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증시 10월 들어 급락 움직임…하락세 길어지면 ‘녹인’ 우려도
하락장의 공포가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를 엄습하고 있다. 10월 들어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투자 원금 손실이나 장기간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까닭이다. 다수 ELS는 아직까지 녹인(Knock-In·손실 구간)에 접어들진 않았다. 문제는 글로벌 증시의 하락세가 쉽사리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에 있다. 증시 하락의 기폭제가 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미국의 정책금리 상승도 글로벌 증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증시 하락이 더 깊어질 경우 ELS뿐만 아니라 국내외 증시 주요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하고 있는 하이브리드형 파생결합증권(DLS), 기타파생결합사채(DLB) 등 파생결합상품들까지 기대 수익률이 내려갈 수 있다고 진단한다.
증시 급락에 ELS 투자손실 우려 확대
ELS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와 연계해 수익률이 정해지는 파생결합증권이다. 일반적으로 연계된 주가나 지수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수익을 거둘 수 있어 박스권에서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상품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연계된 지수가 기준치 밑으로 내려가면 손실이 나 만기까지 자금이 묶이는 위험도 존재한다. 최근 코스피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 급락이 ELS 투자자들에게 더 큰 공포로 느껴지는 이유다.
예컨대 코스피200 지수와 연계된 한 ELS는 3년 만기평가가격이 최초기준가격의 65% 밑으로 내려가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조기 상환 조건도 있는데, 조기 상환 가격이 최초기준가격의 95%를 넘어서면 4개월 만에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 90%인 경우 8, 12개월 조기 상환이 가능하고 88%(16개월), 85%(20, 24개월), 80%(28개월), 75%(32개월) 순이다. 만일 올해 6월 초순에 이 상품에 가입했다면 4개월 조기 상환이 불가능하다. 코스피200지수가 6월 초순 315선에서 이달 초순 275선으로 12% 넘게 내려 조기상환평가가격 기준에 미달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지수가 추가적으로 하락해 204선 아래로 떨어지면 녹인에 진입하게 된다.
ELS는 올해 상반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가파르게 상승하던 국내외 증시가 올해 들어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흐름을 보이자 ELS 투자 수요가 늘어난 까닭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ELS 발행액은 48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5.1% 증가했다. 발행 형태별로 보면 지수형 ELS 발행액이 45조3000억원으로 94.1%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ELS였다.
하지만 국내 증시를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최근 크게 내리면서 상반기에 ELS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6월7일 종가 기준 2470.58이었던 코스피지수는 이달 들어 큰 폭으로 내리면서 11일에는 연중 최저치인 2129.67까지 내렸다. 9월 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S&P500, 나스닥 지수도 10월 들어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ELS 연계지수로 널리 활용하는 홍콩H지수도 상황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홍콩항셍지수는 ELS 상품에 널리 쓰이는 기초 지수로,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홍콩항셍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발행 규모는 34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발행된 전체 ELS의 70%를 넘는다. 그런데 올해 1월28일 종가가 1만3723.96이었던 홍콩항셍지수는 10월11일 1만90선까지 내려왔다. 홍콩H지수와 연계된 ELS는 2016년에도 홍콩항셍지수가 2015년 대비 50% 넘게 폭락한 영향에 대량 녹인을 경험한 바 있다.
실제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자 조건을 충족해 상환되는 ELS 규모가 줄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ELS 상환금액은 10조139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50.7% 감소했다. 이 중 조기 상환된 ELS 규모는 8조327억원으로 전체 상환금액의 79.2%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 3분기 조기 상환된 ELS 규모는 전 분기 대비 45.8% 줄어들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이를 두고 올해 들어 해외 주요 지수가 하락해 일부 ELS가 조기 상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조기 상환이 연기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10월 들어 지수가 더 내려간 것을 감안하면 상환되는 ELS 투자금액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증시 바닥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문제는 글로벌 증시의 하락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의 지수가 내린다면 녹인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 2016년 홍콩증시 대량 녹인 사태 이후 손실 구간을 대폭 낮추거나 하락장에서 일정 수익을 포기하는 리자드형 등 안정적인 ELS 상품들이 많이 나왔다. 현재 글로벌 증시 수준에서는 대규모 녹인 사태가 일어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만일 장기간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투자원금 손실이나 오랜 기간 자금이 묶이는 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도 최근 상황을 비춰보면 향후 증시 흐름은 녹록지 않다고 분석한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글로벌 증시 하락 움직임은 미국 정책금리 이후에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생긴 부담과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부분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이는 미국과 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센티멘털(투자심리) 문제가 아닌 펀더멘털(기초여건) 문제로 봐야 한다. 센티멘털 이슈였다면 한두 번 고비만 넘어가면 회복되지만 펀더멘털 이슈는 그렇지 않아 보수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