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일제 단속 後 100일…단속 걸렸다던 성인오락실 버젓이 영업 재개
국내 성인오락실의 불법 환전이 경찰의 방만한 단속과 비호 아래 횡행하고 있다는 의혹이 한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불거졌다. 앞서 시사저널은 지난 8월13일 기사(‘[단독] 제2의 바다이야기 황금성 수백억원 탈세 의혹’)를 통해 국내 성인오락실의 불법 환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후 경찰은 관련 부처와 손잡고 불법 성인오락실을 뿌리 뽑겠다고 약속했지만 허언에 불과했다. 취재 결과, 지난 9월 일제 단속 기간에 잠시 문을 닫았던 경기와 서울 지역 성인오락실 업자들은 최근 들어 다시 업장을 열고, 게임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해 주면서 하루 평균 수백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에 관련 사실을 제보한 A씨는 “게임장을 운영하는 업자들이 경찰의 단속 일시를 미리 알고 불법 개조한 게임기를 전부 빼돌렸다가 단속이 끝난 후 다시 업장으로 들여왔다”며 “지역 경찰의 비호가 없다면 이뤄질 수가 없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수년에 걸쳐 지역에서 불법 게임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경찰은 손을 놓은 채 방관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8월13일 성인오락실에서 대규모 탈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업자들이 명의만 빌려주는 ‘바지 사장’을 내세워 불법 환전과 탈세 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일이 비단 일부 업자만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이고 관행적이라는 게, 시사저널 르포와 내부고발자 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됐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불법 도박 문제가 근절되기는커녕 사회 곳곳에 잡초처럼 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도가 나간 이후 관련 문제를 고발하는 추가 제보도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제보는 실제 성인오락실 운영 실태를 알고 있는 전·현직 성인오락실 업자들이었다. 이들은 성인오락실의 불법 환전 방법과 실태 등을 고발하기 위해 장부(帳簿)와 영상 등을 동봉했다.
“뿌리 뽑겠다”…불법 오락 전쟁 선포한 경찰
성인오락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찰을 비롯한 관계기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보도 4일 뒤인 8월17일 경찰청·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물관리위)는 ‘불법사행성 게임제공업소 근절을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를 개최했다. 3개 관계기관은 불법 게임물의 이용을 근절하기 위해 공동으로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게임제공업소 및 경찰관서 등 관련 기관에 부착하고, 각 기관의 홍보사이트 등을 이용해 대국민 대상 불법게임물 이용 근절 홍보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게임제공업소의 건전화를 위해 관계기관 간 통계자료 등 정보교류 및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김종민 경찰청 생활질서과장은 “불법사행성 영업 게임제공업소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추진,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규직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이번 관계기관 간 공조체계를 통해 불법사행성 영업 게임제공업소가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부처 차원에서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불법 성인오락실에 대한 우려를 조기에 불식해야 한다는 데 경찰과 정부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후 경찰청은 게임물관리위를 통해 불법사행성 게임 단속을 위한 ‘특별과외’를 받기도 했다. 게임물관리위는 지난 8월29일과 30일 양일간 전국 경찰 풍속업무 담당자 63명을 대상으로 부산 본청과 서울 수도권사무소에서 ‘불법사행성 게임물 단속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게임물관리위는 불법 게임물 단속 및 감정·분석 사례, 업소 동향, 법원 판례 및 관련 법률정보 등의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단속 과정에서 ‘거물급 불법 성인오락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지난 9월2일 고양시에서 불법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한 혐의(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로 업주와 환전상을 구속하고 바지 사장과 종업원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업주는 약 53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관할 구청에 불법 영업 사실을 통보하고, 국세청에도 수사 결과를 과세자료로 통보했다.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예고하면서 실제 불법 환전을 자행하던 일부 성인오락실 업주들이 스스로 문을 닫기도 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에 불법 환전 장면이 포착됐던 서울 동대문구와 서대문구, 경기도 포천의 성인오락실들은 지난 8·9월 게임기를 모두 철수하고 게임장을 폐쇄했다. ‘엄정 대응하겠다’던 경찰의 엄포가 효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경찰이 대대적인 단속을 약속한 지 100여 일이 흐르면서 움츠러들었던 불법 성인오락실이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잠시 몸을 피해 있던 성인오락실 업주들이 최근 단속이 잠잠해진 틈을 타 다시 게임장을 차리고 불법 환전에 나선 것이다.
현장 가봤더니…단속은커녕 불법 환전 활개
시사저널은 이 같은 사실을 한 제보자가 전달한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동영상에는 지난 11월19~21일 경기도 포천시 R게임장에서 불법 환전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 환전은 게임장 내 암실에서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손님이 환전을 요청하면 종업원이나 업주가 현금뭉치를 들고 와 게임포인트를 현금으로 바로 바꿔주는 식이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려 단골손님들에게만 수수료 10%가량을 떼고, 포인트를 환전해 줬다.
