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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영국도, ‘보수적’ 아일랜드도 시대 흐름 맞춰 법 개정 중
여성 자기결정권 따른 낙태는 여전히 불법
1861년, 영국 정부는 ‘상해법(the Offences Against the Person Act)’을 통과시키며 낙태를 의학적 이유로라도 행할 경우 최소 3년에서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는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현재까지도 이 법안이 영국 낙태법의 근간이며, 의사의 허락 없는 여성의 자의에 의한 낙태는 불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후 1929년 ‘유아 생명 보장법’과 1967년 ‘낙태법’에 의해 낙태법이 두 차례 개정되면서, 특정 경우에 한해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1938년, 집단강간으로 임신한 한 젊은 여성의 낙태 시술을 이행한 의사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낙태 기준이 여성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확대됐다. 1967년 도입된 낙태법을 통해 드디어 여성들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낙태 허가 요소로 공식 인정됐고, 현재까지도 이 조건이 영국 낙태 시술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후 낙태 가능 시기가 28주에서 24주로 한 차례 단축됐다. 태아의 독자 생존이 가능한 시기를 이같이 새로 규정한 것이다. 24주 이후의 낙태는 산모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예상되거나 태아에게 심각한 기형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또한 낙태 시술은 태아의 주 수와 산모의 상태에 따라 약물 낙태와 낙태 수술 두 가지 중 하나로 이뤄진다. 80% 이상의 낙태 시술이 조기 약물 낙태이며, 이는 임신 10주 이내에 행해진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총 낙태 시술의 98%는 임신 12주 이내에 행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1967년 낙태법 개정 당시 유럽 내에서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영국의 낙태법도 이제는 구시대적 법안이 됐다. 물론 시대 흐름에 따라 개정을 거듭해 왔지만, 여전히 영국 내에서도 더욱 진보적인 낙태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헌법불합치 결정 후 이제부터 서서히 낙태법 개정이 하나하나 이뤄져야 하는 한국이 무조건 영국 낙태법을 모법답안으로 삼아선 안 되는 이유다. 여전히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낙태는 불법이다. 산모 및 태아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험이 낙태 시술 허가의 기준이다. 물론 의사의 자율적 해석에 의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또는 정신적 한계를 근거로 낙태 시술이 허가되기도 한다. 스카이뉴스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실상 현재 낙태 시술의 98%가 ‘정신적 위험’을 이유로 행해지고 있다. 여성은 낙태를 하기 위해 낙태를 하지 않을 경우 본인 삶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것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사회적 의무이며, 이를 저버리기 위해서는 여성 본인이 국가가 공인한 이에게 별도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영국은 현재 일반적으로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이는 태아가 ‘독자 생존이 가능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아일랜드는 여성이 원할 경우 임신 12주 이내,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나 임신한 여성의 건강이 위험할 때는 최대 24주 전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한국은 그동안 낙태가 허용됐던 특수한 사정에 한해 24주 이내 낙태가 가능했다. 한국의 경우,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일부 재판관들에게서 ‘임신 14주’ 무렵까진 “어떠한 사유 요구 없이 임신 여성이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단 “임신 22주 이후 낙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이는 향후 법 개정 과정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낙태 시술에 대한 의사들의 거부권 인정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