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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얼마 전 고성에서부터 파주까지 우리나라 최전방 지역을 횡단하는 대장정을 다녀왔다. 강원도 양구는 그 여정 가운데 만난 작은 도시다. 양구와 인접해있는 고성, 인제, 화천, 춘천, 철원 모두 지역명물 한두 가지 정도는 금세 떠올릴 수 있었지만, 어쩐지 양구는 유독 생소했다. 양구에서 군 생활을 한 친구가 그곳에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모습의 거대한 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이었다. 한국전쟁 때의 한 외국 종군기자는 그 광경을 보고 화채그릇(punch bowl)을 연상해 ‘펀치볼’이란 별명을 지어 준 모양이었지만, 그런 귀여운 이름과는 달리 오늘의 양구는 북한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살벌하고도 외로운 군사지역이란 인상이 강했다.   때문에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을 찾은 것은 예기치 않게, 그리고 매우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양구의 비무장지대와 펀치볼 분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로 가던 중 ‘박수근미술관’이란 표지판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은 ‘양구에서 박수근미술관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다소 삐딱한 의구심이었다. 지자체에서 지역연고의 예술인들을 소재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만드는 일은 흔하게 벌어지지만, 작품세계에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고 또 전문적인 시설운영을 이루어내기란 꽤나 어려운 과제라 생각했다.  
양구군 해안면의 거대한 분지, '펀치볼'.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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