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16화 - 경찰 말민 믿고 청소년 술 판매한 업주, 처벌된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
항상 있는 말이다. 최근에는 2006년생인 ‘선배’들이 어느 후배를 버릇이 없다며 폭행하기도 했다.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것들’은 항상 버릇이 없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온다.
요즘 것들은 때론 삼엄하고 잔혹하다. 10대들은 초식동물의 군집이다. 가장 뒤처지는 놈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나머지의 안전이 잠정 담보된다. 따돌림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1명의 처절한 피해자가 어느 동네에서든 확실하게 생산되는 탓이다.
여기에 ‘술’까지 개입되면? 통제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술은 범죄를 위한 도구로 쓰인다. 수법은 악랄하다. 쓰러질 때까지 마시게 하고 그 이후 하고 싶은 범죄를 저지른다. 임계점을 모르기에 극단적인 상황까지 달린다. 누군가의 생명이 스러져도 ‘청소년보호법’은 방패가 된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술판매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중요한 입법·행정 업무다. 국회는 이를 통제하는 법안을 만들었고, 정부 역시 술판매한 업주에게 영업정지라는 메스를 들이대며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렇다면 사법은 잘 되고 있을까.
사례를 보자. A는 클럽을 경영했다. 클럽 특성상 영업정지는 1주만 당해도 사업이 망할 수 있기에 A는 청소년 술 판매를 엄격하게 금지했다. 직원들에게 당부한 것도 모자라 경찰서에서 개최된 청소년선도 업주회의에서 질문을 했다.
“대학생인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팔아도 되나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확답을 얻지 못한 A는 며칠 뒤 경찰국장 명의로 청소년 출입단속대상이 18세 미만자와 고등학생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 A는 안심하고 18세 이상의 대학생(빠른 생일)을 클럽에 출입시켰다. 하지만 이는 경찰 단속대상에서 제외될 뿐 사실 법령에선 허용되지 않는 행위였다. 검찰이 들이닥쳤고 A는 기소됐다. A는 처벌받을까.
결론은 처벌된다. A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법률의 부지’였다. 형법 제16조는 자기의 행위가 법령으로 봐도 죄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벌하지 않는다. A는 나름의 노력을 했으므로 무죄가 될 것이라 봤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경찰당국의 단속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것만으로 출입시키는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법률을 모른 것에 불과하고 여기엔 형법 제1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리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A는 처벌을 받았고 클럽은 문을 닫아야 했다.
야심차게 퇴직금을 모아 술집을 차렸던 B 역시 억울함을 호소했다. B는 일본식 선술집을 차렸는데 건장한 노안의 고등학생들이 들어왔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성인으로 보였지만 절차에 따라 신분증을 확인했고 만 20세인 것을 확인한 뒤 술을 내줬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 청소년이었다. 신분증을 위조했던 것이다. B는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행정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았다.
“이게 죄가 되는 줄 몰랐어요.”
본 칼럼의 연재취지이기도 한 이 말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죽이거나, 훔치는 것을 죄가 될지 몰랐다고 할 이는 없다. 하지만 친구에게의 ‘찌라시’전달(본 칼럼 12회), 거스름돈을 더 받고 돌려주지 않은 행위(본 칼럼 5회)가 죄가 되는 줄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법원은 엄격하게 본다. “이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는 이유로 봐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한 인간의 타고난 면피욕구는 생존을 위해 기억도 강제로 편집한다. 법원이 면죄부를 주기 주저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당한 이유’를 두고 법원이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정형법 시행 초기 “법률의 부지는 용서될 수 없다”는 로마법상의 전통이 법조계와 학계에서 지배적이었고 일본형법 제38조 제3항 역시 이러한 핑계는 통하지 않음을 천명한다.
하지만 이 같은 형벌제일주의 사조를 전복하려는 시도 역시 역사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법률의 착오’와 ‘사실의 착오’를 구분하였고 이는 키케로를 통해 로마법에 전승됐다. 서슬 퍼런 조선시대의 법제서인 《흠흠신서》 역시 “굼뜨고 어리석은 자는 사형시키지 않는다” 하여 여지를 남겨왔다.
“죄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은 최악의 변명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도 전략적으로 권할만한 변론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짜 몰랐을 수 있고, 알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그래서 억울한 경우가 있다. ‘법률의 부지(谁知)’라는 이유로 바로 유무죄를 가리기 전에 그러한 착오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시민도 사람일진대 수천 개의 처벌규정을 숙지할 수도 없을뿐더러 몇 줄로 서술된 모든 조문의 해석 및 판례의 입장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다. 책임능력, 적법행위 기대가능성, 위법성 인식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었다면 경찰의 의견에 따른 업주 A에게 집행된 처벌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경찰 말 믿고 청소년 술 판매 한 업주, 처벌된다.
☞사족
단순히 법률을 몰랐다는 이유로 형법 제1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경우에 적용될까. 처벌규정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허용된다고 잘못 인식하였으며 여기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적용된다. 과거 광역시의회 의원이 선거구민들에게 의정보고서를 배부하기 전에, 관할 선관위 소속 공무원들 지적에 따라 배부하였던 경우, 법원은 형법 제16조를 적용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위에서 예로 든 클럽 업주 역시 미성년자보호법을 알고 있었고 관계당국의 의견을 따랐는데 왜 판결이 다를까. 본 칼럼을 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