이 게임장을 운영한 업주는 성인오락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아무개씨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8월 불법 환전의 온상지로 지목됐던 포천시 S게임장을 운영했던 인물이다. 그는 시사저널 보도 직후 S게임장을 폐쇄했다가, 최근 들어 S게임장 인근 건물에 R게임장을 차리고 불법 환전을 다시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상에 등장하는 업장의 경우 100대에 가까운 게임기를 돌리면서 하루에 벌어들이는 돈만 수백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매일 밤 자정이면 R게임장의 바지 사장으로부터 당일 수익금을 현금으로 전달받았다. 다만 박씨는 취재가 시작된 후인 11월24일경 다시 게임장을 폐쇄하고 지방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제보자 A씨는 “박씨는 의정부와 포천, 남양주, 구리시 등에서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는 인물로, 지역 건달과 바지 사장을 앞세워 환전으로 돈을 벌었다”며 “지난여름 단속이 뜬 이후 일부 업장을 잠시 닫았는데 그때 (불법 개·변조된) 게임기를 창고에 은닉했다가 최근 다시 영업을 시작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달(11월) 들어 대놓고 환전을 하면서 영업을 했지만 경찰의 단속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취재가) 시작된 걸 알았는지, (검거가) 두려워서 지방으로 잠시 도피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취재 결과, 포천시 인근에는 R게임장 외에도 올해 들어 단속 대상이 됐던 2곳의 게임장이 최근 들어 다시 영업을 재개, 환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해 또 다른 제보자 B씨는 “‘관작업’(경찰 등 공무원과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들어간 업장의 경우 단속을 거의 안 맞는다. 단속에 걸려도 한 달 정도 문을 닫았다가 다시 영업을 재개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관작업에 성공한 오락실의 경우 지역 건달들이 드나들면서 마음 놓고 환전을 하곤 한다. 그렇게 5년 넘게 운영된 업장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례가 비단 일부 지역, 특정 시기에 국한해서 발생하는 건 아니다. 앞서 지난 5월 동해경찰서와 강원지방경찰청은 불법 환전과 게임기 개·변조 혐의로 게임장 운영 업주와 실소유주 2명을 구속했는데, 이들은 이미 지난해 경찰 단속에 적발된 이들로 게임기가 압수됐지만 영업취소 행정처분이 치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또다시 게임기를 들여놓은 뒤 불법 영업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하자’는 청장에 일선 경찰 “단속에 한계”
결국 경찰의 허술한 단속망이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역 경찰들의 비호 없이는 수년째 불법 영업을 자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심의 목소리도 새어 나온다. 실제 시사저널과 만난 제보자들은 입을 모아 “환전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들이 정치권과 단속 권한을 가진 경찰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고 고발했다. 경기 남양주에 거주한다는 J씨는 “경찰에 한 게임장의 불법 환전을 신고했는데, 하루도 안 되어 그 게임장의 업주한테 전화가 왔더라. 500만원 줄 테니 합의하자고 했다”며 “결국 경찰이 그 게임장 업주한테 내 신고 사실을 일러준 것 아니었겠나.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상황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앞서 7월24일 취임사를 통해 밝힌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민 청장은 “국민들은 여전히 경찰의 일하는 모습이 미덥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경찰에 대한 불신(不信) 해소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생활 적폐’로 꼽히는 성인오락실의 불법 환전 문제에는 엄정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모양새다.
민 청장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일선 경찰들이 불법 환전을 쉽사리 적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은 인력과 근무 여건 등 ‘현실적인 문제’를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모든 성인오락실을 일일이 단속할 여력이 없을뿐더러, 또 단속을 피하려는 업주들의 수법이 날로 지능화되고 있는 탓에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생활질서계의 한 경사는 “사실 환전 영상 등이 제보로 들어와도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 나가야 하는데, 이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 (작전이) 깨지는 경우도 많다. 모든 업무가 (불법 환전 적발에) 집중돼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현장 근무자로선 답답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업주들이 이미 해당 지역의 형사 얼굴을 다 알고 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 수상한 사람들에게는 환전을 해 주지 않다가, 몇 차례 출입을 통해 안면이 익은 고객에게만 현금으로 환전해 준다. 또 게임기 개·변조 수법도 관련 전문가들이 밝혀내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해졌다. 단속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풍속업무 담당 경찰은 지역 성인오락실 업주들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 “물론 우리(경찰)끼리도 서로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좁은 지역에서 단속 업무를 하다 보면 업주들과 본의 아니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는 같은 팀 안에서도 알 길이 없다”며 ”다만 범죄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그들(업주들)과 관계를 가져가는 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우리들끼린 ‘쥐새끼를 잡으려면 먼지도 뒤집어써야 한다’고 얘기한다. 선을 딱딱 지키면서 범죄를 적발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인 중독예방시민연대가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경찰의 엄정한 단속’을 촉구하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올리자, 포천경찰서 생활안전계 관계자가 시민단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와 “우리도 그곳(불법 환전이 이뤄지는 성인오락실)이 어디인지는 다 알고 있다”며 “그러나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중독예방시민연대 관계자는 “어디인지도 알고 있으면서 한계가 있다고 단속을 미루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애초에 경찰들이 이 문제가 그리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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