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년 6월 개헌에 집중하겠다” 밝힌 정세균 국회의장
정세균 국회의장은 9박11일간의 러시아·폴란드·슬로바키아 방문을 마치고 10월21일 귀국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137차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선 대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이틀 뒤인 10월23일 오후 국회 국회의장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났다. 정 의장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아직 여독이 안 풀린 것 같다”고 했다. 정 의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빚어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기도 했다. 당시를 회고하며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고 고백한 바 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의장은 개헌필요성과 추진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국회 국정감사 등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개헌 이슈를 “11월부터 확 띄울 것”이라고도 했다. 전국을 돌며 헌법 개정 국민대토론회 등에서 개헌을 설파하고 있는 정 의장.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는 그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심사가 지연되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이) 할 일은 안 하면서 정쟁만 하면 직무유기”라고 질타할 땐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의원들의 법안 성적표도 정기국회 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밀린 숙제들을 해결한 의장이 되고 싶다”는 정 의장은 “앞으로 개헌에 좀 더 집중하는 게 내 책무”라고 밝혔다.
국제의회연맹 총회 참석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오셨는데.
“이번에 러시아에 가 보니 아무래도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 사람들도 우리를 달리 봤고 러시아도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우해 줬다. 볼로딘 러시아 하원의장과 앞으로 정례적으로 양국 의회 간 협의 채널을 만들자고 공동 선언하기도 했다. 난 평창동계올림픽에 오라고 했다. 러시아 의회 지도자들도 올 것이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대통령도 오기로 했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국이기 때문에 한·미 동맹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변도로는 부족하다. 중국, 러시아, 일본, 다른 유럽 국가들과도 외교적으로 잘해 나가야 한다. 미국 하나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된다.”
러시아 국영 타스(TASS)통신에 따르면, 국제의회연맹 총회가 열리던 10월15일 안동춘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의장연설 직전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보도했다. 북한 대표단 행동이 명백히 고의적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그냥 황색 저널리즘일 뿐이다. 내가 거기서 남북문제에 대해 심하게 얘기한 것도 없다. 내가 점심 식사 시간에 임박해 대표연설을 하게 돼 (북한 대표단이) 점심 먹으러 나갔겠지. 우리 대표단하고 (북한 대표단하고)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나갔는지 어땠는지 몰랐다. 참여 국가가 160여 개국이고 국회의장만 100여 명이었다. 그 사람들이 다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몰랐다.”
북한 대표단과는 접촉하지 않았나.
“나는 지나치지도 않았다. 송영길 의원이 지나치면서 악수했다고 하더라.”
북한 핵·미사일 실험으로 한반도 정세가 상당히 불안하다.
“유엔을 중심으로 대북제재를 세게 해야 한다. 제재는 강력하게 하되 결국은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대화를 안 하고 어떻게 비핵화가 되겠나.”
북한에선 우리와는 대화하지 않고 미국과만 대화하겠다고 하지 않나.
“그 사람들이야 그렇게 얘기해야지. 그 사람들은 (감정이) 쌓였겠지.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어떤 경우에도 폐쇄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몇 달 후 일방적으로 문 닫아버리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가 당사자니까 다자(多者) 미팅에 끌어내든, 양자로 하든 소통 채널이 있어야 한다. 지금 남북 간 핫라인도 끊긴 상태 아닌가. 이건 최악의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제재와 대화 병행’에서 ‘제재와 압박’으로 강하게 바뀌었다. 북측도 헷갈릴 수 있지 않나.
“북한 자기들이 한 걸 생각해야지. (한국의)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자제한다고 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도 자제했다면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게 상대적이지 않나. 우리 정부도 국민들이 보고 있는데, 북한이 너무 지나치게 하면 강공으로 나가야지.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선언 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하고, 한·미 연합훈련 레벨(수준)도 낮추지 않았나. 이 정도 좋은 제스처를 보내면 저쪽에서도 호응을 해야한다. 그런데 북한 전략이 ‘일단 (핵과 미사일) 개발해 놓고 그걸 쥐고 (협상)하자’는 게 아닌가. 그러면 곤란하다. 그 전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핵 폐기, 아니면 동결이라도 빨리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어떻게 보고 있나.
“평년 수준이라고 본다. 이번 국감은 지난 (박근혜) 정부를 대상으로 절반, 이번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절반, 이렇게 감사하고 있다. 갑자기 공수(攻守)가 바뀌어서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행은 잘되고 있다고 본다. 내가 ‘국회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 하면서 증인실명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증인 출석 문제도 조금은 합리화됐다고 본다. 증인을 불러놓고 내내 앉혀놓기만 하고, 질문도 하지 않고 그래서야 되겠나. 그래서 내가 사후보고서에 어느 의원이 누구를 불렀고 무슨 질문을 했는지 쓰도록 만들었다. 그래야 증인을 불러놓고 질문 안 한 의원들이 낯 뜨겁지 않겠나. 그래선지 실제로 증인 숫자가 줄었다고 하더라.”
이번 국감은 큰 틀에서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진행됐다.
“국정감사는 결국 과거지사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민생 중심으로 하는 거지만, 법을 어기고 잘못된 게 있으면 따지는 게 국감이다. 예를 들어 그게 과거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해서 그걸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잘못된 것 당연히 따져야 한다. 다만 여권이 그걸 하더라도 정치보복 냄새가 나지 않도록 잘해야 한다.”
