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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대상 납치 살인 후 시신도 훼손
후배들 포섭해 범죄조직 결성
1993년 3월, 고향 후배인 강동은(21)을 만나 자신의 뜻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강동은이 적극적으로 합류 의사를 내비치자 그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23), 후배 송봉우(18)도 동의해 세 사람이 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김기환을 제외한 세 명은 전주로 이동해 함께 생활하며 조직 결성과 범죄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였던 백병옥(20)이 천안에서 막노동을 하다 추가로 합류한다. 문상록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강문섭을 강동은에게 소개해 포섭했다. 김기환과 친분이 있던 이주현은 평소 “은행 강도가 되고 싶다”던 김현양(22)을 소개해 조직에 합류토록 했다. 이렇게 7명을 주축으로 같은 해 4월 지존파가 결성된다. 두목은 김기환이 맡았다. 조직원들은 김기환을 ‘두목’ 대신 ‘왕’이라는 뜻의 ‘지존’으로 호칭했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김기환은 조직 기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김기환은 평소 조직원들에게 “배신한 자는 지옥까지 쫓아가 죽이겠다”고 강조했다. 지존파는 범죄 도구와 아지트를 마련하기 위해 5월부터 대전에 있는 ‘둔산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7월18일, 조직원 중 송봉우, 강동은, 백병옥은 살인 예행연습을 한다며 충남 논산(현 계룡시)의 두계역(현 계룡역) 부근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오후 11시쯤 퇴근하던 은행원 최아무개씨(여·23)를 다리 밑으로 끌고 가 윤간했다. 숙소에 있던 김기환은 강동은의 보고를 받고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범행현장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최씨를 차에 싣고 한 야산으로 이동했다. 김기환은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준다”며 최씨를 목졸라 살해했고, 조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곡괭이 등을 이용해 암매장했다. 그렇게 이들은 ‘살인 연습’을 했고 무고한 여성이 첫 희생자가 됐다. 의기양양하게 실전 연습까지 했던 지존파. 그러나 최씨를 납치 강간하는 데 앞장섰던 송봉우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으로 괴로워했다. “귀신이 자주 꿈에 나타난다”고 두려워하며 조직 가담에 회의를 갖는다. 결국 송씨는 8월 어느 날, 2000만원이 입금돼 있던 조직의 예금통장에서 현금 300만원을 몰래 빼내 도주했다. 김기환은 송봉우의 누나에게 동생의 거주지를 알아낸 후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인근 야산으로 유인한다. 지존파는 송씨를 ‘배신자’라며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체를 암매장했다. 1994년 5월 김기환은 어머니가 살던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의 초가집을 허물고 살인 아지트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대전에서 막노동을 해 모은 돈이 밑천이 됐다. 김씨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과 이웃에게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새로 짓는다”고 말했다. 아지트 완공을 얼마 앞두고 지존파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맞닥트린다. 김기환이 선배의 집에서 자고 있던 선배의 중학교 1학년 조카를 강간해 구속된다. 김씨는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김기환은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해 조직을 이끌게 했다. 두목 김씨의 위상은 교도소 수감 중에도 ‘법’이나 다름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살인 공장’을 완공한 지존파. 지하에는 3000만원을 들여 사제 감옥과 시체 소각장 등을 설치했다. 이들은 태연히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본격적인 범행에 들어가기 전 지존파는 지리산에 들어가 지옥훈련을 받기로 한다. 일주일간 물 한 병과 칼 한 자루로 버티는 담력 훈련까지 했다. 지존파는 범행에 앞서 범행에 사용할 무기와 흉기를 구입하고 전 현대백화점 신용판매부 직원(여)을 통해 백화점 고액 거래자 150명의 명단을 입수한다. 준비가 다 됐다고 판단한 강동은은 김기환을 면회해 범행 착수를 허락받는다. 조직원들은 평소 김기환이 말했던 대로 벤츠나 그랜저 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5명 살해, 극적인 체포 작전 후 검거
1994년 9월5일 낮 12시쯤, 지존파는 아지트를 떠나 서울로 출발했다. 당일 밤 서울 워커힐호텔 부근에서 1박을 하고 7일에 범행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경기 양평군 양수리 국도로 장소를 옮겨 차를 주차한 뒤 범행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했다. 8일 새벽 3시쯤 악사 이아무개씨(36)가 운전하는 그랜저 승용차가 나타나자 지존파는 자신들의 르망 승용차와 포터 화물차로 앞을 가로막았다. 승용차 조수석에는 이씨와 같은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 이아무개양(27)이 타고 있었다. 지존파는 차문을 열고 이들에게 가스총을 난사해 실신시켰다. 테이프와 끈으로 손과 발을 결박한 뒤 고속도로와 국도 등을 이용해 영광 아지트로 납치했다. 이들은 이씨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강제로 소주를 들이부어 취하게 한 후 살해했다. 