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의 투명성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가 목적사업비다. 법인이 설립 목적에 부합하게 돈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복지재단은 법령에 따라 다양한 복지활동과 지원을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목적사업비가 얼마나 지출되고 있는지가 해당 법인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시사저널이 비영리기관 정보제공 시스템인 ‘한국가이드스타’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일부 대기업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이 목적에 맞게 지출하는 돈의 비중은 극히 작은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목적사업비 비중은 1.2%에 그쳤고,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지출의 0.96%만 목적사업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행법은 공익법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해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 및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현금과 부동산 등 주식 이외의 자산을 공익법인에 출연한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를 전액 면제해 준다. 주식도 발행 주식 총수의 5%(성실공익법인 20%) 한도에서 면제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정작 대기업이 사회복지 등 실제 공익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비로 사용하는 돈은 적다는 점에 대해 지적이 나온다.
병원 운영하는 재단, 수익사업에 99% 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어린이집 운영 지원과 상찬사업, 연구지원 등의 사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총 지출 1조4372억4176만원 중 1.2%인 171억428만원만 공익사업에 지출했다. 나머지 98.8%인 1조4201억3748만원은 수익사업을 하는 데 사용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과거 3년간 총 수입액은 4조4463억원이 넘지만 공익사업비 지출은 300억원 정도로 총 수입 대비 비중이 0.69% 수준에 그쳤다.
최대 사회복지재단 중 한 곳인 현대중공업 산하 아산사회복지재단 역시 목적사업비로 사용한 지출 비중이 0.9%에 불과했다. 사회복지와 의료복지, 장학사업 등을 주 사업으로 삼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총 지출 2조1107억8830만원 중 목적사업비로 188억7720만원만 사용했다. 대신 수익사업 지출로는 모두 2조905억2534만원을 사용했다.
목적사업비로 1%만을 지출한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은 모두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병원은 기본적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익재단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계속 적자를 메워 가면 그 목적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법령에서 정하는 사회복지사업은 사회복지 상담, 직업 지원, 무료 숙박, 지역사회복지, 의료 복지, 사회복지관 운영 등 각종 복지사업과 이와 관련된 자원봉사, 복지시설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사회복지법인을 관할하는 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행법상 병원 사업은 사회복지법인으로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설립될 당시에는 이 법인들이 병원 운영을 하기 전이라 사회복지법인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사회복지법인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목적사업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법인의 설립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로 한정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수익사업이 99%라면 사회복지라는 설립목적 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인의 분류는 다르지만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는 재단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나 아산사회복지재단보다는 공익사업 비중이 높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수익사업 비중이 높게 나왔다. 허창수 GS 회장이 대표로 있는 GS남촌재단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의료비 및 의료서비스 지원, 교육 및 장학사업, 문화 사업 등이 주요 사업으로, 수익사업(82%)에 비해 공익사업 비중(18%)이 작게 나타났다. 문화 재단으로 분류된 KT그룹희망나눔재단 역시 장학금 지급과 정보통신 지원, 빨간밥차 등 사회공헌 사업을 하고 있다. 총 지출 585억4693만원 중 수익사업으로 499억6924만원(85.3%) 지출, 공익사업 중 목적사업비 지출은 85억7769만원(14.7%)이다.
현대중공업의 다른 사회복지법인인 아산나눔재단과 비교해 보자. 이 재단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출범한 공익 법인으로, 기업가 정신 교육과 청년창업 지원,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운영 등을 사업으로 하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118억2187만원의 총 지출 중 목적사업비로 86억3236만원(73%)을 사용했다. 수익사업 지출은 21억5862만원에 불과했다.
삼성복지재단도 비교적 많은 비중의 공익성 지출을 하고 있었다. 총 지출 379억2383만원 중 300억1759만원을 공익사업에 사용했다. 비중은 79.2%다. 삼성복지재단은 드림클래스라는 장학사업과 어린이집 운영 지원, 사회복지 관련 학숙연구단체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오너 일가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평소 아동복지에 관심이 크고, 사회공헌 사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LG의인상 시상과 저신장 아동 지원 등 활동을 하고 있는 LG복지재단의 경우 공익사업에 62%를 사용하고 있었다. 총 지출 50억1519만원 중 공익사업 지출은 31억3108만원이었다. 이 중 목적사업비는 28억6049만원으로, 전체 지출 대비 비중은 57%였다. 수익사업은 38%를 차지했다.
특히 롯데나 CJ그룹의 사회복지재단은 공익사업에 지출하는 비중이 90% 이상이다. 소외계층과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의료 지원과 미얀마 빈민 지원 등을 하고 있는 롯데복지재단의 이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씨다. 롯데복지재단은 총 지출 12억5403만원 중 목적사업비로 11억7873만원(94%)을 사용했다. 수익사업에 지출하는 비중은 0.26%(326만원)에 불과했다. 소외계층과 지역주민 문화와 복지 등을 지원하는 롯데삼동복지재단 역시 목적사업비 총 지출 12억8925만원 중 목적에 맞게 사용한 지출이 11억7813만원으로 91.4%에 달했다. 수익사업으로는 0.23%인 293만원을 지출했다.
목적사업비에 90% 이상 쓰는 롯데·CJ 등과 비교
이재현 CJ 회장이 대표로 있는 CJ나눔재단은 푸드뱅크 등 식품복지사업과 교육복지사업, 공부방 등 자원봉사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목적사업비로 쓰이는 비중은 97%. 총 지출 144억7391만원 중 140억8320만원이다. 기타 법인으로 분류돼 있지만 사회적기업 사업과 교육문화 사업을 기치로 설립된 SK행복나눔재단의 경우도 총 지출 176억1782만원 중 153억3600만원(87%)을 목적사업비로 사용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 지원, 저소득층 아동 지원,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을 하는 GS동행복지재단은 공익사업에 100%를 지출한다. 목적사업비로는 총 지출 22억3959만원 중 19억6380만원(87.7%)을 사용했다.
이렇듯 재벌 계열 사회복지재단 중에는 비교적 지출의 많은 비중을 공익사업에 쓰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체 사회복지법인의 공익사업비 지출액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모자란 수준이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들은 다른 사회복지법인들에 비해 수입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공익사업비 지출 상위 20위권 안에 단 한 곳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사회복지법인들로 불리는 월드비전과 어린이재단 등은 공익사업으로 2263억6545만원과 1767억6623만원을 사용했다. 공익사업 지출 비중도 99%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