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몇 년 전 미국 뉴욕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아침에 차를 몰고 가고 있는데, 라디오 뉴스에서 긴급뉴스가 나왔다,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옆에 있던 미국인 친구가 “북한은 왜 저러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바로 “북한(North Korea)에 관해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 친구는 “아니, 너희 나라하고 싸우고 있잖아. 공산주의 국가이고 조그마한 독재국가 아니냐”고 답했다.
사실 필자는 미국에 9년 가까이 살아봤지만, 미국 국민들은 북한은 물론 남한(South Korea)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모른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정확하다. 한국보다도 삼성이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더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떨 때는 삼성이 한국 회사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북한과 남한이 붙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관심이 없는 셈이다. AP통신을 비롯한 모든 외신들은 한국 관련 기사에선 남북한이 언제 전쟁을 했고 언제 정전을 했으며,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 등 기초적인 내용을 항상 기사 끝에 달기도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이어 2017년 11월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고 난 다음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이다. 미국 국민들의 무관심을 돌리게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이를 대표한다. 북한이 ICBM인 화성-15호 발사에 성공하자 외신들은 앞다퉈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선제타격까지 시사하면서 위협 분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으로 지칭해 북한 지도자의 이름조차 모르던 미국 국민들에게 선전해 주기까지 했다. 핵무기 발사 버튼 크기까지 거론하며 이른바 ‘말폭탄’ 전쟁을 벌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민의 무관심 속에 있던 북한 위협 인식을 끄집어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北 위협 인식, 1%→75%로 끌어올린 트럼프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연구소’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을 가장 위험한 나라로 꼽는 미국 국민은 1% 내외에 불과했다. 이후 한때는 20% 가까이 치솟기도 했으나, 통상적으로 10% 내외에 머물렀다. 하지만 갤럽 조사에 의하면, 북·미가 서로 ‘말폭탄’을 주고받은 2018년 초에는 미국 국민의 51%가 전 세계 국가에서 북한을 최대의 적이라고 답할 정도로 치솟았다. 실제로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던 시기에는 북한을 중대위협으로 본다는 미국 국민들이 75%까지 가파르게 상승하기도 했다. 북한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미국 국민들의 관심사를 사로잡게 만드는 데 트럼프 대통령이 연출을 맡았다는 우스갯소리가 과언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만큼 상황이 바뀌자 미국 국민들의 북한 위협 인식은 급속하게 다시 하락하고 있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 국민 77%가 북·미 수교를 지지하고 54%는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도 지지하는 것으로 나올 정도다.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 국민들이 과거부터 북한을 미국에 대한 큰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대체로 일반 미국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고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 법한 악명 높은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로 인식한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군사 퍼레이드 장면이나 집단체조 장면 등이 섞인 뉴스를 보면서, 이런 인식은 거의 굳어졌다. 또 탈북자들이 주장하는 여러 내용들이 외신이나 미국 언론에 선정적으로 보도되는 것도 한몫했다. 미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공화당이나 민주당 정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다.
멀어지는 美 국민 관심…트럼프 극복할까
마치 ‘머리에 뿔 달린 독재자’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니, 그 자체가 파격적인 역사적 사건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70년 가까이 적대관계에 있던 두 정상의 만남이라고 평가했지만, 미국 국민들 입장에선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 무관심하던 미국 국민들을 ‘화염과 분노’로 냉탕에 집어넣으면서, 다시 정상회담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연출가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적인 ‘리얼리티 쇼’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다음 날 바로 트위터에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은 없다”고 자화자찬했다. 이후 끝없이 각종 유세나 연설에서 “노 미사일(No Missile), 노 테스트(No Test)”를 연발하며,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웠다. 당연히 미국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위협 인식은 급격히 떨어졌다. 대통령이 공포의 대상이 없어졌다고 자랑하는데, 미국 국민들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역설적으로 추가적인 북·미 협상은 교착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미국이 이제 답답한 것도 없고 북한의 위협도 없는데, 협상에서 무슨 양보를 하겠는가”라는 말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는 이유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선 원론적인 합의를 이뤘지만, 북·미가 아직 구체적인 합의나 실행에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최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과 공포가 끝났다고 자랑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공포 분위기’를 자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ICBM 공개 파기 등 눈에 띄는 가시적인 실행을 미국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위협이 없어졌다는 말에 대한 당연한 결과로 미국 국민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어떠한 합의를 내놔도 민주당을 비롯한 반(反)트럼프 진영에서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한 일이다. 매일 10여 건에 달하는 트윗을 올리며, 미국 국민과 세상의 관심 받기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 그가 북한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2차 북·미 정상회담과 향후 북·미 협상을 지켜보는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