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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문·DNA 감식’ 발달로 검거 완전범죄 확률 더욱더 낮아져

 

조선시대 수사기관에서는 죽은 시신의 독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은(銀)을 사용했다. 독약의 주원료였던 비소나 질산염에 반응해 색깔이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과학수사의 한 기법이었다.

 

우리나라는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과학수사의 장을 열었다. 그 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수사 방법도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했다. 과학수사가 예전에는 단순히 범죄의 감정·감식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과학적 방법을 이용한 모든 수사를 의미한다.

 

과학수사의 성과는 놀랍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사건이 속속 해결되고 있는데, 이것도 과학수사 덕분이다. 완전범죄를 노리던 범죄자들이 진보한 과학수사 앞에서 덜미가 잡히고 있는 것이다.

 

9월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관계자가 지문 채취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cm 쪽지문 지문검색으로 검거

 

2005년 5월13일 오후 5시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의 한 주택에 괴한이 침입했다. 당시 혼자 살던 집주인 A씨(여·70)는 안방에 있었다. 괴한은 A씨를 집 안에 있던 포장용 테이프와 휴대전화 충전기 선 등으로 얼굴과 양팔, 두 다리를 감았다. 그리고 A씨를 무차별 폭행해 살해했다. 괴한은 A씨 집에 있던 금반지 등 8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얼마 후 이웃 주민이 A씨 집을 방문해 보니 현관문과 안방 문이 열려 있고, TV 소리가 들리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살며시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A씨가 숨져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해 현장 감식을 벌였다. A씨의 얼굴과 복부 등에서 타박상이 발견됐다. 집 안은 어지럽혀 있었다. 안방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다.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시신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은 기도 폐쇄와 갈비뼈 골절 등 복합적 원인이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17점의 지문을 채취해 감식을 의뢰했지만 대부분 A씨와 가족의 것이었다.

 

경찰은 A씨 얼굴을 감은 포장용 테이프 안쪽에서 흐릿하게 남은 1cm 남짓한 왼손 중지손가락 ‘쪽지문(指紋)’을 발견했다. 하지만 테이프에 새겨진 글자와 겹친 데다 지문을 이루는 곡선인 융선도 뚜렷하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실패했다. 당시 지문감식 기술의 한계였다. 결국 수사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고, 지금까지 12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사이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도 발전을 거듭했다. 전문 감식을 통해 흐릿한 쪽지문을 선명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강원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재수사에 나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포장용 테이프, 피해자 의류 등 중요 증거물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했다. 경찰은 당시 포장 테이프에 흐릿하게 남아 있던 쪽지문을 선명하게 복원한 뒤 일치하는 용의자가 있는지를 찾았다. 그랬더니 B씨(49)와 지문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B씨 주변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그가 사건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한 여러 정황을 파악했다. 과거에도 유사한 수법의 범행 전력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경찰은 B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전격 체포했다. 그러나 B씨는 “범행 현장에 간 적도 없고 피해자를 알지도 못한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당시 알리바이에 대해 “지인이 운영하던 동해의 주점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B씨는 당시 주점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B씨 진술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였다. 총 3차례의 검사에서 모두 거짓 반응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B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과학수사로 해결한 미제 사건은 또 있다. 2002년 12월14일 새벽 2시30분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 C씨(50)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C씨를 둔기로 마구 때려 살해한 뒤 시신을 가게 구석 테이블로 옮겨놓았다. 이어 다락방에 올라가 C씨 지갑에서 현금 15만원과 딸 명의로 된 신용카드를 훔쳐 달아났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증거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범인이 자신의 지문을 수건으로 모두 닦아버린 상태였다. 현장 주변에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뒷굽이 둥근 키높이 구두 발자국을 확보했다. 깨진 맥주병에 남아 있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쪽지문 하나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경찰은 범인이 훔친 C씨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했다. 그랬더니 훔친 카드로 70만원의 물품을 구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일이 탐문을 벌여 한 가게 주인의 말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방송에 희망을 걸고 공개수배에 나섰으나 범인 검거에는 실패했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았던 이 사건은 2015년 일명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한 가닥 희망을 걸게 됐다. 문제는 이 사건은 소급적용이 안 돼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은 지난해 1월 이 사건의 재수사에 나섰다. 수사팀은 쪽지문에 주목했다. 지문검색시스템에 확보한 쪽지문을 입력하고 검색했다. 그랬더니 몇 명의 남성들이 비슷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이 중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을 근거로 키가 165cm인 장아무개씨(52)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장씨 집에서는 뒷굽이 둥근 키높이 구두 여러 켤레가 나왔다. 경찰은 장씨를 체포했다. 그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증거를 들이대자 그때서야 실토했다. 장씨는 범행 직후 한동안 은둔생활을 하다가 2003년부터 검거되기 전까지 택시기사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소시효를 불과 5개월 남기고 경찰에 붙잡혔다.

