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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살인극 벌어지기도…이웃 간 배려와 이해로 해결해야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객지에 흩어져 있던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이다.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대가족이 모이다 보니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단독주택은 상관없지만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다가구가 사는 곳은 아래층이나 위층 또는 옆집을 신경 써야 한다. 명절 때마다 층간소음 때문에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말다툼이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2013년 2월9일 설날 명절을 하루 앞두고 서울에서 끔찍한 살인극이 벌어졌다. 이날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씨(61) 집에 가족 7명이 모였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첫째 아들 부부와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 부부 그리고 3살 손자도 함께했다. 큰아들 내외는 결혼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신혼이었다.  
ⓒ 일러스트 김세중

  김씨 집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손자는 이따금 집 안을 뛰어다니며 재롱을 피웠다.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우며 명절 전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때 ‘뚜뚜’ 하며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여기 경비실인데요. 아래층에서 시끄럽다며 좀 조용히 해 달라고 연락 왔어요. 주의해 주세요.” 김씨는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아래층은 종종 경비실을 통해 층간소음을 항의해 왔다. 


김씨 집과 ‘위층’ ‘아래층’ 관계인 604호에는 박아무개씨(49) 자매가 살고 있었다. 언니 박씨에게는 2년 전부터 사귀고 있던 내연남 김아무개씨(45)가 있었다. 층간소음 갈등은 인터폰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경비실을 통해 민원을 넣었는데도 소음이 없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박씨는 씩씩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때 내연남 김씨도 따라갔다. 


위층 현관문 앞에 다다르자 김씨는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오른발로 문을 거칠게 두 번 찼다. 704호는 갑작스러운 ‘쿵’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김씨 둘째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 말다툼이 벌어졌다. 대화 의지를 상실하고 감정을 폭발시킨 두 사람. 김씨 가족과 서로 고성이 오가며 극한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한 10분 정도 거친 충돌이 이어졌다. 


형제의 어머니(52)는 어떻게든 싸움을 말려보려고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김씨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트렁크에 있던 회칼을 꺼내 허리 뒤춤에 숨겼다. 그는 7층으로 올라가 형제들을 불러내 아파트 화단으로 유인했다. 


김씨는 형제들과 재차 말싸움을 벌이다가 뒤춤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다. 형제들은 미처 방어할 사이도 없이 심장 등 급소를 찔려 모두 사망했다. 김씨는 곧바로 도주했지만 사건 발생 5일 만에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층간소음이 발단이 돼 단란했던 한 가족이 한순간에 완전히 파괴된 사례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뇨를 앓던 형제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사건 발생 19일 만에 사망했다. 형제의 어머니는 졸지에 아들 둘과 남편을 잃고 홀로 남았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비극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도 층간소음 갈등을 겪던 아래층 주민이 위층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일가족 6명이 명절 연휴를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다. 


지난 2월14일 광주광역시에서도 명절을 앞두고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 다툼이 벌어졌다. 아래층, 위층인 50대 여성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내려오다 층간소음으로 언쟁을 벌였고, 결국 서로 머리채를 잡는 등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쌍방폭행으로 입건됐다. 


명절 연휴기간은 다른 때에 비해 층간소음 발생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기간 동안에 층간소음 민원이 40% 가까이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자료: 잡코리아)

 

명절 연휴 소음 관련 민원 40% 증가


2015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실시한 ‘층간소음’ 관련 설문조사를 보면, 평소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설문은 20대 이상 성인 남녀 157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층간소음을 겪어봤다’고 답한 응답자가 91.7%에 달했다. 


또 ‘가장 참기 힘든 층간소음’(복수)은 ‘뛰는 소리’(50.1%)였으며, 이 중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발걸음 소리’(36.2%), ‘가구 끄는 소리’(29.5%),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23.5%), ‘싸우는 소리’(19.1%), ‘말소리’(15.9%), ‘문 여닫는 소리’(10.2%) 등이 뒤를 이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현재 층간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라고 묻자 ‘매우 그렇다’(19.8%)와 ‘그렇다’(29.7%)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 정도인 49.5%로 나타났다. 10명 중 5명은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셈이다. 또 ‘층간소음 때문에 항의를 해 봤다’(51.5%)는 응답자가 ‘항의를 받아봤다’(30.7%)는 응답자보다 더 많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나 다가구주택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가족들은 층간소음 걱정이 앞선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웃에게 폐를 끼칠까 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층간소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층간소음이 발생할 경우 ‘대면항의’나 ‘보복소음’은 금물이다. 대면항의는 감정싸움으로 치달아 이웃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보복소음 행위도 이웃 간의 갈등을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소음이 난다고 해서 천장을 치거나 의도적으로 소음을 일으키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요즘에는 보복소음을 내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복소음 방법으로 ‘우퍼 스피커 틀기’가 떠돌고 있다.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쿵쾅쿵쾅’ 소리가 전달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뿐이다. 


