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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은행의 작은 컨설팅 이야기] 9회 - 기업경영의 통역사, 컨설턴트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공유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에 혼란이 발생한다 (이미지출처: SK hynix 블로그)

 

 

얼마전 대형마트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마트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문구코너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진열대에는 컬러 ‘중고 노트’가 있었는데, 그 물건을 보고 대형마트에서 왜 중고(中古) 물품을 파는지 한참을 의아해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중고 노트의 중고가 이미 사용했던 것을 의미하는 중고(中古)가 아니라 중·고등(中·高等)학교의 중고(中高)​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고’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판매자가 전달하려는 의미와 구매자인 필자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서 생긴 일인데 컨섵팅 업무를 하다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을 겪게 된다.

 

진열대에 있는 컬러중고노트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도와주는게 컨설팅의 역할

 

한 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착수하면 신입에서 최고경영자까지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생산에서 판매까지의 업무 전반을 살펴보게 된다. 지금까지의 컨설팅 경험을 돌이켜보면 같은 조직 내에서도 마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정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법학자는 justice를, 과학자는 definition을 먼저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간극에서 통역사로서의 컨설팅의 역할이 생겨난다.

필자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회사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은 사례로 《경영학 사용설명서》(김용진 저)라는 책에 나온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볼까 한다. 

 

저자가 임원으로 몸담았던 한 회사에서 겪었던 일인데,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아 직원 간 다른 의미로 전달된 사례이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예산’이라는 용어를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쓰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사업계획, 어떤 때는 경비계획, 또 어떤 때에는 매출과 손익의 목표를 의미했다. 이것은 '원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제조원가, 구매원가, 총비용 등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임원이든 실무진이든 지시를 받은 사람마다 같은 용어를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회사는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특히 퇴사율이 높은 오너기업의 경우 커뮤니케이션 단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퇴직의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너의 리더쉽에 대한 불만 혹은 부적응으로 퇴사를 하는 경우 퇴직직원은 경영진에게 퇴직사유를 곧이곧대로 알려주기 어렵다. 퇴직 후 동종 업계로 재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직하려는 회사의 경영진이 업계에서 영향력이 크거나 회사에 평판 조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건강이 좋지 않다든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다른 핑계를 댄다고 한다. 사실 직원이 계속 퇴사한다는 것은 회사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인데 퇴직직원들은 경영진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도 경영진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영진은 퇴사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어도 오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가 회사 구성원간의 일이라면, 회사 내부만을 바라보다가 고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당실이 컨설팅 했던 기계제작업체인 A사는 JIT를 표방하며 구매 및 재고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있었다. 재고자산의 감소, 영업이익률의 상승 등으로 회사 내부에서는 만족스럽게 효과를 평가하고 있었으나, 정작 고객에게 미치는 효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재고수준을 낮게 가져가는 부작용으로 납기가 지연되어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결국은 경쟁사로 고객이 이탈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A사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온전히 자신의 배경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청취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생계와 관련된 이해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 자리를 컨설팅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진에게는 직원의 언어를, 회사에게는 고객의 언어를 통역하여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는 통역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컨설팅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컨설팅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고, 컨설팅이 만능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3자의 시각에서 회사 전체 혹은 회사 내·외부의 의견을 청취하고 종합하여 정리하여 준다는 점에서 순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루빈의 잔(사진출처: 구글이미지)


 

컨설턴트는 늘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 이야기 경청해야​

 

위 그림은 덴마크 심리학자인 에드거 루빈에 의해 알려진 《루빈의 잔》이라는 그림이다. 검은 색에 초점을 맞추면 잔으로 보이고, 하얀 색에 초점을 맞추면 마주 보고 있는 사람 얼굴이 보인다. 잔만 보이는 사람은 얼굴이 보인다는 의견을 이해할 수 없고 얼굴만 보이는 사람은 잔이 보인다는 의견을 납득할 수 없다. 

 

통역사로서의 컨설팅은 각각의 언어를 통역하여 전체에 대한 그림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컨설턴트는 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고자질쟁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서로의 말을 여과 없이 통역하여 전하면 상대방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해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 경솔한 통역사가 되지 않도록 입을 무겁게 하고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것 역시 컨설턴트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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