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생생토크] 어깨 부상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LA 다저스 류현진 “올 시즌 성적 충분히 만족한다”
“팀이 내 몸을, 내 팔을 믿어줬다”
10월10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의 원정 클럽하우스 안. 이날 다저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단은 정규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디비전시리즈, 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마다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세리머니를 펼친다. 샴페인과 맥주를 뿌리고 마시며 신나게 놀고 즐기는 그들만의 문화인데 이 장면은 기자들한테 그대로 공개된다. 팀 우승 세리머니에는 25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뿐만 아니라 선수단과 동행하는 모든 선수들, 스태프들이 다 참여한다. 류현진도 당연히 그들 무리 속에 뒤섞여 흥을 냈지만 선입견 때문인지 류현진의 모습이 그리 신나 보이진 않았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고 오기 충만한 그가 건강한 몸 상태임에도 로스터에서 제외된 부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류현진의 야구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그는 개막 로스터 합류조차 불투명했다. 시범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호투를 펼쳤지만 두터운 선발 자원들로 인해 류현진이 개막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류현진을 비롯해 브랜든 맥카시, 알렉스 우드가 선발 로테이션 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류현진은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류현진은 스프링캠프 때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길 원했다. 재활군에 속해 따로 훈련하는 걸 극도로 꺼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지난 겨울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고, 몸을 만든 후 캠프에 들어간 그였다. 4월8일은 류현진이 3년 만에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돼 시즌 첫 등판을 소화한 날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콜로라도 로키스 홈구장인 쿠어스필드였다. 류현진은 “나만 쿠어스필드에서 던지는 게 아니라 상대팀 투수도 쿠어스필드에서 던진다. 즉 모든 선수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경기를 펼치는 터라 환경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첫 등판에서 류현진은 4⅔이닝 1볼넷 6피안타(1피홈런) 2실점 5탈삼진의 기록을 남기고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당시 류현진은 목표로 했던 5이닝을 채우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다저스의 릭 허니컷 투수코치는 류현진이 건강한 모습으로 투구한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시범경기 내내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안정감이 느껴졌다. 구속이 확 오르진 않았어도 제구가 되면서 타자를 유리하게 상대해 나갔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범경기에선 5이닝까지 마운드를 지킬 수 있었다. 시범경기 네 번째 선발 등판 상대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버츠 감독은 선발 로테이션에 대해 확신을 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경기를 마치고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애리조나 캠프에 남지 않고 LA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더라. 그때가 올 시즌 전체를 떠올렸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인 것 같다. 팀이 내 몸을, 내 팔을 믿어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973일 만의 첫 승…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
5월1일 류현진은 시즌 다섯 번째 등판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였는데 5⅓이닝 동안 93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 2볼넷, 삼진 9개를 잡아낸 후 팀이 2대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날 다저스는 3점 홈런을 보태 5대3 승리를 거뒀고, 류현진은 2년8개월(973일) 만에 첫 승을 거뒀다. 류현진은 이 경기를 떠올리며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표현했다.류현진은 올 시즌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5월2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경기를 떠올렸다. 이 경기에서 선보인 불펜 등판 경험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가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6회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다저스 구단은 류현진을 롱 릴리버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었다. 물론 선수는 강하게 반발했다.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를 통해 불펜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다저스 구단은 넘쳐나는 선발 자원 중 류현진을 한시적으로 불펜에서 활용해 볼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선발이 아닌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류현진의 모습은 생경스러웠다. 그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6회초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9회까지 4이닝 2피안타 2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면 류현진도, 팀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류현진은 비록 이날 첫 세이브를 올렸지만 선발로 돌아갈 거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973일 만의 첫 승이라기보단 973일 만에 류현진이라는 선수가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야구를 다시 시작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수술 후 첫 승을 거두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왔는데 막상 그걸 이루고 보니 조금 허무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보단 가족들, 특히 부모님이 더 좋아하시더라. 재활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은데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응원해 주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더 야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선발로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불펜으로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선발로 돌아갈 거란 믿음이 있었다. 불펜행 자체는 실망스럽고 안타까웠지만 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준비하려 했었다.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 달성이란 의미보다 다시는 불펜으로 등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
루틴을 중요시하는 선발투수들이 불펜으로 내려가면 몸을 푸는 방법부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중간에 몸을 푼다고 해서 바로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경기 상황에 따라 등판 시기가 조절되기 때문에 타이밍 맞추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다. 류현진은 “워밍업 단계부터 달랐기 때문에 정말 낯설고 어려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경기 후 인터뷰를 가졌던 류현진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애써 담담한 척,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 “오늘 내 모습이 (오)승환이 형 같지 않았어요?”라고 말한 뒤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그. 류현진은 자신의 첫 세이브를 마침 ‘돌부처’ 오승환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뤄냈기 때문에 인터뷰 중 오승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다행이라면 류현진의 불펜행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것. 첫 세이브를 올리고 곧장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한 그는 이전보다 더 철저히, 그리고 더 세부적으로 상대 타자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등판을 준비했다. 후반기 들어 류현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커터의 재발견이었다. 허니컷 투수코치의 정밀분석 자료들과 함께 우타자를 상대할 때 좀 더 효과적인 구종(球種)을 찾기 위해 공부하던 중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댈러스 카이클이란 투수의 커터를 보고 그걸 따라 했다. 댈러스 카이클은 구속보다는 제구(制球)를 앞세우는 휴스턴의 에이스다.“사실 구단의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나를 위해선 던지고 싶지 않았지만 팀을 위해서, 팀의 승리를 위해서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선발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렸던 부분도 있었다.”
