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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장수촌 일본 오오기미 마을을 가다] 장수하는 뇌의 비결④ ‘식물영양소’ 풍부한 전통식 섭취

여러 연구를 통해 몇몇 장수 유전자가 밝혀졌다. 대표적인 장수 유전자인 폭소-3가 있는 사람은 인종과 무관하게 생존기간이 길고 질병 사망률이 낮다. 그런데 세계적인 장수 지역으로 알려진 오키나와 사람에겐 장수 유전자가 없다. 유전적으로는 오래 살기 불리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오키나와 사람의 평균 수명은 2016년 81.2세로 일본 전체 평균(79.9세)보다 높고 그리스(78.1세), 미국(76.8세)과도 차이가 크다. 일본 오키나와국제대학 크레이그 윌콕스 교수는 일본 고령자 3584명을 9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랬더니 장수 유전자가 없어도 식물영양소(상자 기사 참고)가 풍부한 오키나와 전통식을 유지하는 사람은 장수 유전자가 있지만 건강한 식단을 챙겨 먹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물영양소가 유전적으로 정해진 수명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윌콕스 교수는 201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 국제 식물영양소 심포지엄에서 “오키나와 전통식이 혈압을 떨어뜨리는 것을 입증했다. 미국인 150명을 대상으로 4주간 오키나와 전통식을 먹게 했더니 평균 혈압이 눈에 띄게 내려갔다. 오키나와는 동네 곳곳에 적색 고구마 트럭이 돌아다닐 정도로 적색 고구마가 주식이다. 적색 고구마엔 베타카로틴 같은 강력한 항산화 기능을 하는 식물영양소가 풍부하다”고 밝혔다.
오오기미 마을 주민의 식단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오오기미 마을 주민의 식단 ⓒ 오오기미 마을 홍보 자료

자색 고구마·시쿠와사·고야·우미부도·모즈쿠·돼지고기·콩

실제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수명에 중요한 요소로 음식을 생각해 왔다. 오키나와에서도 최장수촌으로 유명한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예전부터 음식을 누치구스이(생명의 약)라고 불렀을 정도다. 기자가 이 마을 전통식을 살펴보니 삼시세끼 빠지지 않는 음식 7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색 고구마, 시쿠와사, 고야, 우미부도, 모즈쿠, 돼지고기, 콩(두부)이다. 자색 고구마는 밥과 함께 탄수화물 공급원이다. 과일인 시쿠와사와 채소인 고야에는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다. 해조류인 우미부도와 모즈쿠엔 후코이단이라는 항암물질이 있다. 단백질은 돼지고기와 콩으로 섭취한다. 긴조 데르요시 오오기미 마을 구장(78·촌장)은 “이 마을엔 치매나 뇌졸중 환자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에선 80세를 넘기면 그런 병들이 생기지만 여기에선 신체활동, 식습관 등으로 예방한다”고 말했다.

자색 고구마: 항산화·항염증 효과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자색 고구마를 주식이 밥이 아니라 고구마가 아닐까 할 정도로 자주 먹는다. 속이 보랏빛이어서 자색 고구마다. 《블루존: 최장수의 비결》을 쓴 댄 뷰트너 작가에 따르면 이 마을 주민의 식단에서 고구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67%로 밥(12%)이나 채소(9%)보다 높다. 항산화·항염증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자색 고구마를 그냥 먹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타르트나 파이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해 왔다. 본래 오키나와 땅에서는 농사가 잘되지 않아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다. 1605년 중국에서 자색 고구마 씨를 가져와 재배한 후부터 배를 곯는 사람이 줄었다. 그래서인지 자색 고구마에 대한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은 각별하다. 긴조 구장은 “자색 고구마를 흔히 사쓰마 고구마라고 부른다. 과거 사쓰마(현재 가고시마)가 오키나와를 점령했을 때 이 고구마 이름을 사쓰마 고구마라고 부르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본래 ‘오키나와 고구마’인데 점령군의 이름이 붙어 유명해졌으니 오키나와 사람으로서는 통탄할 일이다. 자색 고구마는 오키나와 특산물로 오키나와에서만 판다. 다른 일본 지역에 있는 자색 고구마는 오키나와산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시쿠와사(밀감과): 다른 감귤보다 뇌 신경 활성 물질 12배 많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주 먹는 음식으로는 시쿠와사가 있다.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자생하는 밀감과의 초록색 감귤이다. 일본 시쿠와사의 70%가 오키나와산이고 그 가운데 60%는 오오기미 마을에서 생산된다. 오키나와 방언으로 ‘시’는 산성을, ‘쿠와사’는 먹을 것을 의미하듯이 시쿠와사는 신맛이 강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초무침과 같은 반찬용이나 주스와 같은 가공용으로 만들어 먹는다. 12월 하순부터 1월까지 황금색으로 익어 이 지역 방언으로 쿠가니(황금)라고 부르는 시쿠와사는 단맛이 돌아 그냥 먹기도 한다. 긴조 구장은 “장수 비결은 유전자, 자연환경, 식생활, 생활습관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시쿠와사를 먹는 문화는 좀 남다르긴 하다. 이 마을에선 어릴 때부터 시쿠와사를 늘 먹어왔다. 지금은 해충 때문에 개체 수가 줄었지만 예전엔 집마다 시쿠와사 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었다. 최근 일본 방송사 HNK가 이 마을의 시쿠와사를 취재해 치매와 뇌졸중 예방에 좋다고 방송한 후 오오기미산 시쿠와사가 동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열량과 과당은 적고 비타민C가 풍부한 시쿠와사는 ‘장수의 과일’로 불린다. 오오기미 마을은 2005년 ‘시쿠와사의 마을’을 선언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그 껍질에 많은 노비레틴 성분에 주목하고 있다. 뇌 신경세포의 활성을 높이는 효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쿠와사엔 이 물질이 다른 감귤류보다 12배 많다.