국감에서 따져야 할 대상이 박근혜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넓혀지다 보니 정치보복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나야 뭐 무소속이니까(웃음). 지금 여당에선 ‘과거 다 너희들 정권 아니냐’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다. 적폐는 1년 만에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나. 예를 들어 MB(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것을 정권이 재창출되면서 박근혜 정권이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 측면이 있다면, 국민 관점에서 안 따질 수 없는 것이다. MB 정권에서 쌓인 적폐는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 와서라도 문제를 따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국민 관점에서 너무 실망스럽지 않게 적정한 수준에서 해야지. (여당은) 진짜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싶으면 이런저런 눈치 보지 말고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소한 것은 넘어가기도 해야 한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정치인들이 말을 좀 안 바꿨으면 좋겠다. 개헌을 언제 하겠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 개헌은 어느 정권, 어느 정치집단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하는 거다. 우리가 대선 때 개헌에 대해 입장을 내놔라 했을 때 대통령 후보 몇 분은 직접 오기도 했고 몇 분은 서면으로 냈다. 그러면 그 약속을 지켜야지, 다른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치권은 내년 지방선거 체제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개헌 이슈가 또다시 묻힐 수도 있는데.
“사실 개헌 논의는 충분히 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합의할 수 있다. 하루 이틀 된 얘기도 아니다. 국회 개헌특위만 해도 금년 1월에 만들어졌다. 또 개헌 논의가 시작된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금년에 특위하고 거기 자문위원회 만들어서 충분히 논의했다. 이제 입장 정리만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 당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백년대계를 위해 대승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눈앞의 이해관계를 따질 일이 아니다. 어느 특정 정파가 자기 원하는 대로만 하겠다고 고집하는 건 개헌을 방해하는 거다.이번 개헌은 정파 간 합의가 돼야 한다. 합의를 하려면 자기가 주장하는 개헌안에 대해 일부 양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난 아직도 개헌이 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우선 국민 70% 이상이 찬성하고 있고, 의원 9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개헌에 대한 로드맵을 설명해 달라.
“내년 3월까지 합의안을 만들고 개헌특위에서 통과시켜 5월 국회 거쳐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여전히 유효한 스케줄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을 돌며 국민대토론회도 하고 11월엔 국민을 상대로 개헌에 대한 캠페인 광고도 내보낼 것이다. 주최는 국회 개헌특위다. 11월부터 개헌 분위기를 확 띄우는 작업을 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회의장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국가적으로 큰 위기였다. 대통령 유고 사태가 지속되고 국민 갈등도 있었고 조기 대선도 치렀다. 그래도 국회가 중심을 잡고 탄핵을 질서정연하게 잘 처리했다. 그래서인지 세계 많은 나라들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면 다들 우리를 높게 평가한다. 지난번 독일 의장을 만났는데 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가 그렇게까지 성숙했나’라고 하더라. 우리 대통령도 G20(주요 20개국 모임) 같은 데 가면 대접을 받는다.”
국회의장으로서 자부심을 느낀 일은 무엇이었나.
“지난해 국가 위기 때 그래도 중심을 잡아준 게 국회였다. 자부심을 느낀다. 증인실명제 도입도 그렇고 방탄 국회를 없애는 등 ‘국회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가동한 점, 국회 청소부 정규직화한 일 등 짧은 기간이지만 변화를 만들려고 나름 노력했다. 특히 누리과정 예산 갈등도 국회에서 정리하지 않았나. 국회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 눈치만 보고 야당은 제 고집만 부리고, 그래 갖곤 국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도 국회가 좀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달라졌는데 국민들께선 별로 인식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웃음).”
의장께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심사 지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얼마나 심각한가.
“이번 20대 국회 들어와 전체 발의된 법안이 아마 만 건 가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처리된 게 4분의 1도 안 된다. 지금 계류돼 있는 게 7500여 건이다. 그래서 내가 상임위원회별로 성적표를 냈다. 9월말엔 의원들한테만 성적표를 공개했는데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언론에 공개할까 한다. 정쟁을 하더라도 발의된 법을 성실히 심사하고 국회가 제때에 결정해 줘야 한다. 국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국민들 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할일은 안 하면서 정쟁만 하면 직무유기다.”
국민들의 정치권 불신은 여전하다.
“국민들 보시기에 정쟁이 심하고, 아직도 부패의 고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충분히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하다. 내가 20대 국회의장 되면서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표방했는데 국민들 보시기엔 짐이 되고 있다. 힘이 돼야 국민께서 신뢰하지. 사실 검찰이나 법원, 장관 등과 달리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것 아니냐. 그러면 더 신뢰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런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정치권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께서도 시시비비를 잘 가려서 정치가 제 역할을 할 때 격려도 해 주셨으면 한다.”
훗날 어떤 국회의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냥 자리를 지킨 의장이 아니라 성과를 낸 의장으로 평가받고 싶다. 의장이라는 자리가 그냥 편하게 지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일을 챙겨서 열심히 하다 보면 과거부터 쭉 밀려온 숙제를 정리할 수도 있다. 밀린 숙제들을 해결한 의장이 되고 싶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가장 근본적인 숙제를 해결한 것이고 개헌 역시 중요한 과제다. 앞으로 개헌에 좀 더 집중하는 게 내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