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배동신 화백의 수채화 작품 ‘소녀상’이 지난 26일 세계적인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eBay)에서 150만 달러(약 17억 원)에 낙찰됐다. 소녀상은 일본 오사카(大阪)에 소장돼 있는 작품으로 1호(13.4×21.4㎝) 규격이다. 이번 낙찰가를 미술작품의 크기 기준을 일컫는 ‘호’를 기준으로 따지면 국내 화가들의 작품 중 최고가라는 게 한국미술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내의 모습을 담은 ‘소녀상’
소녀상은 1954년에 배 화백이 처녀시절의 ‘아내’를 그린 작품이다. 배 화백은 아주 절제된 붓놀림으로 작은 도화지에 아내의 얼굴을 담았다. 소녀상은 배 화백의 재능을 남김없이 표현한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평가다. 배 화백의 아내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광주 사례지오여고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했었다. 배 화백이 급성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약 6개월간 병간호를 자청하면서 배 화백과 결혼하게 됐다. 이어 음악교사를 그만두고 피아노교습소를 운영하면서 배 화백이 그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세계적인 관심 끈 수채화
배 화백의 작품이 이베이를 통해 판매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 때문에 최근 배 화백의 작품들이 국내·외 미술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배 화백의 가족이 소장하고 있던 수채화 작품 ‘복숭아’는 2015년 7월에 이베이에서 일반 판매를 통해 약 18만 달러(약 2억 원)에 팔렸다. 또 2014년 10월에는 이베이의 경매를 통해 배 화백의 수채화 ‘누드’ 작품이 36만 달러(약 4억 원)에 낙찰됐다. 한국미술협회 관계자는 “배 화백의 작품이 세계적인 온라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잇따라 낙찰되고 있다”며 “배 화백의 작품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채화의 ‘1인자’
배 화백은 1943년에 카와바타(川端) 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한 후 줄곧 수채화만 그렸다. 배 화백은 평소 “물로 그리는 수채화는 담백하고 참신하며 투명하다”며 ‘채식’을 하는 동양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배 화백은 유화의 밑그림에 불과했던 수채화를 미술의 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특히 수채화 창작가협회와 한국수채화협회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수채화의 1인자로 평가받아 왔다. 대표작품은 ‘무등산’, ‘항구의 배’, ‘자화상’, ‘조선장’, ‘목포항구’, ‘여인-인물’ 시리즈 등이다. 주요 작품은 도쿄(東京) 우네노 미술관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