8월7일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에서 열린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이날 7이닝 1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의 눈부신 호투를 선보이며 다저스의 8대0 승리를 이끌었다. 50일 만에 4승째를 거둔 류현진은 방어율도 3.83에서 3.53까지 대폭 낮췄다. 류현진은 이날 호투의 비결로 바꾼 그립을 꼽았고, 야구 전문가들은 짧은 시간 동안 그립을 바꿔 성공한 류현진의 영민함에 찬사를 보냈다. 야구 감각만큼은 타고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시즌 내내 마에다 겐타, 알렉스 우드 등과 함께 선발 경쟁을 치렀다. 그는 “매 경기를 시험 치르는 것처럼 던지는 것 같다”면서 “지금 다저스 투수들은 누가 끝까지 잘 버티는지 경쟁 중”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시즌 후반기에 합류한 다르빗슈 유의 존재는 류현진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었다. 당시 류현진은 “다르빗슈가 와서 불안해진 게 아니라 지금은 어떤 투수가 와도 다 불안하다. 지금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한 바 있다.“카이클의 투구 영상을 허니컷 코치의 권유로 보게 됐는데 영상을 보면서 그가 던지는 투구 폼이 내가 찾는 방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클의 투구 폼대로 연습을 거듭하다가 실전에서 사용해 보니 한두 번씩 각이 커질 때가 있더라. 그걸 보완하려고 방법을 찾던 중 허니컷 코치가 그립을 바꿔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코치의 조언대로 살짝 그립을 바꿔보니 좋은 커터가 나왔다. 8월 뉴욕 메츠전에선 그립을 바꾼 커터의 도움을 톡톡히 봤다.”
“넘기 힘들 줄 알았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에피소드 한 가지. 추신수가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다르빗슈 유는 원정경기에서 류현진과 따로 식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다르빗슈는 추신수와 관련된 여러 가지 얘기를 꺼냈고, 추신수의 아내가 담가준 김치 맛을 자랑하면서 그 맛을 잊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다르빗슈가 신수 형 얘기만 계속했다”며 인간적으로 다가온 다르빗슈를 떠올리기도 했다. 9월30일 류현진은 또다시 쿠어스필드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첫 등판도 쿠어스필드였는데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도 그곳이었다. 불안한 기운은 현실로 나타났다. 류현진은 2이닝 6피안타(3피홈런) 1볼넷 5실점을 기록하고 3회초 대타로 교체됐다. 이 경기 전 올 시즌 쿠어스필드 2경기에 등판했던 그는 4⅔이닝 6피안타(1피홈런) 1볼넷 5탈삼진 2실점(4월8일), 4이닝 8피안타 6볼넷 1사구 4탈삼진 10실점(5자책·5월12일)으로 최악의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올 시즌만큼은 류현진과 쿠어스필드가 인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마주했던 류현진은 “등판할 때마다 한 이닝씩만 더 던졌더라면 목표로 했던 150이닝을 채웠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25경기에 나섰고 150이닝에서 조금 부족한 126⅔이닝을 소화했는데 그의 말대로 25경기에서 한 이닝씩 더 던졌더라면 목표로 했던 150이닝은 채워졌을 것이다.다시 그 샴페인과 맥주가 난무하는 클럽하우스 안으로 돌아왔다. 류현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선수들과 어울리며 승리를 만끽했다. 샴페인에 흠뻑 젖은 류현진에게 굳이 그 소감을 묻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많은 사람들은 올 시즌 성적에 다른 평가를 할 것이다. 그러나 난 충분히 만족한다. 수술 후 재활할 때는 마운드에 오를 수 있기만을 바랐고, 재활을 거쳐 불펜피칭을 시작한 이후론 1이닝만이라도 실전 경기에서 던지고 싶었다.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도 합류했고, 한 차례의 불펜행이 있었지만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선발 로테이션에 남아 있었다. 이제 난 ‘큰 산’ 하나를 넘었다. 넘기 힘들 줄 알았던 그 산을 넘었으니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을 갖게 됐다는 점이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