고야(여주): 당뇨 개선과 암세포 억제 효과

이 마을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은 두부와 버무린 고야 음식(찬푸루)이다. 우리는 여주라고 부르는 쓴맛이 나는 녹색 열매다. 이 열매 생산량은 오키나와가 일본 내 최고다. 고야의 카란틴 성분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기능을 촉진해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나라수완대학 연구팀은 4주간 2000mg의 고야 가루를 당뇨병 환자에게 제공했더니 혈당 수치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미국 캔자스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고야에 풍부한 생리활성물질(트리테르페노이드,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이 암세포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미부도(바다 포도): 암을 공격하는 성분

오오기미 마을 식탁에 늘 오르는 또 다른 반찬은 우미부도다. 해초의 일종인 우미부도는 알알이 맺힌 모습이 청포도와 비슷해 바다 포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양의 철갑상어알과도 비슷해 그린 캐비아라는 별칭도 있다. 이 마을에선 우미부도를 장수초라고 부른다. 미네랄, 칼슘, 철분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유독 관심을 둔 성분은 후코이단이다. 해조류는 거친 파도와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여린 잎을 지키기 위해 점액질을 분비하는데 이 점액질의 주성분이 후코이단이다. 일본 암학회가 1996년 후코이단이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비정상 세포(암)만 공격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후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서도 관련 논문이 1000편 가까이 나왔다.

모즈쿠(큰실말): 후코이단·미네랄·비타민 풍부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모즈쿠가 없으면 밥을 안 먹겠다고 할 정도로 자주 먹는다. 모즈쿠는 긴 실타래처럼 생긴 갈조류의 해초다. 식초에 간장, 설탕 등을 섞은 조미료를 가미해 먹는 습관 때문에 수누이(식초 김)라고도 부른다. 우미부도처럼 항암 작용을 한다는 후코이단 성분이 많다. 미역과 다시마에도 후코이단 성분이 있지만 모즈쿠에 비길 바가 아니다. 또 미네랄과 비타민도 풍부해 웰빙 해초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일본 몇몇 지역에서 모즈쿠를 양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연산 모즈쿠의 90%는 오키나와산이다.

돼지고기: 단백질만 섭취하기 위한 기름기 뺀 조리법이 특징

바다에 인접한 오오기미 마을이지만 생선보다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오키나와에서는 류큐 왕조 때부터 돼지고기를 먹어왔다. 이 지역에서 말하는 ‘고기’란 돼지고기를 뜻한다. 장수촌인 오오기미 마을 주민이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채소와 과일을 고기보다 10배 이상 더 먹는다. 이 지역 홍보지에 따르면 주민의 고기 섭취량은 하루 약 40g이며 콩·채소·과일·해조류는 400g이다. 고기를 먹더라도 지방이 적은 앞다릿살, 뒷다릿살, 안심을 선호한다. 또 기름기를 최대한 줄이는 이들의 조리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삶아 기름기를 빼고 양념을 해서 다시 쪄낸다. 이렇게 기름기를 뺀 돼지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하얀 고체 기름이 생기면 이를 제거한 후 먹는다.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테롤을 크게 줄이고 단백질만 섭취하기 위한 이들의 지혜다. 긴조 구장은 “50년 전만 해도 생선과 고기가 비싸서 잘 먹지 못했다. 그 당시 4~5가구가 모여 돼지를 식용으로 키웠다. 고기는 일주일에 3번 정도 먹는데 한 접시의 4분의 1이 고기라면 나머지는 채소다. 고기는 대부분 삶아 먹는다”고 설명했다.

콩(두부): 암 사망률 낮춘 일등 공신

오오기미 마을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들은 대체로 장수할 뿐만 아니라 건강하다. 이 지역 주민의 심장병·대장암·전립선암·유방암 사망률은 미국인보다 훨씬 낮다. 미국 영양학자이자 내과 의사인 마이클 그레거 박사에 따르면 오키나와 사람과 미국인의 심장병 사망률은 최대 12배 차이가 난다. 그는 “콩과 채소가 오키나와 사람의 식생활 가운데 90%를 차지한다. 생선·고기·유제품·달걀은 각각 1% 미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음식들을 오오기미 마을 주민들은 유독 작은 그릇에 담아 먹는다. 소식(小食)하는 것이다. 그 마을엔 예전부터 음식을 20%쯤 모자랄 때 그만 먹는 식습관(하라 하치 부)이 전해 온다. 하루 섭취 열량이 서양인은 2500kcal라면 이 마을 장수인들은 1800kcal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뇌 활동에 필수적인 영양소는 비타민, 아미노산, 글루코스 등이다. 이런 성분을 함유한 음식을 꾸준히 먹으면 약을 따로 먹지 않아도 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뇌 신경세포를 재생하며 산화물질(독성)을 제거하는 물질을 공급해 뇌 손상이 가속화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으로는 녹황색 채소가 대표적이다. 녹황색을 꼬집어서 말하는 이유는 식물 색소의 항산화 효과가 강하기 때문이다. 장수하기로 유명한 일본 오오기미 마을 사람들이 주로 먹는 자색 고구마도 그 색소가 특정 효과를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식물영양소란?

채소·과일 같은 식물이 자외선이나 해충·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빨강·초록·노랑·하양·보라색의 물질이다. 양파·사과의 케르세틴, 녹차의 카테킨, 포도의 안토시아닌 등 그 종류만 2만5000가지가 넘는다. 식물영양소는 세포 노화를 막고 해독·면역 기능을 돕는다. 특히 항산화 기능이 강력하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비타민·미네랄·물에 이어 ‘제7의 영양소’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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