방해의 ‘업무’라 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우리 형법은 공무집행방해죄를 따로 규율하고 있으니 말이다. 경찰관의 직무 집행은 명백하게 국가사무를 행하는 공무이므로 공무집행방해죄로만 처벌하여야 하고 업무방해죄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일까?
1심은 경찰관의 직무를 방해한 이상 그 방해하는 방법이 폭행/협박에 해당하지 않아 공무집행방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아 유죄를 선고했다. A는 항소했지만 2심 역시 마찬가지로 업무방해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원심 법원에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경찰관의 직무 집행은 공무에 해당하고 우리 형법은 공무집행방해죄를 업무방해죄와는 별도로 규정하는 것에 주목했다. 업무방해죄는 위력을 ‘방해의 방법’으로 명시하는데 위력은 아까 말했다시피 폭행과 협박보다 가벼운 수준의 압박이다. 한마디로 처벌범위가 폭행/협박만 규율한 공무집행방해보다 더 넓다.
게다가 공무집행방해죄는 국가적 법익을 보호하기 때문에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는 업무방해죄와 달리 봐야 한다. 그리고 공무방해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은 형법에 무수히 많다. 국회회의장모욕죄(138조), 인권옹호직무방해죄(139조), 공용물파괴죄(141조 2항), 특수공무방해죄(144조) 등등 온갖 공무방해의 경우에 대하여 처벌규정을 두었기에 이를 포괄적 처벌조항인 업무방해죄까지 끌어와 의율할 수는 없다. A에게 무죄가 선고된 이유다.
그럼에도 입법취지에 입각한 위 판결은 논란을 불렀다. 오늘날 공무(公務)에 포섭되는 행위는 처벌, 징집, 징수에 집중됐던 과거와 달리 복지, 행정, 급부 등 다양하다. 이러한 공무를 방해하는데 폭행/협박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만 공무집행방해를 인정하고 여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소란을 피워도 무죄인 것은 공무집행을 매우 곤란하게 할 수 있다.
또 처벌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과거 김영란법은 처음엔 공무원에게, 그 다음엔 국립대, 한국방송공사에까지 확대됐다가 그럼 사립대학교와 민영방송사는 되느냐라는 문제에 부딪혀 전 학교, 전 언론사에 확대됐다. 이 사안 역시 마찬가지로, 사립대학교 입학처에 가서 폭행/협박에 이르지 않는 난동을 부리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지만 국립대학교 입학처에서는 같은 행동을 해도 처벌받지 않게 된다.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A는 처벌되었어야 했을까. 최근 ‘민식이법’에 반대한 어느 국회의원은 처벌의 균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형법은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여기에 어떠한 형벌을 과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우리 법 규범의 총체이고, 가장 업격하게 해석되고 집행된다. 법해석은 언제나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잡지 못해 불신을 낳지만 이런 사안은 국회의 대처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어찌됐든 처벌하면 된다는 발상은 법해석의 전행(專行)을 가능케 하고 입법 공백을 심화시킨다. 처벌의 불균형이나 공백이라는 논거에 의탁해 다른 조문을 끌어들여 가벌성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형법이 천명하는 죄형법정주의 및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애초 이런 법해석 논란은 입법이 제때 적절한 법률 효과를 규정하였다면 줄어들 테니 말이다.
‘경찰청’에서의 난동, 처벌할 수 없다.
사족: “후레아들놈, 눈을 후벼파겠다”, “너 쥐약 먹었냐” 따위의 말이 왜 협박이 되지 않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건 진정성 문제다. 액면 그대로 실천의지를 반영하여 해석하면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은 협박범이 된다. “죽여버린다”, “묻어버린다” 등의 말들이 진정성있게 느껴진다면 당연히 해악의 고지로서 협박죄의 협박에 해당한다. 다만, 실제 죽이려했던 것은 아니라면 “감정적인 욕설이나 일시적인 분노를 표시한 것”이 되어 협박이 되지 않는다. 숱하게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호적에서 파인 적은 없지 않은가. (호적제도는 폐지된 지 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