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대중음악 속의 군대, 군대 속의 대중음악
2018년 국군의 날은 한반도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하루였다. 국군의 날 트레이드마크인 화려한 열병식과 퍼레이드는 없었다. 대신 단출한 기념식과 군인들을 위한 흥겨운 무대 행사가 있었다. 내전의 비극을 겪은 까닭에 오로지 강군(軍) 육성만이 국가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오랜 패러다임이 상징적으로 해체되는 순간이다.
병역이 대한민국 젊은 남성의 의무인 한 그것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천형(天刑·하늘이 내리는 큰 벌)과 같은 것이다. 군대에 간다는 것, 어른들은 철이 드는 통과 제의(祭儀)라고 불러왔지만, 모든 젊은이에게 병역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젊음, 그 자체의 강제적인 박탈이다.
대학교까지 교련 과목이 있었던 시절인 1980년대까지는 한국 사회의 권력 자체를 군 출신들이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는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군대를 젊음에 대한 억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으며, 그것은 당연히도 엄숙하고 장엄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병영국가의 또 다른 이름, 軍歌
유신독재가 극에 달하던 1970년대 중후반에는 한술 더 떠서 군가가 병영의 담을 넘어 한국 사회의 일상 자체를 지배했다. 모든 학교와 관공서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가(軍歌)와 군가 조(調)의 국민가요(나중에 건전가요로 이름이 바뀐다)가 나라를 뒤덮었다. 모든 대중음악 음반의 마지막 트랙은 군가를 필수적으로 수록해야만 했던 문화적인 야만은 그야말로 병영국가의 풍경을 상징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된 조영남의 《이일병과 이쁜이》 그리고 《점이》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참으로 흥미로운 노래다. ‘부모님 말씀도 안 듣던 내가 조국의 부름에 따랐습니다/훈련소서 더벅머리 싹뚝 잘릴 땐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지마는/지금은 산뜻한 군복을 입고 호미 대신 총을 멘 멋쟁이라오’로 시작하는 《이일병과 이쁜이》는 병역의 의무에 대한 흥겨운 예찬이다. 이에 비해 훨씬 서정적인 《점이》는 ‘이 목숨 바치면 이 목숨 바치면 조국에 영광이 있으리니’라는 묵직한 후렴구로 마무리되는 비장하고 장엄한 희생정신을 독려한다. 다만 이 두 노래를 관통하는 것은 ‘이쁜이’와 ‘점이’라는 고향에 두고 온, 그러나 기약이 없는 젊은 여성의 모티브다. 이토록 국가 주도의 계몽적 노래에도 군대와 젊은 애인은 마치 필수적인 요소처럼 동행한다. 군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젊음의 성적 억압이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곳이기도 한 까닭이다.
따라서 군대를 담은 대중음악에 애국 충정으로 가득한 군인의 초상만이 존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970년대가 저무는 1979년 최백호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입영전야》는 거의 40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군대를 다룬 대중음악의 명곡이다. 이 노래가 발표 당시부터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군대와 군인을 교조적인 틀에 가두지 않고 입영을 하루 앞둔 평범한 젊은이들의 내면을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일상 속으로 불러냈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서 군인은 드디어 추상적인 영웅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개인이 된다.
군대 노래의 정점 찍은 《이등병의 편지》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공식적으로 발표됐던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공식적인 활동을 금지당했던 김민기는 자신이 군대 생활에서 만났던 늙은 하사관의 꿈을 소박한 선율과 강직한 리듬으로 담았는데, 이 노래 또한 유니폼에 갇힌 군인에게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인간을 끄집어낸다. 김민기가 탁월한 것은 바로 군가 스타일의 곡조를 의도적으로 채택하면서도 전혀 다른 뉘앙스를 창출해 냈다는 점이다.
이 두 노래처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78년 송창식의 《병사의 향수》 또한 놓칠 수 없다. 이 노래의 의미는 의무적으로 음반에 수록해야 하는 군가 대신에 스스로 군가를 만들어서 녹음했다는 점이다. 선동적인 군가와는 달리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젊은 병사를 창조한 송창식의 발상이 대단하다.
《입영전야》의 후속 사건은 1990년 윤상이 작곡하고 김민우가 부른 《입영열차 안에서》가 될 것이다. 엄청난 인기를 누린 이 군대 노래는 입영에 대한 신선하고 발랄한 감수성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노래는 신세대의 ‘입영전야’로서, 놀라운 사실은 당대의 여성 작사가 박주연이 가사를 썼다는 것이다.
‘X세대’라고 부르게 되는 새로운 감성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은 듯이 보였지만 김광석이 불러 군대 노래의 정점을 찍은 《이등병의 편지》가 1993년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1970년대 통기타 문화의 낭만주의는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이 노래를 만든 김현성은 접경지대인 문산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통기타 뮤지션으로, 그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에 해당하는 1970년대 포크음악의 어법으로 새로운 세대 청중의 지지를 열광적으로 이끌어내었다. 그의 접근은 진지했지만 무겁지 않았고, 서정적이되 자아도취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의 세대 입영 노래들이 애인이나 부모들을 동반할 때 그는 고향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노래를 김광석이 부르지 않았다면 그토록 열렬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이르게 다가온 스산한 가을, 문득 김광석의 목소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