이양마저 살해하려고 했으나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애원하자 다시 지하 감옥에 가뒀다. 지존파는 이씨의 시체를 차에 싣고 전북 장수군 반암면 교동리로 이동했다. 그런 다음 시체를 그랜저 승용차 운전석에 앉히고는 계곡 아래로 굴린 후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지존파는 다시 범행 대상을 물색하러 다니다 9월13일 오후 5시쯤 경기 성남시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 주차된 그랜저 승용차를 발견한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온 경남 울산 온산공단의 중소기업 사장 소아무개씨(42)와 부인 박아무개씨(35) 부부가 타고 온 차였다. 지존파는 소씨 부부를 납치해 영광 아지트로 끌고 왔다. 소씨가 자수성가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자 몸값으로 1억원을 요구한다. 소씨는 직원을 통해 현금 8000만원을 받았다. 지존파는 돈을 챙긴 후 소씨에게 강제로 술을 먹였다. 소씨가 취하자 악사 이씨의 동행녀인 이양에게 공기총을 주며 직접 쏘도록 강요했다. 지존파의 협박에 이양은 소씨를 쏘아 숨지게 했다. 지존파는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던 소씨의 아내 또한 잔혹하게 살해했다. 지존파는 숨진 소씨 부부의 시신을 훼손했다. 이 과정에서 김현양은 “담력을 키워야 한다”며 박씨 시신의 일부를 먹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일당은 소씨 부부의 시신을 지하실에 만들어 놓은 소각장에 넣고 태워버렸다. 시체가 타는 동안에는 마당에 나가 돼지고기를 구워 냄새와 연기를 위장했다. 이들은 이 돼지고기를 마을주민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9월15일,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실수로 폭발을 일으켜 손과 발 등에 상처를 입었다. 김씨는 영광군 영광종합병원으로 치료를 하러 가면서 악사 이씨와 함께 있었던 이양과 동행했다. 김현양은 이양에게 연정을 품어왔다. 그는 자신이 치료를 받는 동안 휴대전화와 치료비에 쓰기 위해 가져간 돈 50만원을 이양에게 맡겼다. 이 틈을 타 이양은 영광에서 대전, 대전에서 서울로 택시를 바꿔 타며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 끝에 16일 새벽 서울 서초경찰서에 신고했다. 비상을 건 경찰은 이양이 가져온 휴대전화 소유자를 추적한 후, 17일 형사대를 전북 장수로 급파해 소유자인 악사 이씨가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됐음을 확인한다. 같은 날 부두목 강동은은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애인이자 영광의 주점 종업원인 이경숙(23)을 합류시켰다. 그사이 경찰은 이양의 도움을 받아 9월19일 범인들의 아지트인 영광에 도착, 차례로 지존파 일당을 일망타진한 뒤 세상에 알렸다. 이날은 추석 마지막 날이었다. 김현양은 검거 당시 서울의 부유층 청소년들인 오렌지족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드러내며 “돈 많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 압구정동 야타족 등을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아지트에서는 대량의 무기들이 나왔다. 이들의 추가 범행계획도 드러났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이 구속되자 영광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탈취한 뒤 MBC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살인, 강도, 사체유기,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존파는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불가항력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뒤 탈출해 신고한 이양을 불기소 처분하고 지방에 집과 직업을 마련해 줬다. 또 이경숙은 가담한 지 이틀 만에 전원 검거돼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됐다. 검거 당시 강동은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1997년 12월13일,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조직원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로써 지존파는 한국 범죄사에 가장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집단’으로 기록됐다.지존파 검거한 고병천 서초서 강력반장
정년퇴임 후 범죄학 박사 됐다
지존파는 서초경찰서 고병천 강력반장이 일망타진했다. ‘지존파’라는 명칭도 그가 만들었다. 이들의 본래 명칭은 ‘마스칸’(헬라어로 ‘야망’)이었다. 고 반장이 “너희들 조직 명칭을 ‘지존파’라고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이들이 “마음에 든다”고 동의하면서 세상에 그대로 통용됐다. ‘지존파’라는 명칭은 조직원들이 담력 훈련을 할 때 이마에 ‘지존(高品质)’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고 반장이 지은 것이다. 두목 김기환의 별명 역시 ‘지존’이었다. 고병천 반장은 1976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고, 30년 동안 강력반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재직 중 미제사건을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베테랑 형사였다. 고 반장은 재직 중이던 2002년 한성대 마약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2007년에는 수필집도 출간했다. 2009년 혜화경찰서 청문감사관(경정)을 끝으로 33년간의 정든 경찰을 떠났다. 퇴임 후에는 광운대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고, ‘범죄조직(지존파)에 의한 연쇄살인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