서울시는 층간소음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웃에 직접 항의하기보다는 관리사무소(층간소음관리위원회) 등 제3자의 중재를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시는 ‘공동주거시설 층간소음 관리 조례’에 따라 전문가 22명으로 구성된 ‘층간소음 갈등해결지원단’을 운영 중이다. 층간소음상담실은 이웃 간 분쟁에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갈등을 중재한다. 


요즘 새로 짓는 건물에는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공법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도 층간소음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이웃 간의 예의’를 강조한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을 막기 위해서는 이웃 간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감정을 앞세우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 갈등만 더 키울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가족·친척모임 등을 미리 이웃에게 알리고 양해 구하기, 가족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에 매트나 카펫 깔기, 방문·현관문 등을 ‘쾅쾅’ 닫지 않기, 집을 비울 때 반려견은 다른 곳에 맡기기, 보복소음을 내지 않기 등이 있다. 


늦은 시간 아이들이 집 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자제시키는 등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실내에서 덧신·슬리퍼를 신거나 거실에 소음 방지 매트 등을 깔아 층간소음을 억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소음 방지 매트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 바닥 대비 30~50% 이상의 소음 감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사는 최아무개씨(48)도 명절이면 아래층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최씨는 집안의 장남으로 부모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명절이면 형제들과 가족들이 최씨 집으로 모인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이웃을 살해한 뒤 2013년 2월13일 수원시 영통구에서 검거된 김아무개씨가 서울 중랑경찰서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층간소음 갈등 대화로 해결


그가 사는 아파트 아래층에는 70대 노부부가 살고 있는데 상당히 예민한 성격이다. 평소 작은 소리에도 위층으로 올라와 수시로 인터폰을 눌렀다. 명절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평소보다 더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씨는 명절이면 층간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었다. 


그는 아래층과 계속 갈등하다가는 이웃과 원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화를 선택했다. 명절 연휴 하루 전에는 최씨 가족들이 아래층을 방문해 선물을 전해 주고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명절 연휴에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래층에서도 “알겠다”고 화답했다. 


최씨는 거실 공간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 충격과 소음을 완화시켰다. 아이들은 가급적 밖에서 뛰어놀도록 유도했다. 이런 노력 끝에 명절날 층간소음 갈등을 해결했다고 한다. 최씨는 지금도 매년 명절을 앞두고 아래층으로 가서 대화를 한다. 


그는 “처음 이사 와서는 층간소음 민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다행히 대화로 풀어가니 아래층에서도 웬만한 소음은 이해해 줬다. 지금은 이웃 간 사이도 아주 좋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명절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를 바꾼 사례도 있다.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박아무개씨(52)는 집안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박씨가 모시고 산다. 매년 명절이면 박씨 집에 형제들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박씨는 명절 때만 되면 아래층과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경비실에 민원을 넣는 바람에 온 가족이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다. 이로 인해 즐거워야 할 명절 분위기를 망치기 일쑤였다.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노력도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박씨의 둘째 동생이 명절 차례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경기도에 사는 그는 단독주택이어서 층간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도 여기에 동의해 지난해 추석부터는 둘째 동생 집에 가족이 모이고 있다. 명절 층간소음으로 다툴 소지는 사라졌지만 이웃 간에는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한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법적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층간소음 기준을 정해 이를 넘을 경우 피해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층간소음 배상액은 생활 소음 배상 수준을 고려해 정해지며 수인한도 초과 정도, 피해기간 등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소음 유발자가 관련 기준을 어긴 것으로 판정되면 환경부가 정한 층간소음 배상 기준에 따라 1인당 52만원에서 최대 114만9000원까지 배상금을 내야 한다. 온 가족이 모인 추석 명절을 더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이웃 간의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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