 

두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경찰의 노력도 컸지만 1등 공신은 ‘지문자동검색시스템’이다. 지문검색의 발전이 없었다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고, 범인은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이 지문감식에 인한 신원확인을 범죄수사에 활용한 것은 1948년부터다. 그동안 지문 채취기법과 감정기법을 지속 발전시켜 2010년에는 지문감정분야 ‘KOLAS(한국시험기관 인정기구로 미국·영국 등 회원국과 상호인정 가능) 인정’을 받았다.

 

7월5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중요미제사건수사팀장인 정지일 경감이 15년 동안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가리봉동 호프집 살인 사건 범인 검거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과학수사 기법 세계 최고 수준

 

이를 바탕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에 걸쳐 해결되지 않은 현장지문 재검색을 실시했고, 살인 등 중요 미제 사건 4285건에 대해 재검색을 실시해 총 604건을 해결했다. 최근에도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은 482건의 사건에 대한 용의자 신원을 확인해 해당 경찰관서에 통보했다. 그중 154건의 범인을 검거했고 현재 186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완전범죄가 될 확률은 더욱더 낮아진 것이다.

 

현재 범죄와 관련한 신원확인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지문감식’ 외에도 ‘유전자(DNA) 감식’이 있다. 경찰청은 지문과 DNA 식별 기술은 세계에서도 뒤지지 않는 역량을 보이고 있다고 자랑한다.

 

DNA 기술을 이용해 해결한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이 ‘화성 육절기 살인’이다. 2015년 2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서 D씨(여·67)가 실종됐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 사건 현장 인근 CCTV를 분석했다. D씨 집 별채에 살던 김아무개씨(59)의 수상한 행적이 포착됐다. 김씨가 상자 여러 개를 화물차 조수석 뒤쪽에 싣고 개울가 부근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개울가에 버린 육절기를 초정밀 감식했다. 그 결과 육절기 단면 100여 곳에서 살점 등 피해자의 DNA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DNA 분석 결과 장기 등 살해하지 않고서는 검출될 수 없는 여러 부위의 인체조직이 발견됐다.

 

김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던 데는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도 한몫했다. 김씨의 PC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인체해부도’ ‘인체해부학’ 등 관련 내용과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육절기, 골절기, 띠톱, 민찌기 등을 검색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김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비록 피해자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DNA 분석과 디지털 포렌식 기법 등 첨단 과학수사를 피해 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DNA는 인체 정보의 보고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뿐만 아니라 체질과 질환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다. 때문에 범죄 현장에서 DNA 확보는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DNA 검사 기술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다. 과거엔 DNA 분석으로 신원만 확인하는 정도였지만, 최근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하는 ‘행동 수준’ 분석도 가능해졌다.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DNA로 범인의 나이와 행동방식 등을 그려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또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DNA를 통해 몽타주를 만드는 기술로까지 발전했다. 여러 사람의 얼굴을 3차원(3D) 카메라로 촬영한 뒤 DNA 염기서열에 따른 얼굴 특성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DNA를 활용하면 나이에 따른 얼굴 변화도 가능하다. 세월이 흘러 얼굴이 변한 장기미제 사건의 범인 몽타주도 이런 기법으로 만들 수 있다.

 

경찰은 앞으로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매년 현장 지문 재검색을 실시해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DNA 분석, 영상 분석, 프로파일링 등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총동원해 억울한 범죄 피해자가 없도록 끝까지 추적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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