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우파 보수정치 재기 해법과 관전 포인트 다섯가지
최근 여의도 정가에는 ‘박근혜 사면설’이 단연 화제다. 요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 실정(失政)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45% 밑으로 추락하면 여권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다. 이럴 경우 정국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 여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 사면시킨다. 이때 명분은 화해와 통합이다. 하나 이는 양날의 검이다. 오히려 지지층 이탈이라는 독(毒)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사면설이 정가의 관심으로 자리 잡는 이유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카드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서다.
지금의 보수정치 위기의 중심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비박계가 탄핵의 책임을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의 무능으로 돌린다면, 친박계는 비박계가 진보세력과 손잡고 보수 정부 등에 칼을 꽂았다고 본다.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여의도 정가에는 최근 모 친박 인사가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신당 추진 의사를 전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1.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
차기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주변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야권에서 최대 의석수를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표면상 비박계가 당권을 잡고 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은 계파상으로 모두 비박계다. 하지만 원내 최대 계파는 여전히 친박계다. 두 세력이 여전히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치지형 탓이다.
범(汎)비박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당의 갈등은 더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3선 이상, 영남, 잔류파 등 구체적인 당협위원장 교체 기준까지 거론되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친박계다.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11월26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동안 몇 번이나 탄핵에 대한 백서 제작 당위성을 설명했는데도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워 특정 계파 이익을 노린다는 식의 왜곡된 프레임으로 당을 지켜왔던 이들의 진정성을 훼손하려 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박계 정우택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대위가 인적 쇄신의 칼을 들이대며 당협위원장 교체로 전당대회를 (복당파에) 유리하게 치르기 위한 꼼수를 쓴다면 당은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옛 친이계 인사는 “지금의 보수 정치지형으로 유권자에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친박계와 비박계의 화학적 결합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박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친박계는 폐족(廢族)을 선언하고 물어났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당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친박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 작업에 돌입할 경우, 이들이 독자행동에 나설 것으로 본다. 이를 의식한 듯 11월26일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회의에서 “계파 논리를 살려서 분당 운운하는 이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비대위와 비대위원장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친박계의 큰 정치적 자산은 TK(대구·경북)로 대표되는 영남권이다. 현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큰 TK에서 친박이라는 상품성은 여전히 매력이 있다. 11월26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월 정례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전국적으로 15.2%였지만, TK에서는 26.7%로 가장 높게 나왔다. 참고로 이 지역에서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27.1%로 가장 낮았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은 “일부 친박계 인사는 TK 자민련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박 전 대통령 이름을 팔아 연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박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상황은 정반대다. 자유한국당에서 정치적 활동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비박계는 새 판을 짜려 들 공산이 높다. 고성국 ‘고성국 TV’ 대표는 “보수 우파는 지난 탄핵 과정에서 정치적 배신을 한 집단을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비박계에 대한 심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2. 홍준표 前 대표 등장과 반문연대 결성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역시 보수 야권의 정치지형에 중요한 변수다. 홍 전 대표는 11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정치 현장에 다시 복귀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뒤치다꺼리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내가 꿈꾸는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라며 사실상 현장 복귀를 선언했다. 홍 전 대표의 등장에 가장 큰 불만을 갖는 쪽은 구원(舊怨) 관계에 있는 친박계다. 홍 전 대표는 이들을 향해 양박(양아치 친박)이라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반(反)문재인 연대’다. 정파를 초월해 ‘반문(反文)’이라는 빅텐트 아래로 모이자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까지 총망라된다.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빠르게 하락세를 타는 상황에서 야권으로선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1월 3주 차(19~23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취임 후 최저치인 52%를 기록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견해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특정 정치인 반대를 매개로 한 정치세력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측면에서 반문연대가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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