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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미국 현지 인터뷰… “선수로 뛸 날 많이 남지 않아, 남은 시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35)가 느끼는 2017년의 가을은 낯섦으로 다가온다. 지난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던 그로서는 올 시즌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 티켓 확보에 실패함으로써 정규시즌 종료와 함께 한 시즌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TV를 통해 포스트시즌 경기를 볼 때마다 자신도 그 속으로 들어가 야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추신수. TV 속 치열한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닌 ‘보는 것’으로 끝내는 게 익숙지 않은 그다.

 

추신수는 타율 0.261, 22홈런, 78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8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홈런 타이를 기록했고, 부상 없이 149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목표 달성은 이룬 셈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추신수를 미국 댈러스에서 만났다.

  
추신수가 9월22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 경기에 출전했다. 이날 추신수는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큼지막한 홈런을 날렸다. © 이영미 제공



“다른 팀 포스트시즌 경기 지켜보는 게 어색”

 

지난 10월초,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인타운에서 만난 추신수는 야구선수가 아닌 남편, 아빠의 자리로 돌아가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등·하교를 돕고, 아내와 마트에서 장보기를 하고, 주말이면 두 아들의 스포츠 활동을 응원하고 참여하면서 가장으로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남편의 야구 시즌이 끝나면 아내는 오프시즌을 ‘선물’처럼 받게 된다. 아내 하원미씨는 남편의 부재 시 혼자 감당했을 모든 일들을 남편과 공유하면서 온전한 기쁨을 만끽했다. 때마침 추신수를 만난 장소가 미용실이었다. 아내가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방문했고, 추신수도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데려다준 다음 이곳을 찾은 것이다. 미용실에서 마주한 추신수와 기자. 그는 시즌을 마친 소감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을야구’를 경험한 건 세 차례였다. 신시내티 레즈 시절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을 때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을 때다. 포스트시즌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 때는 시즌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지금은 오히려 다른 팀들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지켜보는 게 어색하다. 솔직히 재미없다. 다른 팀 경기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평소 승부욕이 강하다고 소문난 추신수로선 당연한 ‘느낌표’였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는 매우 솔직하게 다가왔다. 시즌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다른 팀 경기를 집중해서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추신수는 시즌 목표를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하거나 시즌 중 부상자 명단에 오른 경험이 있던 그로선 가장 간절했고 절실했던 목표였다.

 

“어느 시즌보다 몸 관리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시즌 치르다 보면 크고 작은 부상이 있기 마련인데 약간의 이상 증세만 보여도 트레이너실을 찾았고 치료를 받았다. 야구를 하면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몸 관리를 했던 적이 없었다. 아파도 참았고, 힘들어도 경기에 나갔다. 162경기를 치르다 보면 그 정도의 부상은 누구나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올 시즌은 그런 점에서 이전 시즌과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추신수는 목표대로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2년 연속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던 팀이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지구 우승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내줬고, 1등을 하지 못한 내셔널리그의 다른 지구 팀들과 치열하게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티켓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시즌 막판까지 시소게임을 벌이며 전쟁 같았던 승부를 펼쳤던 그들. 결국 시즌 종료 5게임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가을야구’가 무산되고 말았다.

 

“와일드카드에 진출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9월27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와일드카드 진출 탈락이 확정되고 나니 시즌 내내 나를 옥죄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하더라.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고 몸 여기저기서 아우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구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감독에게 남은 경기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감독과 면담 끝에 9월30일 오클랜드와의 경기를 시즌 마지막 경기로 정했는데 그 경기에서 시즌 22호 홈런이 터졌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경기는 10월2일까지 계속됐지만 추신수는 남은 2경기에서 제외됐다. 일부 팬들은 추신수가 22호 홈런을 터트린 다음 날 경기부터 나오지 않은 배경을 두고 제프 배니스터 감독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전에도 추신수가 좋은 성적을 올린 다음 경기에서 추신수를 제외시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추신수는 감독과 사전에 약속된 부분이었다고 강조했다.

 

“시즌 마지막 출전 경기에서 홈런이 나왔다고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남은 경기는 비주전 선수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기 때문에 더 뛸 수도 없었다. 시즌 최종전에는 주전들이 대거 제외됐었다. 감독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날 배제시킨 건 절대 아니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추신수와 배니스터 감독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추신수는 ‘감독 복’이 많은 편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만났던 매니 액터 감독(현재 시애틀 매리너스 코치. 2016년 시애틀에 입단한 이대호와도 인연을 맺었다), 신시내티 레즈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이후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을 맡다가 최근 해임됐다),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처음 만났던 론 워싱턴 감독(현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코치) 등 모든 감독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중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 경기차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마음을 담은 선물을 건넸을 정도다.

