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의 테리우스》로 액션·코믹 내공 녹여낸 소지섭
‘소지섭 쯤’ 되는 톱스타가 미니시리즈에 출연하면 연예계에는 기다렸다는 듯 풍문이 쏟아진다. 으레 이런 것들이다. ‘상대 여배우를 콕 찍어 누구누구로 추천했대’ ‘모 여배우를 단칼에 거절했대’ ‘드라마에서 입은 옷이 어쩌고저쩌고’ ‘스태프에게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했대’ ‘작가와 사이가 안 좋대…’. 드라마가 끝나기 전까지 확인되지 않는 루머가 넘쳐난다. 덕분에 기자들 모임에선 이곳저곳에서 입수한 따끈따끈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MBC 수목극 《내 뒤에 테리우스》로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소지섭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했다. 에피소드도 훈훈했다. 믿을 만한 취재원에 따르면, 소지섭은 제작진에 상대 배우에 대해 ‘요구 아닌 부탁’을 했다고 한다. “신인배우도 좋으니 연기 잘하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싶다.”
으레 미니시리즈의 주연은 매주 시청률이라는 성적표가 주어지기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상대 배우에 민감하다. 그 때문에 연기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파급력 있는 아이돌 출신 스타나 톱배우, 한류스타, 핫한 라이징 스타를 상대 배우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소지섭의 담백한 요구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뿐이 아니다. 스태프들의 전언에 따르면, 드라마 초반 회식 자리에서 인간미 폴폴 나는 모습으로 매력 발산(?)을 했다고 한다. 다이어트에 한창인 그가 회식 자리 초반엔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자리를 파할 때쯤 제대로 된 ‘먹방’을 보여 좌중을 폭소케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 촬영 내내 ‘테리우스’팀을 묵직하게 이끌었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내 뒤에 테리우스》는 ‘소지섭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직 요원부터 육아 도우미까지, 소지섭은 그간 쌓아온 내공을 고스란히 이 드라마에 녹여냈다. 수목극 부동의 1위를 고수하며 소지섭의 저력을 확인시킨 셈이다. 물론 ‘연기 잘하는 여배우’ 정인선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 만에 드라마 컴백 ‘수목극 부동의 1위’
《내 뒤에 테리우스》는 사라진 전설의 블랙 요원(소지섭 분)과 운명처럼 첩보 전쟁에 뛰어든 앞집 여자(정인선 분)의 수상쩍은 환상의 첩보 콜라보 드라마로, 소지섭은 극 중 전직 정보기관 블랙 요원 ‘김본’을 열연했다. 액션만 구사하는 단순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3년 전 망명 작전 중 연인이자 북한 핵물리학자였던 정보원을 잃은 사연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의 앞에 수상쩍은 앞집 여자 고애린(정인선 분)이 나타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줄거리와는 달리 코믹 무드가 극 전반에 흐르면서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다.
스태프들도 신선했다. 드라마 덕후들에게 ‘숨겨진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MBC 수목극 《쇼핑왕 루이》(2016)의 오지영 작가와 MBC 단막극 《세가지색판타지-생동성 연애》(2017)를 만든 박상훈 PD가 의기투합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폴란드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소지섭과 정인선 외에도 손호준·임세미, ‘아줌마 부대 3인방’ 김여진·정시아·강기영과 아역 김건우·옥예린 등이 출연했다.
드라마 제작 보고회에서 만난 소지섭은 솔직하고 재치가 있었다. 평소 드라마 제작발표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모였고, MBC 관계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최근 《군함도》(2017),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 등의 영화에는 출연했지만, 드라마는 2016년 방송된 KBS2 《오 마이 비너스》 이후 2년 만인 소지섭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직 블랙 요원이자, 현직 베이비시터 역할입니다. 첩보와 액션, 코믹 로맨스 등 다양하게 들어가 있으니 보시는 분들이 즐겁고, 촬영을 하면서는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박상훈 PD 역시 소지섭의 캐스팅에 큰 만족감을 보였다. “처음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배우들과 작업을 하게 됐다. 김본 역은 소지섭 선배 외에 다른 배우를 떠올릴 수 없었다. 원숙미와 고독미가 최고였다. 대본을 한 번에 알아봐줘서 고맙고, 첫 미니시리즈 데뷔작을 소지섭씨와 함께해서 자랑스럽다.”
미니시리즈 신인 연출가와 시청률 파워에서는 다소 약세인 정인선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상대역인 정인선씨가 아역 출신이라 연기 경력이 저와 비슷해요.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호흡이 좋아요. 케미가 썩 괜찮을 겁니다. 우리는 부담이 없어요(웃음).”
“시청률보다 오래 남는 드라마 만들고 싶다”
실제로 두 사람은 촬영 내내 ‘찰떡궁합’의 호흡을 자랑했다. 평소 겸손하고 씩씩한 성격으로 알려진 전인선은 공공연하게 “데뷔 연도는 같지만 소지섭 오빠는 당연히 ‘선배님’”이라며 깍듯하게 모셨다고(?) 한다. 소지섭은 역시 정인선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매 순간 (소지섭에게) 감동하며 촬영하고 있다. 가장 감사했던 건 대본에 갇히지 않게 상상력을 많이 자극해 준다. 리허설을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대사를 바꾸기도 하고, 또 그걸 받아주니 연기하는 게 즐겁다. 말 그대로 좋은 복지, 최고의 근무 환경에서 따듯하게 촬영하고 있다.”(정인선)
소지섭은 신민아와 열연한 전작 KBS 월화극 《오 마이 비너스》, 예능 tvN 《숲속의 작은 집》 등의 시청률이 부진했다. 시청률에 대한 그의 생각도 궁금하다.
“시청률요? 그 원인은, 주연배우인 제게 있죠. 어느 프로그램이든 제작진이 최선을 다해서 만들지만, 사랑을 받는 건 하늘의 뜻인 것 같아요. 시기가 안 맞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수목드라마 경쟁이 치열한데, 사실 요즘엔 시청률이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시청률보단 가슴에 오래 남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뭐랄까, 오래 간직될 수 있는 드라마요.”
우스갯소리로 소지섭은 ‘입금 전후가 다른 배우’로 알려져 있다. 출연료 입금 전후의 비주얼 상태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는 초반까지도 ‘극한의 관리’ 중이었다고 전해진다.
“우선 입금이 되면 다이어트를 시작합니다. 대본을 보고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캐릭터에 맞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웃음). 이번엔 액션신도 있어서 액션스쿨에서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영화 《회사원》에서 했던 액션은 시스테마 러시아 무술인데요, 이번에 나오는 액션도 시스테마가 베이스가 되고, 변형된 무술을 선보입니다.”
그가 말하는 《내 뒤에 테리우스》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육아하는 소지섭(웃음)? 아이들과 촬영하는 것이 어떻게 비쳐질지 긴장됐어요. 전작에서 아이들과 촬영해 보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 둘과 촬영하는 건 만만치 않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어머님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한여름에 가을 옷을 입고 촬영해야 해서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열심히 촬영에 임해 준 아이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극본을 쓴 오지영 작가는 마지막 대본에서 소지섭을 비롯한 스태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당신들은 NIS도, KIS도 울고 갈 최고의 요원입니다.” 지난 3개월, ‘김본’ 요원 덕분에 든든했던 안방극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