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자 프랑스 파리의 문화적 자존심과 같은 루브르박물관의 첫 해외분관이 생긴다. 유럽대륙의 유서 깊고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는 여타 도시들을 제치고, 중동의 사막도시 아부다비가 그 명예를 갖게 됐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벌써 몇 차례 개관일정을 연기해왔었는데, 가장 최근 소식으로는 다가오는 11월11일로 오픈이 예정돼 있다. 아부다비가 루브르 분관을 유치하기로 결정된 것이 2007년이었으니, 장장 10년에 걸친 프로젝트다. 산유국의 오일머니는 수백년동안 ‘루브르’라는 이름이 쌓아온 시간조차도 살 수 있는 막강한 것인 듯 했다.
사실 필자에게 아랍에미리트 연합국(UAE)은 여행지로서 우선순위에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고층빌딩의 향연을 보고 싶다면 세계도시 뉴욕이 좀 더 끌렸고, 사막탐험이 하고 싶다면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를 가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이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의 수도 아부다비에 루브르의 분관이 생긴다는 소식은 꽤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달 초, 필자가 루브르 아부다비를 찾았을 땐 아직 변변한 진입로조차 없었다. 루브르박물관 건물이 보고 싶어 왔다는 말에, 공사현장을 지키던 한 직원이 익숙한 듯 차단기를 열어줬다. 어수선한 도로를 따라 박물관 건물 바로 앞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정문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듯했다.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연신 소리치는 현장 담당자의 말을 못들은 척 하고, 까치발을 들어 담장 너머로 루브르 아부다비의 자태를 훔쳐보았다. 밝은 은백색의 건물 외관이 사막모래로 뒤덮인 회황빛의 도시를 화사하게 장식하는 진주알 같았다.
오래된 궁전을 개조한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달리, 루브르 아부다비는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이 새롭게 설계했다. 누벨은 ‘루브르’라는 이름이 주는 고전적인 이미지 위에 아부다비만의 색깔을 덧입혔다. 지름 180미터의 거대한 돔 형태로 된 루브르 아부다비의 지붕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중정(Cour Carrée)과 같은 크기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랍의 독특한 건축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아부다비를 비롯한 아랍문화권의 도시들에서는 ‘마쉬라비야(mashrabiya)’라는 양식의 창문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기하학적 형태의 창문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빛이 또 다시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지붕도 이와 비슷하게, 야자나무의 잎이 짜여 있는 듯한 모양의 틈새를 통해 ‘빛의 소나기’가 내리는 효과가 나도록 디자인됐다. 박물관의 내부 광장을 흐르는 수로는 아랍에미리트의 고대 관개시스템인 ‘팔라지(falaj)’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런 특징들은 아랍에미리트의 극심히 더운 날씨에 맞춰, 물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디자인이라 평가되기도 한다. 유럽의 수백년 역사를 돈으로 한순간에 사들여 단지 옮겨다 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부다비의 환경적 조건과 고유의 문화를 깊이 고려한 흔적들이다.
루브르 아부다비가 위치한 ‘사디야트 문화지구(Saadiyat Cultural District)’는 더 큰 비전을 가지고 있다. 성공적인 도시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이라 말한다.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가 되겠다는 의미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아랍문화권의 도시로서 획기적인 선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루브르 아부다비를 비롯, 앞으로 사디야트 문화지구에는 국립박물관과 구겐하임미술관 분관 등 굵직굵직한 문화시설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예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즐기는 것이 새로운 변화의 첫걸음이란 생각이 엿보인다. 석유가 나는 덕분에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의 이름을 쉽게 살 수 있고, 유명한 건축가를 초빙해 홍보효과를 노린다며 흰 눈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아부다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영악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사디야트 섬을 떠나, 아부다비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셰이크 자이드 모스크(Sheikh Zayed Mosque)’로 향했다. 정교하고 화려한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랜드모스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그 이름대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슬람사원이었다. 해질녘, 저녁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래소리 ‘아잔’이 울려 퍼지는 그랜드모스크의 풍경은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는 감동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저 오일머니로 세워진 화려한 빌딩과 유럽에서 수입한 박물관뿐만이었다면, 이 도시에서 공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테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의 오랜 전통은 미묘한 균형감을 느끼게 했다.
이제 아부다비를 중동 어느 사막지역의 산유도시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루브르의 새로운 분관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부다비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이 도시가 꿈꾸는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떤 문화적인 비전을 세우고, 얼마나 인내심있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아부다비만큼 파격적인 시도일 필요는 없다. 우리 나름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