 

추신수가 9월29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 라이프 파크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경기에서 투런포를 터트리고 있다. © AP연합


 

평소 감독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보여온 추신수지만 론 워싱턴 감독 후임으로 온 제프 배니스터 감독과는 썩 매끄러운 관계를 보이지 못했다. 급기야 두 사람은 2015년 6월 오클랜드 원정 경기에서 4대5 역전패를 당한 후 추신수의 송구 문제를 놓고 감독과 선수가 공개적으로 충돌을 빚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론은 당시 초보 감독이었던 배니스터에게 화살을 돌렸다. 경기 결과를 놓고 선수에게 책임을 지우는 게 감독으로선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배니스터 감독 “텍사스 오기 전부터 추신수 팬”

 

이후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와의 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다음 내용은 지난 3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있었던 기자와 배니스터 감독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분이다. 배니스터 감독은 기자에게 한국의 일부 팬들이 자신과 추신수의 관계를 오해하는 것 같다며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난 추신수를 많이 좋아한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텍사스 감독으로 오기 전부터 추신수의 팬이었다. 추신수가 신시내티에서 뛰고 있을 때부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는 그때도 좋은 선수였고 지금도 좋은 선수다. 난 감독으로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컨트롤할 수가 없다. 추신수는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 작년엔 부상 때문에 그가 참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내색하지 않고 잘 극복했고, 포스트시즌에 출전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선수로서의 됨됨이를 인정해야 한다. 재능이 많은 추신수가 올 시즌 건강한 모습으로 야구하길 바라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스프링캠프 동안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추신수의 제안으로 이뤄진 시간이었다. 평상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는 추신수는 일부러 통역을 대동하고 감독을 만났는데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어로 대화하듯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에게 지명타자로 활용하려는 배경과 팀을 위해 추신수가 해 주길 바라는 부분 등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전달했다. 추신수도 그동안 담아둔 마음을 표현했고 팀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건넸다. 그러나 승과 패로만 귀결되는 시즌을 치르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오해와 이해가 교체하기 마련이다. 추신수의 얘기가 이어진다.

 

“선수라면 누구나 매일 경기에 뛰고 싶은 마음이다. 내 몸이 부상도 없고 건강한데 경기에 나가지 못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즌 치르며 약간의 불편한 마음은 있었다. 수비를 하지 않고 지명타자로 나서는 게 익숙지 않았고, 타석에서도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후반기에는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매 경기 수비에 나섰고 타석에서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상대 투수의 공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젠 그 모든 일들이 과거였을 뿐이다. 난 목표대로 건강한 몸으로 시즌을 마쳤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일들을 놓고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베테랑 선수라도 변화 추구 않으면 도태”

 

2013년 12월, 1억3000만 달러의 FA 계약을 성사시켰던 추신수한테 유독 돈과 관련된 비난 댓글이 많이 달린다. 대표적인 단어는‘먹튀’. 성적이 좋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팬들이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비난의 수위를 높이며 추신수를 공격할 때가 많았다. 추신수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시즌 들어가면 기사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꼭 읽어야 하는 기사도 글만 읽고 댓글은 안 본다. 이전에는 댓글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이후부터 일부러 댓글을 안 본다. 그런 댓글을 다는 사람은 경기 하나, 안타 한 개로 날 평가하지만 팀에선, 메이저리그에선 내 커리어 전체를 보고 평가하기 때문에 댓글에 마음 쓰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한국 KBO리그에서 뛰지 않아 악플이 많은 건가?’ 하고. KBO리그를 경험하고 미국에 온 선수들한테는 응원 메시지도 많던데 나한테는 유독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부분이 이해가 안 된 면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지 않겠나. 난 내 길을 계속 걸어가면 된다. 자주 뒤돌아볼 필요도 없다. 앞으로 내가 선수로 뛸 날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더 (야구를) 잘하고 싶고,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을 뿐이다. 요즘엔 야구에 대한 욕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추신수는 시즌 종료 후 얼마 안 있어 LA로 향했다. 시즌 중 한 차례 영상통화를 하며 인연을 맺었던 덕 래타 코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래타 코치는 LA 다저스 저스틴 터너의 개인 코치로 유명하다. 레그킥(타격 시 다리를 살짝 들었다가 내려놓는 자세) 타격법의 고수로 알려진 래타 코치는 LA 인근에 마련한 자신의 타격 훈련장에서 일반인들을 가르치며 겨울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직접 레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래타 코치의 타격폼에 관심이 많았던 추신수는 10월초 LA를 방문했고, 래타 코치의 훈련장에서 2시간가량 타격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래타 코치는 추신수가 타격할 때 몸의 중심이 뒤로 가는 바람에 방망이에 힘이 쏠리지 않는 부분을 지적했고,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타격 폼 수정을 진행했다고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야구 했던 날보다 야구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은 고쳐 가면서 보완하고 싶었다. 시즌 마치자마자 래타 코치를 찾아간 것도 그런 마음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야구가 안 될 때마다 찾는 분이 있었다. 바로 돌아가신 부산고 조성옥 감독님이다. 방망이가 안 맞을 때면 한국의 조성옥 감독님께 전화를 걸어 상의드렸고, 그때마다 감독님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 감독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어느 누구하고도 타격폼과 관련해 상담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 팀 타격 코치가 있긴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래타 코치를 찾은 건 새로운 ‘조성옥 감독님’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자상하고 훌륭한 인품을 갖고 계신 분이더라. 겨울에 시간이 되면 몇 차례 더 만날 예정이다. 수정된 타격 폼을 갖고 많은 연습을 해 보고 싶다. 아무리 베테랑 선수라 해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한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마친 추신수는 새로운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올 시즌은 몸 관리에 집중했다면 내년부턴 야구를 더 잘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보겠다는 각오였다. 그 각오가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졌다. 사람 사는 얘기나 나누자고 해서 만났던 자리가 결국엔 야구 얘기로 끝이 났다. 시즌 마치고 이토록 독기 품으며 야구 얘기를 하는 선수를 만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추신수의 2017 시즌은 끝났지만 그의 마음속은 벌써부터 2018 시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추신수. 그 마음가짐이 그를 자극하고 오기를 갖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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